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끈 후끈 포복절도하다 귀호강…변강쇠 점 찍고 옹녀 [이예슬의 쇼믈리에]

이예슬 기자 2024. 9. 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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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 10주년을 맞은 국립창극단의 '변강쇠 점 찍고 옹녀'가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창극에서는 색골남 변강쇠에만 맞춰졌던 시선에 '점'을 찍고 옹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변강쇠와 옹녀의 사랑 놀음이 공연의 큰 줄기라면 또 하나의 줄기는 조선 후기 삶의 터전에서 유리돼 떠도는 기층 민중들의 애환이다.

걸걸하고 농익은 '변강쇠 점 찍고 옹녀'를 보고 나니 탄산과 단맛이 많고 가벼운 막걸리보다는 질감이 묵직하고 누룩을 많이 쓴 전통 막걸리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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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국립창극단 '변강쇠 점 찍고 옹녀' 공연 모습. (사진=국립극장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이예슬 기자 = "기필코 인생역전하야 보란 듯이 사리라. 어드메서 나를 알아 사랑하실 우리 님이 삼삼하니 나타날세라. 오냐 옹녀 어서 가자."(옹녀)

초연 10주년을 맞은 국립창극단의 '변강쇠 점 찍고 옹녀'가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지금은 더 이상 불리지 않는 '변강쇠 타령'을 재창작한 작품이다. 창극에서는 색골남 변강쇠에만 맞춰졌던 시선에 '점'을 찍고 옹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작품에서 옹녀는 운명의 굴레를 물리치고 자신의 삶을 개척하며 누구보다 당차게 살아가는 여인으로 묘사된다.

사주에 청상살, 상부살이 엎치고 덮쳐 스물 남짓한 옹녀 인생에 남편 초상 치르기만 벌써 여섯 번이다. 스치기만 해도 사내들이 죽어나가자 봇짐 하나 달랑 들고 동네에서 내쫓기는 팔자가 된 옹녀. 남녘으로 내려가던 옹녀가 청석골 외길에서 딱 만난 사내가 있었으니, 그 이름 바로 변강쇠올시다.

"앞전을 터주시오. 어서요."
"그란디 길이 좁아 놔서 영~ 내가 힘을 주어설랑 쏙 넣어볼 테니 바쁘게 지나가 보시오."
"무엇을 쏙 넣어본단 말씀이시요?"
"허, 거, 아랫배를 그래본다 그 말이지. 초면에 거시기를 그러겄소?"

[서울=뉴시스] 국립창극단 '변강쇠 점 찍고 옹녀' 공연 모습. (사진=국립극장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19금(禁) 창극'을 표방하는 만큼 발칙하고 화끈한 놀이가 펼쳐진다. 원전을 살리면서 속도감 있는 구성과 재기발랄한 말맛을 더했다. 해학적인 성적 농담이 불쑥 불쑥 튀어나올때마다 관객석이 한 바탕 뒤집어진다.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에 '얼쑤', '좋다' 하는 추임새도 나온다.

남자랑 엮이기만 했다 하면 초상을 치르는 박복했던 옹녀는 변강쇠를 만나며 드디어 팔자가 핀다. 돈 받아가는 족족 노름판에서 날리는 한량이지만 건강하게 살아서 사랑만 줘도 옹녀는 그가 마냥 좋다.

[서울=뉴시스] 국립창극단 '변강쇠 점 찍고 옹녀' 공연 모습. (사진=국립극장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그래도 좋네, 저기 가는 사내 뒷태가 나는 좋아. 팔자가 사나워서 만나는 족족이 사흘을 못 견뎌 떠났지만 우리 변서방은 아니라네. 술 좋아라 투전질 좋아라 해도 날 사랑하시니 나는 참을 만허네."(옹녀)

변강쇠와 옹녀의 사랑 놀음이 공연의 큰 줄기라면 또 하나의 줄기는 조선 후기 삶의 터전에서 유리돼 떠도는 기층 민중들의 애환이다. 특히 상부살을 타고난 옹녀의 기구한 인생을 통해 외세 침탈과 남성 중심 사회에서 말미암은 조선 여인들의 안쓰러운 삶의 역사를 엿볼 수 있다. 전쟁으로 인한 남편의 부재, 이로 인해 유린 당한 옹녀 어미가 자신의 딸은 남자들이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도록 빈 내력으로 상부살이 낀 것이다.

"지아비가 군역 가서 돌 쌓다가 죽었다는 전갈 받은 그날 밤에 하도 울어 눈이 퉁퉁 부어 잠 못 들고 누웠는디 이상한 까까머리 산중에서 떼로 몰려 내려와서 내 배 위로 올라타서 돌아가며 양씬 양껏 써 묵더라…이것이 사내로 나게만 해 주시오. 어쩌다가 그 반대로 나믄 사내덜이 손가락도 옴쪽달싹 못허게 해주시오."(옹녀 어미)

주체적으로 자기 삶을 꾸려가는 옹녀의 모습은 공연 후반부로 갈수록 돋보인다. 마누라 말을 지독히 안 듣고 장승을 뽑아 땔감 삼은 변강쇠는 결국 동티가 나고 만다. 사랑하는 님을 잃은 옹녀는 그 길로 죽은 남편을 위해 장승들에게 복수에 나서고, 태중의 생명을 구김살 안 가게 제대로 낳아 키우겠다고 다짐한다. 판소리에서 변강쇠가 죽은 후 초상살 때문에 옹녀가 마을을 떠나는 수동적인 모습으로 결말을 맺는 것과는 180도 다르다.

[서울=뉴시스] 국립창극단 '변강쇠 점 찍고 옹녀' 공연 모습. (사진=국립극장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일월성신이시여, 나와 우리 변서방을 미워하지 말으시고, 후세 또한 품었으니 부디 색골남녀라 싸게 몰아치지 말고 천생연분으로 경계를 넘어 사랑하였구나 하고 저 후세까지 전하여 주오."(옹녀)

음탕하다며 손가락질 받는 존재였던 옹녀는 이 작품에서 지아비의 복수를 자처한 용감한 여성, 사랑의 결실로 생명을 잉태한 어머니로 다시 태어났다.

이 공연은 이야기도 재밌지만 귀도 호강한다. 판소리를 중심으로 각 지역의 민요, 비나리, 굿음악, 가곡, 시조를 활용하는가 하면 가요 '하숙생'과 클래식 '카르미나 브라나'도 이질감 없이 극에 파고든다. 기존 국악기 편성에 생황·철현금·대아쟁·소금 등 새로운 악기를 추가하고 연주자 규모를 늘려 화려하고 풍성한 음악을 들려준다. 공연은 15일까지.

[서울=뉴시스] 국립창극단 '변강쇠 점 찍고 옹녀' 공연 모습. (사진=국립극장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공연 페어링 : 옛날 막걸리

민초들의 희로애락을 노래한 창극 한 편을 보고 나니 탁배기 한 사발이 간절하다.

쌀과 누룩, 물을 배합시켜 발효해서 걸러낸 술은 탁주가 된다. 말 그대로 '탁한 술'인데 막 걸렀다고 해서 '막걸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탁주에서 맑은 술을 떠내면 청주, 탁주나 청주를 끓여서 증류하면 소주다.

걸걸하고 농익은 '변강쇠 점 찍고 옹녀'를 보고 나니 탄산과 단맛이 많고 가벼운 막걸리보다는 질감이 묵직하고 누룩을 많이 쓴 전통 막걸리가 생각났다.

흔히 '옛날 막걸리'를 표방하는 술들은 대체로 '마시는 밥'이라 할 만큼 걸쭉해 요란한 안주 없이 총각김치 한 입만 베어 물어도 될 법 하다. 아스파탐 같은 감미료를 쓰지 않고 누룩의 시큼털털함이 잘 느껴지는, 그야말로 '어른의 맛'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ashley85@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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