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장에 이어 금융위원장까지 나섰다···두산 합병 어떻게 되나
“주가로만 평가” 금융위 입장 바뀌나
시행 앞둔 M&A 개선안 포함 어려워
밥캣·로보틱스 주식교환 재추진 전망도
대신證 “밥캣 경영권 프리미엄 고려”
두산그룹이 추진 중인 지배구조 개편안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에 이어 김병환 금융위원장까지 등장했습니다. 이 원장은 두산그룹이 주주들과 충분히 소통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있고, 김 위원장은 상장 계열사 간 합병비율을 주가로만 정하게 한 현행 규제를 손보겠다고 나섰습니다. 두산그룹이 정정 신고서를 준비 중인 만큼 합병을 둘러싼 이슈는 추석 연휴 이후로도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김 위원장은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진행한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자본시장에서 기업 간 합병과 관련해 공정성에 대한 이슈가 제기됐다”며 “국제적인 기준 및 시장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김 위원장이 직접적으로 기업명을 언급하지 않았으나 공정성 이슈는 두산그룹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입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김 위원장이 합병비율 산정 방식에 대해서도 언급했다는 겁니다. 김 위원장은 “합병가액 산정방식을 현재와 같이 기준가격으로 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부분에 문제 제기가 지속적으로 있다”며 “일률적인 산식에서 산정하는 것이 실질가치를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는 문제가 있어 국제적 기준이나 시장 상황 변화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개선방안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정부는 1997년부터 오너가 일방적으로 합병 비율을 정할 수 없도록 자본시장법을 통해 시가라는 합병산식을 강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SK와 SK C&C 등 계열사 합병이 이뤄질 때마다 합병비율을 둘러싼 논란은 지속됐습니다. 자본시장법 등에서 합병비율을 시가로 정하도록 강제하기 때문에 다소 불공정하게 합병비율을 정하더라도 일반주주들이 소송을 제기하기 어렵고 구제도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합병비율 산정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됐습니다.
정부는 의견 수렴을 거쳐 올해 2월 인수합병(M&A) 제도 개선을 위한 자본시장법 시행령 및 규정 개정안을 내놓았습니다. 정부는 비계열사 간 합병에 대해서는 합병가액 산식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하면서 계열사 간 합병에 대해선 현행 시가 강제 방식을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정부는 계열사 간 합병은 대주주가 마음대로 비율을 정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투자자 보호를 위해서라도 산식을 강제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주가를 움직이는 것은 시세 조종 등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쉽지 않다고 보는 전문가들도 많습니다.
반대로 대주주가 의도적으로 주가를 띄우거나 억누를 수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주가 비율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악재나 호재를 발표하는 시점을 조정한다는 겁니다. 계열사 간 합병과 비계열사 간 합병 모두 자율화하되 공정한 비율을 도출할 수 있도록 간접적인 규제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시가가 아닌 공정가격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법안도 발의된 상태입니다.
이와 관련해 김 위원장은 상장사 합병비율 산식을 시가로 강제해야 한다는 기존 금융위 정책과는 다소 다른 생각임을 드러낸 겁니다. 김 위원장은 “합병가액을 법령이나 규정에서 정하고 있는 곳이 외국에서도 없는 거로 알고 있다”며 “시장에서 현재 방식에 대한 우려가 있고 글로벌 기준으로도 근거가 약해 들여다봐야 할 때”라고 했습니다. 미국·일본·영국·독일 등 해외 주요국은 합병가액 및 합병비율 산정을 자율적으로 맡기고 있습니다.
다만 금융위가 합병비율 관련 제도를 개선하더라도 이번 두산그룹 지배구조 개편안엔 적용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2월 입법예고가 이뤄진 M&A 제도개선안은 당장 이달 중 시행을 앞두고 있는데 내용을 바꾼다면 처음부터 절차를 다시 진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해당 제도개선안엔 합병비율뿐만 아니라 공시 강화 등 다른 정책도 포함돼 있는데 도입 시기가 너무 늦어질 수 있습니다. 합병 추진 배경, 진행 시점 결정 이유 등 이사회 의사 결정에 대한 공시를 강화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불공정한 합병을 막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두산그룹은 두산로보틱스(상장사)와 두산밥캣(상장사)의 포괄적 주식교환을 철회하면서 상장사 간 합병비율 규제를 받지 않게 됐습니다. 현재 남은 계획은 두산밥캣 지분을 가진 두산에너빌리티 분할신설법인(비상장사)과 두산로보틱스(상장사)의 합병인데 이에 대해선 이미 금감원이 지적했습니다. 금감원은 두산밥캣 지분을 가친 분할신설회사의 수익가치를 공정하게 결정했는지를 정정보고서에 반영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두산밥캣 지분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합병비율도 다소 변경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두산밥캣을 두산에너빌리티 자회사에서 두산로보틱스 자회사로 옮기는 작업은 계속 추진하는 만큼 두 회사의 주식 교환은 언제든지 이뤄질 수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김수현 DS투자증권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시장이 여전히 우려하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밥캣과 로보틱스의 합병이 먼 미래에 재추진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합병 기준에 대한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김 연구원은 “밥캣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58배로 비교 대상 그룹인 일본 쿠보다(0.97배), 다케우치(1.2배), 캐터필라(8.3배) 대비로도 형편없이 낮은 수준”이라며 “PBR 0.58배 밥캣과 PBR 12배 로보틱스가 합병한다면 밥캣 주주들은 큰 손해를 본다”고 지적했습니다. 김 연구원은 “상장사 간 합병 기준인 자본시장법 시행령 176조 5를 개정해 장부가 PBR 1배 미만 기업이 합병할 땐 시가가 아닌 공정가치 평가로 개정하면 손쉽게 해결된다”고 했습니다.
두산그룹 정정신고서 제출은 다소 시간이 소요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앞서 두산그룹 측은 9월 25일로 예정된 임시 주주총회를 비롯해 당초 계획했던 일정을 모두 백지화한 상태입니다. 앞서 이복현 원장은 “사업 모양이 바뀐 만큼 증권신고서도 많이 바뀐 형태로 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라며 “두산그룹이 사업 재편 필요성에 대해 주주 설득을 노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허민호 대신증권 연구원은 “그룹 사업구조 개편이 성공하려면 분할합병 자체만으로도 주주 손해가 없어야 하기 때문에 존속법인과 신설법인의 분할비율을 순자산가치 기준 0.89대 0.11 수준(현재 0.75대 0.25)으로 변경돼야 한다”며 “신설법인 합병가치 산정할 때도 두산밥캣 지분 46.1%에 대한 경영권 프리미엄 적용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조지원 기자 jw@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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