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시선] 70년만에 '정년 연장' 나선 중국…세대갈등 해소는 '숙제'
당국 "인구 구조상 정년 연장 필요" 설명에도 청년층 "일자리 빼앗긴다" 반발
(베이징=연합뉴스) 정성조 특파원 = 요즘 중국 사회의 최대 화두 중 하나는 '정년 연장'이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국회 격) 상무위원회는 지난 13일 '법정 퇴직 연령의 점진적 연장에 관한 결정'을 발표했다.
현재 남성 노동자 60세, 여성 간부(당정 기관과 국유기업, 공공기관 등의 관리직) 55세, 여성 노동자 50세인 퇴직 연령을 내년부터 15년에 걸쳐 남성 노동자 63세, 여성 간부 58세, 여성 노동자 55세로 늘리는 것이 골자다.
이미 대세가 된 저출산·고령화 흐름과 양로보험(노령연금) 부담, 이미 정년이 60세를 넘어선 다른 나라들에 비해 노동 연한이 짧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정년 연장은 필연적인 선택으로 보이지만, 중국 청년들 사이에서는 가뜩이나 심각한 취업난이 가중될 것이라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70년 묵은 '남성 60세·여성 50세' 정년…고령화 추세에 부담 가속화
현행 중국 정년 제도의 뼈대는 건국 직후인 1950년대에 만들어졌다.
1951년 정무원(현 국무원)은 '노동보험조례'에서 법정 퇴직 연령을 남성 60세, 여성 50세로 규정했다. 1955년에는 여성 노동자를 간부(기술자)와 일반 노동자로 구분하면서 여성 간부 퇴직 연령을 55세로 늘렸다.
지금 관점에서는 남녀 퇴직 연령에 차이를 둔 것이 '차별'로 비판받을 소지가 있지만 "여성은 하늘의 절반을 짊어질 수 있다"는 마오쩌둥의 구호 아래 봉건적 성차별 타파 정책을 폈던 건국 초기 중국 분위기에서는 오히려 '여성 보호'와 '노동 해방' 성격이 있었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짧은 평균 수명과 사회적 부양 능력도 이런 정년 구조를 가능케 한 요인이다.
유엔(UN) 추계에 따르면 중국인 평균 수명은 1950년 43.45세, 1960년 44.50세 수준에 머물다 1970년 57.95세, 1980년 66.41세, 1990년 69.10세가 된다.
그런데 인구 구조가 고령화 단계에 접어들고 개혁·개방으로 도시 인구 비중이 증가하면서 사회적 부양 모델에 차츰 부담이 더해졌다.
중국인 평균 수명은 작년에는 77.47세, 올해는 77.64세(중국 정부 추산 78.6세)로 늘었다.
중국 민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통계를 보면 중국은 작년 말 기준 60세 이상 인구가 2억9천697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21.1%를 기록, 사상 처음으로 20% 선을 넘는 '중등도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
중국은 2035년이 되면 60세 이상 인구가 4억2천만명에 달해 30% 선을 넘고 2050년에는 노년 인구 비중이 정점을 찍을 것으로 예측된다.
노동 인구가 줄어드는 가운데 퇴직 인구가 늘면서 사회적 부양비도 증가하고 있다.
2010년부터 2022년까지 도시 기본 양로보험 수령 대상자는 6천300만명에서 1억3천600만명으로 두배 넘게 증가했고, 퇴직자 1명당 보험료 납부자가 3.2명에서 2.7명으로 감소했다. 2050년이면 이 부양 비율은 1.3 대 1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수십 년 검토 '정년연장' 카드 꺼낸 당국…청년들은 '부글부글'
중국의 정년 연장 논의는 1990년대부터 꾸준히 나왔다.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활발해진 상황을 반영해 '차별 철폐' 차원에서 여성의 정년을 남성과 같은 60세로 맞추자는 전국부녀연합회 등 여성계 주장이 대표적이다.
고령화 추세가 가속하면서 중국 당정 역시 정년 연장 카드를 계속해서 검토할 수밖에 없었다.
2013년 중국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18기 3중전회)에서는 '점진적 퇴직 연령 연장' 정책을 연구·제정하겠다는 방침이 도출됐고, 2016년 제13차 5개년계획에는 노동 인구 감소에 대응해 점진적 퇴직 연령 연장 정책을 실시한다는 입장이 포함됐다.
올해 7월 열린 제20기 중앙위 제3차 전체회의(20기 3중전회)에서는 자발성·탄력성이라는 원칙과 함께 정년 개혁 목표가 제시됐다.
13일 정년 연장 조치를 확정한 왕샤오핑 인력자원사회보장부장(장관)은 기자회견에서 기대 수명이 높아진 데다 신규 노동력의 평균 교육 연한이 개혁·개방 초기의 8년에서 현재 14년으로 늘어 취업 시점 자체가 늦춰졌다는 점, 노동 인구 감소로 경제·사회 발전 활력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 등을 정책 조정 배경으로 들었다.
청년층은 정년 연장 방안이 거론될 때마다 반대 입장을 취해왔지만, 코로나19 대유행을 전후해 심각해진 청년실업 상황에서 이번에는 어느 때보다도 강경한 반응을 쏟아내고 있다.
웨이보(微博·중국판 엑스) 등 소셜미디어에서는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정년 연장 결정 초안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처음 알려진 지난 10일부터 '노년층이 청년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등 비판이 줄을 이었다.
13일 중국 관영매체들에 의해 전국인민대표대회 의결 소식이 보도되자 웨이보 상위 10대 인기 검색어는 순식간에 절반 이상이 '정년 연장'으로 들어찼다.
중국의 전자 사회보험 시스템은 당국의 발표 직후부터 한동안 접속이 안 되는 '먹통' 상태에 빠졌다. 자신이 앞으로 내야 할 양로보험을 검색하려는 네티즌 방문이 폭주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성장 동력 상실' 우려 속 정책 조정…"내수 중심 경제 전환 필요"
70년 넘게 유지된 정년 제도를 손본 중국의 결정은 최근 경제 둔화 상황이 장기적 '뉴노멀'이 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과 무관치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소비·투자·정부 지출·수출 등 경제 활동 구성요소 전반이 선순환을 일으킨 것에 힘입어 고속 성장을 달성했다. 청년 인구가 생산·소비의 중심에 서면서 '인구 보너스'를 톡톡히 누렸다.
하지만 이제 부동산 침체 속에 투자와 내수가 침체하고 있고, 지방정부들의 부채난으로 정부 투자도 어려움을 겪는 중이다. 그나마 성장을 견인해온 수출도 서방 진영 견제로 난관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가운데 1960∼1970년대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 연령을 맞았고, 현재 정년 구조상 매년 2천만명 이상의 퇴직 추세가 향후 10년은 이어질 전망이다.
중국 안팎 전문가들은 중국이 내수 중심의 경제로 전환해야 장기 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고 조언해왔고, 중국 당국도 그 해답을 모르지 않는다.
퇴직 제도의 전환은 경제 체질 전환 차원에서도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다만 비등하는 청년층 불만을 어떻게 관리할지, 미봉책 위주의 내수 진작 조치를 넘어 일자리 창출과 실제 국민 소득 증대를 어떻게 끌어낼지 등 성장 둔화 국면에 놓인 중국의 과제는 산적해 있다.
로건 라이트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중국 경제 담당 연구원은 지난달 미국 계간 '차이나 리더십 모니터'에 실은 논문에서 "내수 진작 없는 제조업 주도의 성장은 중국이 타국의 시장 지분을 빼앗음으로써만 성장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고, 그것은 무역 방어(충돌)를 낳을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xi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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