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로 보는 세상] '한가위 보름달만 같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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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는 풍성하다.
먹을거리가 넉넉해 인심이 풍성하고, 하늘에 뜬 보름달이 풍성하다.
보름달 뜬 가을에 조각배가 기우뚱거리는 것도 잊고 호수에 뜬 달을 건지는 이는 이태백이다.
'한가위 보름달만 같아라'는 우리네 덕담은 넉넉한 음식과 숙성된 계절에 힘입은 것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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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도광환 기자 = 한가위는 풍성하다.
먹을거리가 넉넉해 인심이 풍성하고, 하늘에 뜬 보름달이 풍성하다. 비가 오거나 날이 흐려도 그렇다. 이미 마음속에 들어찬 까닭이다.
보름달이든, 초승달이든, 달이 친근한 이유는 은은한 달빛 덕이다. 햇빛은 생명이지만, 너무 강한 탓에 바로 볼 수 없다. 달빛은 바라봄이다.
동양에서 달을 상징하는 인물은 '시선(詩仙')으로 불리는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백. 701~762)이다. 오죽하면 우리 노래에 "이태백이 놀던 달아"하며 흥겹게 그를 소환했을까.
술에 취한 이태백이 달에 취해 노는 모습을 그린 우리 그림이 있다. 17세기 익명의 화가가 그린 '물에 뜬 달'이다.
보름달 뜬 가을에 조각배가 기우뚱거리는 것도 잊고 호수에 뜬 달을 건지는 이는 이태백이다. 배 끝에 앉은 동자는 근심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미술 평론가 손철주는 더할 나위 없는 표현으로 이 그림을 해설했다. "벗은 나무는 추수(秋樹)요, 맑은 물은 추수(秋水)며, 달 건지는 가을걷이는 추수(秋收)다" 이태백이 건지려는 달은 자연을 건지며, 아름다움을 빚어내는 몸짓이다.
달빛 사랑은 동양에만 있지 않다. 영국 화가 존 엣킨슨 그림쇼(1836~1893)다.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못했으나, 뒤늦게 그림 그리기에 전념해 달빛 풍경과 부둣가 정경을 통해 감탄스러운 미감을 자아내는 화가다.
그가 그리는 달빛 풍경은 분주하지 않다. '고즈넉하다'는 우리말이 이처럼 어울리는 경관도 드물다.
'보름달 뜬 휘트비 부두'(1867)에 그의 주 소재인 달과 부두를 그렸다. 달무리, 구름, 물, 다리, 배 등 어디 하나 눈이 가지 않는 곳이 없다. 세부 묘사에 뛰어났던 그의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나무 그림자로 가득한 길에 드리운 달빛 운치는 '공원 벽 나무 그림자'(1872)에서 절정을 이룬다. 잘 찍은 한 장의 야경 사진처럼 명암이 살아 움직이는 듯하고, 혼자 걷는 여인은 달빛 덕에 외롭거나 두렵지 않을 것 같다.
길 가던 여인이 드디어 연인을 만난 것일까? '연인들'(1874)이라는 작품에서 둘은 꼭 껴안으며 사랑을 보듬고 있다. 달빛이 그들을 한껏 품은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둘을 맺어준 건 달빛이기 때문이다.
그림쇼는 달빛 작품에 사람을 많이 등장시키지 않는다. 한 명으로 족한 그림도 많다. 달과 달빛이 우러나는 밤의 시간을 홀로 즐겨보라는 재촉인 것 같다. 그림을 보는 이도 혼자 감상하라는 권유인 듯하다.
그러니 그의 그림을 보며 시간여행을 떠날 음악이 필요하다. 드뷔시의 '달빛'이나 베토벤의 '월광'은 초가을 정취를 추수(追隨)하게 한다. 마음을 부풀리며 추수(秋收)의 풍요에 빠지게 만든다.
달은 땅을 비추고 물을 비춘다. 제가 태어난 하늘도 비춘다. 햇빛처럼 흑백으로 나누는 빛이 아닌, 모든 대상을 감싸는 빛이다. 오랜 시간 인류가 달빛을 사랑하는 이유다.
현대화가 박상남(1961~)은 길거리 바닥을 소재로 단순한 추상화를 그리는 화가다.
그의 한 작품에 두 개의 달이 떴다. 하늘과 물이다. 맨 처음 본 이태백 그림과는 달리 사람은 없지만, 온 세상을 마중하는 듯하다.
'한가위 보름달만 같아라'는 우리네 덕담은 넉넉한 음식과 숙성된 계절에 힘입은 것만은 아니다. 문득 만나는 달빛이 어떤 계절보다 아늑한 덕이다.
추석을 맞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모여 달을 보는 것도 좋겠지만, 달빛에 더 공명하고 싶다면, 한 번쯤 홀로 마주하는 건 어떨까? 혼자 보는 달이 말을 걸어올지도 모른다.
doh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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