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규제 못 하는 한국…공정 경쟁·산업 혁신 모두 놓칠라

김지현 2024. 9. 14.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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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플랫폼 규제' 여전한 우려
이리저리 기준 피해가는 빅테크
구글(왼쪽부터)과 애플, 페이스북(메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주요 빅테크의 로고. AFP

빅테크 규제를 강화하는 세계적 흐름이 나타나고 있지만 한국은 거꾸로 가는 모습이다. 정부가 플랫폼공정경쟁촉진법(플랫폼법)을 새로 만들어 강하게 제재하는 대신 공정거래법을 고쳐 대응하기로 했지만 규제 사각지대에서 지배력을 키우고 있는 해외 플랫폼에 대한 실효적 규제는 여전히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3일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뜯어보면 플랫폼을 규제하는 위법 행위는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최혜대우 요구 등이 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규제 대상, 즉 '지배적 플랫폼을 누구로 보느냐'다. 개정안에는 중개, 검색, 동영상,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운용체계, 광고 등 6개 분야에 대해 반경쟁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①시장점유율 60% 이상 ②이용자 수 1,000만 명 이상 ③플랫폼 관련 연 매출액 4조 원 이상 등 세 가지 기준을 동시에 충족하면 지배적 플랫폼으로 본다. 업계에선 네이버, 카카오, 구글, 애플이 지배적 사업자로 선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매출·MAU 등 숨기며 규제 피해가는 빅테크

글로벌 경제·기술 패권 다툼에서 경제안보를 앞세운 신보호주의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문제는 구글과 애플 등 글로벌 기업은 규제를 피해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한국 매출과 이용자 수 등의 지표를 제대로 알 수 없어서다. 실제 구글코리아가 밝힌 지난해 연간 매출은 3,653억 원. 한국재무관리학회가 최근 발표한 구글코리아의 지난해 추정 매출 약 12조 원의 32분의 1에 불과하다. 구글이 법인세율이 비교적 낮은 싱가포르, 아일랜드 등에 지역 거점을 두기 때문에 한국 매출 규모가 실제보다 적게 집계된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비즈니스를 하는 빅테크는 각국의 법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가 이익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데 능숙하기도 하다. 유럽연합(EU)이 디지털서비스법(DSA) 의무사항을 부과받는 초대형 플랫폼 기업 기준으로 월간활성이용자수(MAU) 4,500만 명을 제시하자 텔레그램은 올해 2월 EU 지역 이용자가 4,100만 명이라고 밝히며 DSA 대상 기업을 피해갔다.

김명주 서울여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글로벌 기업은 국내에 서버도 없고 본사도 없어서 매출 신고가 명확하지 않고 빠져나갈 구멍들이 얼마든지 있다"면서 "플랫폼의 규모를 측정할 수 있는 공신력 있는 지표를 도입하지 않고 현행 기준을 적용하면 결과적으론 국내 기업만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봤다.


국내 기업은 여전히 '역차별'에 불만

경기 성남시 분당구 네이버 본사(위)와 카카오 판교아지트. 네이버 제공·뉴시스

각국이 규제를 통해 자국 기업을 보호하고 글로벌 기업의 확장을 제한하는 '국가 플랫폼 자본주의'를 추구하는데 국내에선 이런 논의가 더디다는 불만도 나온다. 전 세계를 통틀어 미국 빅테크의 지배를 받지 않고 자국 검색·메신저 플랫폼이 살아남은 유일한 곳이 한국인 만큼 국내 산업을 진흥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업계에선 특히 공정위가 ⓐ반(反)경쟁 행위의 신속한 차단을 위해 시정조치 전 사업 행위를 중단하는 임시중지명령제도 도입과 ⓑ플랫폼 사업자에게 강화된 입증 책임 부여를 예고한 데 대해 불만이 많다. 더불어민주당이 공정위 안보다 훨씬 강력하고 포괄적으로 플랫폼을 규제하는 '온라인플랫폼법' 입법을 예고하고 있지만 이 역시 글로벌 기업 대부분은 피해갈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국내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공정한 경쟁은 물론 산업 혁신 측면도 함께 봐야 하는데 플랫폼 문제를 바라보는 시야가 좁은 것 같다"고 말했다.


국가 플랫폼 자본주의 시대에 맞는 해법은?

시각물=김대훈 기자

하지만 독점력을 바탕으로 한 플랫폼의 반칙 행위를 언제까지 방치할 순 없는 노릇이다. 이 때문에 EU의 디지털시장법(DMA)이나 디지털서비스법은 모두 미국 중심의 글로벌 빅테크에 대한 견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본도 '통신시장 활성화를 위한 규제법'을 발의했는데 내용을 살펴보면 사실상 구글과 애플 등 빅테크를 겨냥한 법안으로 봐야 한다. 적용 범위를 스마트폰과 PC 등 운영체제(OS) 영역으로 한정했다.

전문가들은 플랫폼 규제의 실효성을 확보하면서 역차별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대학원 교수는 "어느 정도 선에서 우리 국민이나 소상공인에게 끼치는 영향이 있는지를 사전에 추정해보고 규제 대상 기준부터 정해야 할 것 같다"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글로벌 플랫폼의 갑질에 대한 규제는 국제 공조가 필요하다"며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나라들과 연합해서 '글로벌 기준'을 정하는 것도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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