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vs 해리스' 미국 대권 가를 '낙태권'…우리 국회도 움직일까

안채원 기자 2024. 9. 14.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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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
(필라델피아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0일 (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국립 헌법센터에서 열린 첫 TV 토론을 하고 있다. 2024.09.11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필라델피아 AFP=뉴스1) 우동명 기자

'낙태권'이 미국 대선의 결과를 가를 핵심 어젠다로 떠올랐다. '연방 정부가 지켜야 할 여성의 권리'라는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각 주가 결정할 사안'이라는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린다. 이번 대선 결과가 낙태 문제로 사회적 혼란을 겪고 있는 미국을 넘어 우리나라에까지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해리스와 트럼프는 지난 10일(현지시간) 첫 TV토론에서 낙태권을 두고 강하게 맞붙었다. 해리스는 낙태를 헌법상 권리로 인정하고 임신 6개월 전까지 낙태를 가능케 했던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하게 된 것이 결국 트럼프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다면 그는 전국적인 낙태 금지법에 서명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로 대 웨이드'를 폐기한 판결은 2022년 조 바이든 행정부 때 나왔다. 하지만 트럼프가 대통령 재임 시절 보수 성향 대법관 세 명을 임명하면서 대법원 이념 구도를 6대3의 '보수 절대 우위' 구도로 재편했기에 가능한 판결이었다. 이 판결로 낙태권 존폐에 대한 결정은 각 주 정부 및 의회의 권한으로 넘어가게 됐다.

(로스앤젤레스 로이터=뉴스1) 임여익 기자 = 여성의 임신중지권을 보장하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미국 대법원이 뒤집은 지 2주년이 되는 날, 대법원 판결에 항의하는 여성들이 거리로 나선 모습. 여성들은 '강요된 모성은 여성의 노예화다' '여성을 위해 파란색(민주당)에 투표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2024.06.24 ⓒ 로이터=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로스앤젤레스 로이터=뉴스1) 임여익 기자

해리스는 토론에서 "트럼프는 재임 당시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관 9명 중 3명을 직접 골랐다'며 "낙태권을 후퇴시키려는 의도가 있었고, 대법관들은 정확히 그(트럼프)의 의도대로 움직였다"고 맹공했다.

또 "낙태 금지로 인해 주차장에서 아이를 낳거나 15살 소녀가 임신을 유지해야 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며 "성폭행과 근친상간 등 긴급한 상황에서 낙태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여성에게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에 트럼프는 "해리스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며 "나는 낙태를 금지한 적 없다. 낙태 금지법에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트럼프는 "대부분의 법학자들이 낙태가 (연방 차원이 아닌) 주 차원에서 규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며 "연방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은 것은 각 주가 생식권을 (자체적으로) 규제하도록 하는 것이 옳기 때문"이라고 했다.

해리스는 TV토론 후 첫 유세였던 12일(현지시간) 노스캐롤라이나주 유세에서 다시 낙태권을 언급하면서 "나는 의회가 여성의 생식권 자유를 회복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면 자랑스럽게 서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번 대선의 성격을 "정부가 아닌 여성 자신이 자기 몸에 대해 결정할 자유와 같은 근본적 자유를 위한 싸움"이라고 규정했다.

해리스가 이처럼 낙태권 이슈에 열을 올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로 대 웨이드' 판결 폐기에 따라 보수 성향 주 정부들이 낙태를 엄격하게 금지하자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그 결과 이번 대선일에 미국 50개주 중 10개주가 낙태권의 주 헌법 명시 여부를 결정하는 투표를 치르기로 했다. 이 중에는 대선 결과를 결정하는 7곳의 경합주 중 2곳인 애리조나와 네바다도 포함돼 있다. 해리스는 낙태권 헌법 명시를 위해 투표장에 나오는 여성들이 많을수록 대선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국민의힘 의원들이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2대 국회 개원식 겸 제418회 국회(정기회) 개회식에서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2024.09.02. kkssmm99@newsis.com /사진=고승민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낙태권 논란은 우리나라와도 무관치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2019년 낙태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나왔지만 이후 5년 동안 입법 공백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낙태는 합법도 불법도 아닌 회색지대에 놓인 상태다.

그간 국회의원들은 여러 법안을 발의했지만 임기 만료로 모두 폐기됐다. 낙태 허용 주수에 대한 생각도 모두 달랐다. 조해진 전 국민의힘 의원은 6주까지를, 서정숙 전 국민의힘 의원은 10주까지를 주장했다. 정의당과 권인숙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낙태 전면 허용을 주장했다. 2020년 당시 정부는 낙태를 14주까지 허용해야 한다는 내용의 입법안을 냈다.

낙태죄 관련 법안들이 모두 임기 만료로 폐기된 이유는 의원들이 낙태를 상임위에서 논의하길 꺼리기 때문이다. 헌재에서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났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낙태는 의견이 크게 엇갈리는 사안이다. 특히 종교계의 반대가 심하다. 한 의원실 보좌관은 "솔직히 낙태 같은 사안은 표를 먹고 사는 의원들이 자유롭게 논의하기 어려운 사안"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되는 미국 대선에서 낙태권 논쟁이 불붙으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낙태죄에 대한 사회적 토론이 다시 이뤄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은 "우리나라 국회의원들도 이번 미국 대선에서 낙태권이 주요 이슈로 부상하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바가 있어야 한다"며 "우리나라 여성들은 지금 무법천지에 놓여있는 상황이다. 22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에 따른 후속 입법을 1순위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채원 기자 chae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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