[클로즈업 북한] 생계형 범죄 만연…지방발전 가능성은?
[앵커]
북한의 만성적 경제난, 어제오늘 일이 아니죠.
대다수 주민들은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경제활동을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국경 봉쇄와 이동 제한으로 주민들의 경제활동에 제동이 걸린 코로나19 시기에는 돈과 관련된 범죄까지 늘어난 것으로 북한 내부 영상을 통해 확인됐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김정은 위원장이 내놓은 대책, 바로 지방발전 정책인데요.
그 효과를 두고는 의견이 엇갈립니다.
경제난으로 각종 부업과 불법행위가 만연한 북한 내부 소식과 함께 지방발전 정책의 실효성을 <클로즈업 북한>에서 분석해 봤습니다.
[리포트]
황해북도 봉산군에 위치한 한 교육 교재 집필소.
그런데 이곳 직원들은 말처럼 교재를 만드는 대신 생뚱맞게 보양식으로 알려진 기름 개구리를 양식하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 교육 영상 : "교육 도서 출판사 노동자로 적을 두고 있던 이 동무의 말에 의하면 야외 서식장에서는 '기름 개구리'를 수백 마리나 양식하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 당국은 무허가 양식장이란 이유로 단속에 나섰는데요.
영상에선 이미 여러 차례 철수 지시를 내렸지만 시행되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됩니다.
[북한 주민 교육 영상 : "국가의 허가도 없이 65㎡짜리 건물을 제멋대로 지어놓고 앞으로도 이 돈벌이 직업을 버리려는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이곳 직원들은 더 큰 수익을 내기 위해 마을 주민까지 불법 고용해 양식장을 운영해 왔습니다.
[김○○/교육 교재 집필소 직원 : "(1년에 수익을 얼마큼 내라고 했소?) 1인당 천 달러씩."]
사리원에 위치한 이 건축 자재 판매점도 무허가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 교육 영상 : "4월 1일부터 영업을 중지시킨 대상이었으나, 촬영 당시(5월)까지도 건재 판매를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전력 무단 사용에 불법 증축까지 발각됐는데요.
[북한 주민 교육 영상 : "건물의 양쪽을 제 마음대로 더 늘려 건설한 데다가, 허가도 없이 2층으로 망탕(마구잡이로) 증축한 상태입니다."]
종업원 휴게실이라던 2층엔 판매점 관리자의 살림집이 차려져 있습니다.
[북한 주민 교육 영상 : "가족사진까지 척 걸려 있는 것을 보고 누군들 이곳이 종업원 휴게실이라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사리원시 단속반은 철근을 빼돌려 장사를 하고 있는 군인들도 적발했습니다.
[북한 주민 교육 영상 : "마당은 물론이고 창고 마다에 각종 규격의 철근들이 가득 쌓여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부실 공사로 이어지는 철근 유출은 북한에서도 엄하게 처벌됩니다.
그런데 적발된 관리자 격의 군인은 오히려 단속반원들을 몰아세웁니다.
[신○○/철광 판매소 담당 북한군 : "나갑시다. 나가서. 이러지 마십시오. 다 상급 당의 절차를 밟아서 해야지."]
겉에선 목욕탕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당구인 곳도 있습니다.
직원들이 몰래 돈을 받고 내기 도박 장소로 제공한 겁니다.
[장○○/불법 당구장 관리원 : "(당구장 값은 얼마씩 받았습니까? 시간당.) 작년 12월에는 3만 원 받고 올해 1월 초와 마지막에 (제공) 할 때는 1인당 만 원씩 받았습니다."]
KBS가 입수한 북한 내부 교육 영상에선, 이처럼 돈벌이용의 각종 위법 행위가 다양하게 확인됐는데요.
그러나 북한 주민들에게 불법은 곧 생존 전략이라는 게 탈북민의 이야기입니다.
[박현숙/2015년 탈북 : "회사에 취직해서 정상적인 일을 하면 월급도 주고 배급도 주고 해야 하는데 그게 일절 없어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직원)한테 수익금 벌이를 시켜요. 거기는 내 가족의 생명줄이 걸려 있고 그리고 또 뒤에 있는 간부들, 북한식으로 표현하면 간부들의 생명줄도 달려 있고. (국가가) 하라는 대로 하면 입에 풀칠조차 못 하고 꽃제비 생활해야 하거든요."]
1990년대, 극심한 경제난이 닥친 북한.
배급마저 끊어지면서 주민들은 국가 주도의 계획경제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생존할 길을 찾아야 했습니다.
게다가 기관, 기업소에 할당되는 생산량을 채우기 위해서라도 위법 행위가 버젓이 횡행한다는 설명입니다.
[박현숙/2015년 탈북 : "교재를 만드는 회사에서 왜 이러겠어요. 교재는 1년 생산량이 이만큼 있는데 출판소에는 자재도 없어요. 원료 아무것도 없어요. 국가가 대주는 게 없기 때문에 우린 뭐로 하라는가. 그러니까 우린 이렇게 (불법 돈벌이) 했다 다 명분이 있는 거예요. 국가 그 자체가 사람들에게 불법을 하게끔 조성시키는 겁니다."]
문제는 만성적인 경제난으로 단순 위법을 넘어선 범죄 행위가 늘고 있다는 겁니다.
특히 코로나19 당시 국경을 봉쇄하고 주민 이동과 경제 활동까지 제한되면서 돈을 목적으로 한 강력범죄는 더욱 기승을 부렸습니다.
[권민철/2023년 10월 탈북 : "깡패라고 할까요. 그런 게 최근엔 생겨나고 있거든요. 모여서 패싸움 벌이고 도둑질하러 다니거나 강도질하거나 하죠. 지금은 좀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뉴스거리죠."]
북한 내부 교육 영상에서도 이 같은 강력범죄는 다수 확인됐습니다.
조직 폭력배까지 등장해 집단 폭행이나, 절도 같은 범죄를 저지르고.
[북한 주민 교육 영상 : "여러 명의 불량한 자들을 긁어모아 '각칼패'라는 것을 만들고 제 놈이 사는 해주시 룡당 지구를 싸돌아다니며 강력 범죄 행위들을 감행하면서 사람들 속에 불안과 공포를 조성했습니다."]
일각에선 마약까지 사용해 성매매를 알선한 남성도 붙잡혔습니다.
이 남성은 생활고를 겪는 젊은 여성들을 끌어들였는데, 이 중엔 10대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북한 주민 교육 영상 : "이 자의 꾐에 넘어가 매음의 길에 들어선 처녀들의 평균 나이는 21살입니다. 그중에는 18살 난 애어린(아주 어린) 처녀들도 있습니다."]
한 여성은 지인 딸에게 흉기를 휘둘러 큰 상처를 입히기도 했는데 이 역시 지인이 가진 외화를 빼앗기 위해서였습니다.
[북한 주민 교육 영상 : "돈을 내놓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해서 3천 달러의 외화를 강탈해서 도주하려다가 현장 체포됐습니다."]
강력한 사회 통제에도 불구하고 생활고에 범죄는 증가하고, 주민들의 삶도 갈수록 힘겨워지고 있는데요.
이런 가운데 김정은 위원장이 정권 수립일 기념 연설에서 경제와 민생 발전을 언급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특히 '지방발전 20승 10' 정책의 목표 달성을 독려하며 연말까지 지방 발전의 실체를 내놓으라고 지시했습니다.
[북한 조선의 소리/김정은 연설 대독 : "지방 공업 공장 건설에 박차를 가하여 연말에는 반드시 20개 시, 군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완공의 실체들을 내놓아야 합니다."]
현재 북한은 '지방발전 20승 10' 정책에 따라 해마다 20개의 시와 군에 현대적인 공업 공장을 건설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건설을 10년 동안 이어가 전국 주민의 경제와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겠다는 건데,물론 군 단위 지방에 새로운 시설들이 들어서는 것은 긍정적인 작용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김민규/우석대 국방학과 교수 : "초보적인 생필품도 제대로 생산 못 하는 게 지방인데 생필품 공장이라도 들어선다고 하면 그것은 지방 입장에선 너무나도 좋은 환경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 공장으로 인해서 북한의 지방에서 농사만 짓는 사람들 속에 노동하는 사람들이 섞이기 시작한다. 이런 노동이 활성화되는 부분들이 지방에 함께 들어가다 보면 결국은 다양한 문화가 새롭게 자리 잡는 행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해당 정책이 장기 프로젝트인 만큼 건설과 운영에 필요한 재원 수급이 어렵고, 전력 부족 같은 북한의 고질적 문제로 한계가 너무나 뚜렷하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김혁/한국농어촌공사 농어촌연구원 선임연구원 : "가장 중요하게는 전력 문제고요. 두 번째는 연료 문제가 걸려 있고요. 세 번째는 이런 건설 사업을 10년 동안 중장기적으로 계속 끌고 갈 수 있느냐는 문제가 있을 거고요. 네 번째는 이런 부분들이 실질적이고 질적으로 보장이 돼서 북한의 시장화에 충분히 견줄 수 있느냐는 문제가 있는 거죠. 이런 부분들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공장 건설이 사실 현실적이지 않다고 볼 수밖에 없는 거죠."]
더구나 지난 7월 압록강 홍수로 인한 수해 복구 작업에도 인력을 총동원한 만큼 지방 발전에 대한 주민 부담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럼에도 내년 노동당 창당 80주년을 앞둔 북한 당국으로써는 어떻게든 성과를 내야 하는 입장입니다.
[김혁/한국농어촌공사 농어촌연구원 선임연구원 : "북한 김정은 당국 입장에선 경제 발전 성장이 굉장히 둔화하는 상황 속에서 어쨌든 주민들한테 뭔가를 보여주는 것. 그 대상 건설 사업이 지방 공업 발전이라고 할 수 있고요. 지방 공업 발전 공장이 북한 주민들에게 어떤 식으로 보이냐고 했을 땐 주민들의 식생활을 개선하기 위해서 김정은 위원장이 이만큼 노력하고 있다는 의미. 그래서 대상 건설은 곧 정치 사업이라고 이야기할 수가 있겠죠."]
[북한 조선의 소리/김정은 연설 대독 : "나는 당과 정부를 대표하여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확언합니다. 우리의 지방 발전 정책이 그 집행에서 담보가 있는가? 가능한가? 가능합니다."]
지방 발전 정책이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김정은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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