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거짓말에 홀려, 후회했다가 이해했다
남극 백두봉 등반기
가야봉에서 돌아오는데 온실 문이 열려 있었다. “무슨 작업 하세요?” 하고 외쳤더니 동그란 안경에 비니를 쓴 대원이 기계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케이(K) 선생과의 첫 만남이었다.
“들어오세요!”
“지금 가야봉 다녀오는 길이라서 뭐가 묻어 있을지 몰라요.” 문간에 서서 설명했다. 세척하지 않은 복장으로 온실에 들어갔다가 소중한 상추와 오이에 문제라도 생기면 비타민 시(C) 공급에 차질이 생기지 않는가. 그러자 케이 선생이 밖으로 나왔다.
“뭐 하고 계셨어요?” “대장님이 온실 설비를 돌려 발생하는 열로 나중에 겨울이 되면 지붕 눈을 녹일 수 있을까 하는 아이디어를 주셔서 테스트 중이에요. 에너지가 절약되거든요.”
케이 선생은 눈빛이 차분했고 나직나직한 목소리였다. 남극에는 벌이 없으니까 직접 사람이 수분 역할을 하는 게 맞느냐고 묻자 고개를 끄덕였다. “붓으로 해주지만 저번 차대에서도 호박이 잘 안 열렸대요. 그래서 호박잎만 내놨더니 영 인기가 없었다고 해요.” 남극 생활이 어떠냐고 묻자 선생은 좋지만 답답함을 느낀다고 답했다. 기계 설비 기술자로 외국에서 자주 머물러 낯선 곳에 대한 불편함은 없지만 2인1조라는 원칙 때문에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가 어렵다고. 자기 고독으로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이 사람에게는 늘 필요한 법이니까, 선생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내심 ‘등산은 안 해야지’ 생각했지만
저녁 시간에 월동 천사에게 인터뷰를 부탁했다. 월동 천사는 지질 환경 조사를 나가야 하니 내일 같이 가자고 권했다. 인터뷰 요청이 늘 조심스러웠기 때문에 나는 무조건 좋다고 동의했다. 어느 포인트를 가느냐고 묻자 마리안 소만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쪽이라 설명했고, 그 말을 들은 벡터가 합류하겠다고 나섰다. 전망대 근처가 백두봉, 세종봉이라 다시 가보고 싶다는 거였다.
나는 인터뷰만 하고 등산은 하지 말아야지, 내심 계산하며 그러자고 했다.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는데 “너희 아빠가 이상해” 하는 엄마의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다. 말수가 줄고 기력이 떨어지고 우울해한다는 거였다. 내가 걱정되나 싶어 아빠에게 메시지를 남겼더니 조심히 잘 지내라는 평소와 다름없는 답이 전해졌다. 나는 사람이 가끔 기분이 처질 수도 있지, 하며 엄마에게 걱정 말라고 안심시켰다.
다음날 아침 드디어 메뉴로 김밥이 나왔다. 무려 소고기 김밥이라 구름 대원이 좋아하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쉽게도 그는 밥을 못 먹고 관측을 나갔다고 했다. 식생팀 식구들과 함께 이제 우리 아지트나 다름없는 체육관 옆 케이지엘투(KGL2, 킹조지섬 장기생태모니터링2)로 관측을 나갔다. 엠 박사는 홍 선생이 끊임없이 “뭔가가 있다!”고 주장한, 모 지의류가 어떤 것은 국수처럼 자라고 왜 다른 것은 칼국수처럼 자라는가 하는 연구에 참여하기로 한 듯했다. 그 연구는 지의류의 생태를 통해 남극 대륙의 현재와 전지구적 기후위기의 전망까지 담아낼 수 있는 중요한 연구임에 틀림없었지만 여기서 자세히 밝힐 수는 없다. 다른 나라 과학자들이 아이디어를 얻으면 곤란하니까. 다시 강조하는데 절대 내가 이해 못해서는 아니다.
어쨌든 나는 입남극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국수가락과 칼국수가락 연구를 위한 실험을 도우며 오전을 보냈다. 대체로 모든 이슈들에 “다 스트레스 때문이라니까요!” 하고 그 분야 학위 보유자다운 쿨한 반응을 보이던 엠 박사는 그 스트레스의 촘촘한 경우의 수와 세밀함에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자기 전공을 바탕으로 실험 모델을 세우고 의견을 제시하며 집중하기 시작했다. 몇주 동안 엠 박사도 나도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극이 우리에게 의욕을 불어넣는 것 같았다.
마리안 소만의 에메랄드빛 윤슬
드디어 오후 2시 월동 천사와 나, 벡터 그리고 울프염 대원은 마리안 소만 쪽으로 걸었다. 울프염 대원은 입남극 첫날 늑대털모자를 쓰고 선착장에 등장해 외국 과학자들까지 몰려들어 기념사진을 찍고 간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었다. 다행히 날은 맑았고 바람도 평소만큼만 세게 불었다. 월동 천사는 우리를 데리고 세종봉 쪽으로 향해 가면서 동굴 탐사대로 활동했던 경험을 들려주었다. 그가 잠수했던 곳은 마을 사람들도 알지 못하거나 심지어 지도에 나오지도 않는 동굴들이었다. 탐사대가 존재를 확인해서 기관에 알려주는 일도 있었다. 신기하고 놀라웠지만 위험하게 들리기도 했다. 실제로 출구를 못 찾아서 큰일 날 뻔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화제가 내게로 넘어왔다.
“작가님이 오신다고 해서 소설집을 찾아 읽었습니다.”
“와, 감사드려요. 어떤 책을 보셨어요?”
“‘너무 한낮의 연애’ 단편들을 읽었는데….”
“아…, 읽어보니 저 제정신 아닌 것 같죠?” 민망해지면서 나는 불쑥 그렇게 말했다. 농담이기는 했지만 사실이기도 했다. 그 시절 단편들은 내 안의 트라우마를 집요하게 파고들며 쓴 것들이기 때문이었다.
“아뇨, 아뇨. 제게는 조금 어렵더라고요.”
그리고 월동 천사는 스쿠아 한마리를 가리켰다. 기지 주변을 늘 어슬렁거리던 녀석이 우리를 따라온 것이었다. 인식표를 차고 있어 알아볼 수 있었다. 우리끼리만 맛있는 걸 먹으러 간다고 생각했을까. 월동 천사는 스쿠아에게 집으로 가라고 손짓했지만 녀석은 딴청을 피웠다. 같이 걷는 길에서 마음은 더 투명하게 열린다. 우리는 각자가 사람들과 멀어지는 것을 얼마나 어려워하는 성격인가에 대해 얘기했다. 어떤 부모님 밑에서 자랐는지도 대화했다. 그러고 나자 동굴 속 어둠을 천천히 유영하는 월동 천사의 움직임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건 지나온 시절을 찬찬히 더듬으며 새 빛을 찾아가는 느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풍광 맛집이라는 ‘전망대’로 가는 길은 만만치 않은 자갈밭이었다. 바닷가 자갈들은 둥글기라도 하지 이곳의 빙퇴석들은 닿는 것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날카로웠다. 그래도 오른 보람이 있어 마침내 산중턱에 펼쳐진 평지에 이르렀다. 마리안 소만의 경이로운 풍경이 보였다. 마리안 소만은 빙하가 흘러내리면서 ‘유’(U)자형이 된 거대한 골짜기로, 그 일부는 드러나 있지만 대부분 바닷물에 잠겨 있는 피오르 지형이다. 급경사를 이루고 맥스웰만과 이어져 있다. 마리안 소만은 붕괴를 계속하면서 여기 인간과 동물 이외에 다른 생명, 움직이는 지구가 있다는 점을 인식시킨다.
가까이에서 본 마리안 소만과 그쪽으로 흘러드는 맥스웰만의 잔물결 그리고 모노톤의 화산석과 지의류가 어우러진 풍경에 나는 말을 잃었다. 조각품 같은 빙벽 위로 큰 새가 날았다. 남방큰풀마갈매기일까. 반짝이는 윤슬을 띠며 고요히 움직이는 에메랄드빛 바다를 주시하는 매 순간이 벅찼다. 조디악을 타고 애써 통과해 가야 하는 바다가 아니라 내가 서 있는 편으로 조용히 흘러드는 물길이었다. 그 앞에 서 있는 마리안 소만의 푸르고 흰 빙벽은 구원을 위해 모여드는 발길들을 받아안는 신처럼 성스러움을 띠었다.
세종봉에서 돌풍 맞고 넘어져
“저기가 세종봉이에요, 작가님.”
꼭 봐야 할 지층이 있다며 울프염 대원과 잠깐 사라졌던 월동 천사가 돌아와 가리켰다.
“네, 그렇군요.” 바람을 피해 큰 바위 옆에 붙어 있던 내가 말했다.
“올라가기 어렵지 않아요. 여기까지 오셨는데 한번 오르시죠.”
나는 이미 전망대의 풍경에 푹 빠져 있었기 때문에 그럴 생각은 별로 없었다.
“그래, 올라가자. 여기까지 왔는데 봉 하나는 올라가야지. 내가 정상에서 먹을 컵라면도 가져왔어.” 벡터도 권했다. 컵라면은 환영이지만 굳이 올라가야 할까? 월동 천사는 자기가 잘 안내할 테니 함께하자고 권했다. 하긴 지금 내게는 등산 스틱과 튼튼한 등산화까지 있지 않은가. 용기를 냈다.
월동 천사와 울프염은 등산의 신들이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세종봉을 그렇게 직진으로 올라가는 건 드문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젊은이답게 지름길도 둘러가는 길도 필요 없이 앞으로 앞으로 걸었다. 하지만 그곳은 너덜 지대였다. 풍화가 진행된 바위 조각들이 쌓여 발을 디딜 때마다 무너져 내렸다. 돌덩이 사이에 발이 빠지면 크게 넘어질 수도 있었다. 나는 산등 중간에 자주 멈추어 섰다. 어렵지 않다더니 천사도 가끔은 거짓말을 하는구나. 출발한 이상 멈출 수도 없고 나는 울고 싶었다.
“등산 스틱 없이 올라와보세요. 그게 더 나을 것 같은데.”
울프염 대원은 몸이 가벼웠고 뒷산 산책 나온 것처럼 편한 신발을 신고 있었다. 그런데도 정말 늑대처럼 벼랑을 잘도 올라갔다. 뒤처지는 나를 기다리느라 서 있는 시간이 길었는데, 나중에 들으니 그 때문에 너무 추웠다고 했다. 하지만 등산 초보인 인간을 여기까지 데려왔으니 그건 천사와 늑대가 짊어져야 할 몫이었다. 나는 도움이 되려나 싶어 등산 스틱을 접고 네발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속도는 났지만 모양이 너무 빠져서 다시 인간답게 이족 보행을 시작했다. 결빙과 해빙의 에너지가 빚어낸 날카로운 돌들 사이에서 우리는 가끔 위태롭게 쉬었다. 그냥 전망대에 있는 건데 후회스러웠다.
여러 위기를 지나 드디어 세종봉에 오르자 다리가 후들거렸다. 세종기지를 포함한 바턴반도 전경이 두루 내려다보였다. 바람이 귓전을 마구 때리는 가운데에서도 나는 기지를 향해 ( 물론 안 들렸겠지만 ) 소리치며 손 흔들었고 최소한 등정을 망치지는 않았구나 싶어 기뻐했다. 월동 천사는 엄청나게 많은 사진을 촬영해주며 등반 성공을 축하하더니 산등성이로 이어져 있는 백두봉을 가리키며 킹조지섬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니까 가까이 가보자고 했다. 나는 그러자며 걷다가 순식간에 불어닥친 돌풍을 맞고 넘어졌다. 바람에 넘어가겠구나 싶은 순간 저항하지 않고 먼저 옆으로 뒹군 것이다. 괜히 몸을 지탱하려다가 손목이나 허리가 다칠 수도 있으니까. 등산 경험 많은 벡터가 정말 잘했다고, 큰일 날 뻔했다고 칭찬해주었다. 역시 사람은 닥치면 뭐든 하게 돼 있구나 싶었다.
백두봉 아래에 도착하자 월동 천사가 아주 따뜻한 목소리로 “작가님, 여기까지 왔는데 올라가시죠” 하고 내 귀를 의심할 제안을 했다. 더 이상 월동 천사라 부를 수 없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당신은 혹시 월동 등반 조교가 아닌가. 나는 거절을 잘 못 하는 성격이지만 그 순간 바닥에 드러누워버렸다.
“저는 이제 도저히 다시는 한 발자국도 올라갈 수가 없어요. 여러분, 올라갔다 오세요. 저는 밑에서 기다리면 되잖아요.”
그 순간 세 사람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하기는 못 간다고 자갈밭에 대자로 뻗은 사람을 설득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늑대염 대원은 말없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뒤돌아 서 있었고 벡터는 내가 힘든 건 충분히 이해한다고 속삭였다.
“저번에 홍 선생과 온 길보다 더 힘들어. 나도 죽겠어. 그래도 여기까지 왔잖아.”
‘등반 내내 후회’ 단숨에 날린 절경
시위하듯 누워 있는 동안 남극의 푸른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까지 와서 돌아서면 나중에 후회할까. 이미 나는 경이로운 남극에 완전히 매료되었는데 굳이 가장 높은 봉우리까지 올라가서 ‘끝장’을 봐야 할까. 하지만 앞으로 나는 이곳에 다시 오지 못한다. 세상 어느 여행지이든, 돈만 있으면 두번 세번 갈 수 있지만 남극은 한번 빠져나가면 이제 영원히 잃어버리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재회는 기억으로만 가능하겠지. 월동 천사는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쉬니까 힘이 나긴 나네요.” 이내 나는 몸을 일으켰다.
그건 등반보다는 클라이밍에 가깝지 않았을까. 나는 왜 월동 대원들 중에서도 여기를 안 올라와보고 귀국하는 이들이 있는지를 혹독히 이해했다. 거기를 어떻게 올라갔는지 돌아오고 나서도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발밑으로 무너지는 자갈들, 날카로워 디딜 수 없는 암석들, 믿을 건 같이 올라가고 있는 사람들밖에 없었다. 그 믿음으로 한발 한발 오르자 정상이 보였다. 안도하는 순간 거기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1미터 정도 높이의 절벽을 올라야 한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그때 먼저 올라간 월동 천사가 두 팔을 내밀었고 거의 완력으로 나를 끌어올렸다. 우리는 몇명 서 있기에도 좁은 산마루에 올라 소리 지르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등반 내내 월동 천사에게 홀려 여기까지 온 것을 후회했지만 정상에 도착하자 왜 그가 이곳에 와야 한다고 이끌었는지 완전히 이해했다. 거기서는 모든 것이 한눈에 보였다. 내가 평생 살면서 가장 먼 곳을 바라본 순간이 아닐까. 레고블록처럼 축소된 세종기지, 크레바스를 품고 있는 포터 소만, 칠레, 러시아, 우루과이 기지 등이 자리한 필즈반도, 북쪽의 넬슨섬과 얼음탑처럼 솟은 플로렌스 누나탁(빙원 중간에 솟아 드러난 암반) 그리고 그 주위를 흐르는 깊은 남극해가 펼쳐졌다.
글·사진 김금희 소설가
단편집 ‘너무 한낮의 연애’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 ‘복자에게’, 에세이 ‘사랑 밖의 모든 말들’ ‘식물적 낙관’ 등을 썼다. 작고 단순하고 환해지기 위해 늘 분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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