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지는 끝내지만 ‘짠내 수집’은 계속된다 “아일 비 백”

신승근 기자 2024. 9. 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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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짠내 수집일지 ‘힙한’ LP 사랑
2년3개월 동안 총 25회 연재…‘반응과 조언’ 독자들에게 감사
팝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여성 보컬리스트로 꼽히는 재니스 조플린의 음반 ‘펄’(왼쪽)과 미국 하와이 중고 엘피점에서 발견한 김시스터즈의 ‘더 김시스터즈: 데어 퍼스트 앨범’을 들고 있는 신승근 기자.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거실 한쪽 벽, 허름한 원목 책꽂이에 빽빽이 자리한 1500여장의 엘피(LP)를 볼 때마다 그동안 역정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책꽂이조차 아파트 단지에서 누군가 버린 걸 주워 재활용했는데, 어떤 이는 “엘피바 같다”고 감탄한다. 그 정도에 크게 못 미친다는 걸 잘 안다. 그래도 엘피 한 장 한 장엔 지난 15년, 내 시간과 기억이 녹아있다.

인공지능(AI)이 작사·작곡은 물론 노래까지 부르는 시대다. 1980~1990년대 흔했던 카세트 테이프는 고사하고 엘피를 대체한 시디(CD)조차 수명을 다한 듯 보이던 그 시절 엘피를 모은다는 건 늙다리 취미였고, 꼰대 인증 같은 것이었다. 이젠 엘피가 시디 판매량을 넘어서고, 싸이는 ‘강남스타일’을, 아이유는 ‘책갈피’를 엘피로 내고, 새 음원을 출시한 아이돌조차 시그니처처럼 소량의 엘피를 찍어낸다. 엘피 수집은 어느덧 엠지(MZ)세대도 따라 하는 ‘힙한’ 취미가 됐다.

미국에서 홀린듯 사들인 엘피들

나의 짠내 수집일지, 시작은 단순했다. 2022년 봄 정기인사 때 토요판부로 옮겨 환영식을 할 때였다. “재봉틀, 카메라, 엘피까지 철 지난 잡동사니는 무엇이든 모으는데 아내는 ‘집을 쓰레기장으로 만들 작정이냐’고 구박한다”는 내 넋두리를 들은 홍석재 당시 토요판부 부장은 “그걸로 뭘 써볼 생각 없냐?”고 했다. 그는 최근 도쿄 특파원으로 부임했다.

당시 제이티비시(JTBC)에서 손석구·김지원 배우가 열연한 ‘나의 해방일지’가 인기를 끌던 때라 드라마 제목을 변용한 ‘나의 짠내 수집일지’로 고정 코너를 만들었다. 2022년 6월10일 ‘언젠가는 내 손으로 온다, 짠내 수집의 희열’을 ESC 커버스토리로 쓴 것을 시작으로 2년 동안 25회 연재를 이어왔다. 엘피, 카세트테이프, 재봉틀, 헌책, 북한 미술품, 평양 정상회담 기념품, 진공관 라디오, 스피커, 카메라, 레고까지 그동안 짠내 물씬 나는 수집의 세계를 써내려갔다.

지금도 기억이 선명한 1977년, 이리역 폭발사고가 난 그해 이리국민학교 4학년이던 나는 처음 엘피를 영접했다. 직업군인 아버지는 면세품 천일사 별표 전축을 집에 들이셨다. ‘국내기술로 개발한 전축’, 그때는 지금 삼성반도체만큼 큰 의미를 부여한 오디오로 인생 첫 엘피를 들었다. ‘유머레스크’ 등 그 시절 유행한 경음악이 담긴, 전축 사면 끼워 주던 엘피로 기억한다.

별표 전축은 사춘기도 함께 넘어선 절친한 친구였다. 중·고등학교 시절 ‘두 시의 데이트 김기덕입니다’를 통해 팝을 듣고 청계천에 들러 ‘백판’을 샀다. 둘리스의 ‘원티드’, 올리비아 뉴턴 존의 ‘피지컬’, 쥬시 뉴턴의 ‘에인절 오브 더 모닝’ 같은 히트곡이 담긴 음반을 제 가격에 살 수 없어 불법 복제판을 즐겨 들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간 뒤엔 엘피를 전혀 듣지 않았다. 민주화 투쟁이 폭발한 격정의 1980년대, 또 휴대용 카세트테이프로 재생 음원의 대세가 바뀌면서 전축과 엘피는 번거롭고 공간만 잡아먹는 천덕꾸러기가 됐다. 언제인지 기억하지도 못할 만큼 무의미하게 별표 전축은 버려졌고, 어린 시절 모았던 엘피도 흔적없이 사라졌다.

2011년 중년의 나이에 미국 한 소도시에 들렀다. 깜짝 놀랐다. 재활용센터, 중고품 상점마다 엘피가 즐비했다. 그 시절 즐겨듣던 아티스트의 엘피가 단돈 1달러에 팔리고 있었다.

턴테이블, 스피커, 앰프 등 엘피를 재생할 아무런 장비도 없었지만 홀린 듯 30여장을 사들었다. 마돈나, 존 덴버, 컬처클럽, 마이클 잭슨…. 그렇게 시작한 엘피 수집은 물심양면으로 내 삶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주말이면 동두천, 포천, 의정부로 향했다. “미군 부대가 있던 곳엔 팝 음반이 있을 거야.” 그런 생각으로 무작정 떠돌았다.

소장한 엘피가 늘면서 깨달았다. 재킷이 그럴듯 해, 한번 들어본 이름의 뮤지션이라, 무작정 모은 엘피가 그저 그런 것이라는 걸 말이다. 존 덴버 음반이 11장 있지만 미국의 아리랑 같은 대표곡 ‘테이크 미 홈, 컨트리 로즈’가 담긴 음반은 없었다. 재킷이 미술 작품 같다는 생각에 나라 안팎에서 10여장을 모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다 이엘오(ELO, 영국 버밍엄 출신의 록그룹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의 줄임말) 음반이다.

평생 모은 엘피 주겠다는 이들도

수집 초기엔 가요 음반도 이선희, 변진섭, 김건모, 이승철 등 익숙한 뮤지션 음반에 집중했다. 양병집, 김의철, 이금희, 강소희, 이름조차 생소한 뮤지션의 존재는 알지도 못했다. 뒤늦게 ‘대중가요 엘피 가이드북’(안나푸르나),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태림스코어), ‘배철수의 음악캠프 20년 그리고 100장의 음반’ 등을 길라잡이 삼아 가요와 팝 명반, 희귀 음반을 찾아 나섰다.

명반은 쉽게 내 손에 닿지 않았다. 호주머니가 넉넉지 않은 짠내 수집가는 오랜 발품으로 극복했다. 서울 동묘, 인천 배다리마을부터 미국 하와이, 영국 런던의 중고엘피 판매점까지 기회가 될 때마다 뒤졌다. 어쩌다 행운이 따르면 기쁨과 희열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하와이 한 중고점에서 중국 음반들 사이에서 한국 컬렉터의 눈을 피했을 김시스터즈 음반을 찾았을 때 “내게도 이런 행운이!”라고 외쳤다.

수집 대상도 확장했다. 턴테이블도 없이 시작한 엘피수집은 앰프, 리시버, 스피커, 진공관 라디오로 영역을 넓혔다. 라디오부터 릴테크까지 웬만한 건 납땜과 적당한 손질로 살려낼 수 있는 손재주도 갖췄다. 엘피를 모은다는 소문이 나자 지인들이 할아버지, 시아버지가 버리는 음반이라며 내게 가져웠다. 가끔 귀한 음반이 섞여 있었다. 티비에스(TBS) ‘허리케인 라디오’에 나가 내가 고른 10장의 음반을 60분 동안 소개하는 영광도 누렸다.

짠내 수집 일지 애독자 가운데 “이제 필요 없다”라며 평생 모든 엘피를 내게 넘겨주겠다는 이들도 있었다. 갖고 싶다는 욕망과 김영란법 사이에서 고민하다 모두 포기했다. 회사법무팀에선 이런저런 전제를 충족하면 문제없다는 답도 받았지만 끝내 거절했다.

엘피와 대중음악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내 글의 허점과 오류를 바로잡아 준 고마운 독자도 많았다. 지난해 5월20일 ‘노래를 찾는 사람들’ 엘피를 소재로 민중가요와 노래패에 대한 글을 썼을 때 평론가 이영미님은 직접 보고 겪은 그 시절 이야기와 함께 따뜻한 조언을 해 주셨다.

모든 분께 감사 말씀을 드린다. 인사이동으로 짠내 수집 일지는 끝내지만 짠내 수집은 끝나지 않는다. 아직 한국 가요 100대 명반 컬렉션을 완성하려면 20개를 더 찾아야 한다. 배철수씨가 선정한 ‘100대 팝 명반’은 빈칸이 더 많다. 엘피 세대이니 그 시절 영화 터미네이터 속 대사로 마지막 인사 말씀을 대신한다. “아일 비 백(I’ll be back)!”

※연재를 마칩니다. ‘나의 짠내 수집일지’를 애독해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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