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 관계의 급소를 찌르는 대만 총통 라이칭더의 지략
송재윤의 슬픈 중국: 변방의 중국몽 <45회>
중국의 위협에 맞서는 대만의 굴기
1992년 8월 한중 수교를 계기로 흙빛이던 반도(半島)의 ‘중국몽’은 장밋빛이 되었다. 체제와 이념과 상관없이 당시 인구 11억 6000만의 중국은 1인당 GDP 1만 달러를 향해 질주하던 대한민국에 거대한 시장을 제공할 꿈의 대륙으로 여겨졌다. 그로부터 32년, 반도의 중국몽은 빛과 그늘을 동시에 남기면서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한중 수교 32주년은 대만과의 단교 32주년이기도 하다. 1992년 8월 24일 오후 4시 서울 중국 명동의 주한중화민국대사관에서 청천백일기를 하강할 때, 대사관 경내에 세워진 중화민국의 국부 쑨원(孫文, 1866-1925) 동상 아래 모여 울면서 그 장면을 지켜보던 2000여 명 대사관 직원과 화교의 손에는 “망은부의(忘恩負義)”라 적힌 플래카드가 들려 있었다. 은혜를 잊고 정의를 저버린다는 뜻이다.
중화민국은 1930년대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물심양면 지원했고, 1943년 카이로 회담에선 한국 독립 확약을 주도했으며, 6·25전쟁 이후엔 자유 진영의 전초기지로서 대한민국과 명운을 같이 했던 선린 국가였다. 물론 중화민국과 단교하고 중화인민공화국과 국교를 튼 당시 대한민국의 결정은 세계사의 큰 흐름에 비춰보건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일본은 1972년에 대만과 단교했고, 미국은 1979년에 단교했다.
다만 사전 예고도 없이 72시간 이내에 대사관을 비우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한 한국 정부의 당시 결정은 지나쳤다. 그 당시 주대만 한국대사관 1등 서기관이었던 조희용 전 주캐나다대사는 ‘중화민국 리포트 1990-1993: 대만단교 회고’(선인, 2022)에서 “존중·배려 결여로 상처를 입혔다”고 기록했다. 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까? 여러 변명이 있겠지만, 한국 문화에 뿌리 깊은 사대주의(事大主義)도 작용했던 듯하다. 과거 종주국으로 모시던 대국이 급기야 일어났으니 그 옆에 붙은 작은 섬은 하찮게 여겨지지 않았을까.
대한민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로부터 매몰차게 버림받았던 바로 그 대만은 죽지 않았다. 인구 2300만의 작은 섬이지만 구매력 기준으론 세계 20대 경제 규모이며 1인당 GDP 미화 3만3000달러를 자랑하는 명실공히 선진국이다. 대만은 전 세계 반도체 60%, 최첨단 반도체의 90%를 생산하는 글로벌 공급망의 허브이다. 군사적으로도 대만은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의 전략적 요충지다. 일본, 한국을 거쳐 필리핀, 호주로 이어지는 자유의 도련선 한 가운데에 대만이 놓여 있다. 한국은 지금까지 중국의 그늘에서 대만과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한 채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과연 앞으로도 지금처럼 어색한 관계에 머물러야만 할까?
중소 관계를 갈라놓는 대만 총통의 외교적 묘수
지난 9월 1일 취임 100일을 맞아 100분간 진행된 한 언론과의 대담에서 대만 총통 라이칭더(賴淸德, 1959- )는 미소 띤 얼굴로 침착하게 말했다.
“민주와 자유는 대만에서 이미 성장하여 번창하고 있다. 민주적인 대만이 이미 전 세계로 울창하게 가지를 치고 잎을 드리우고 있다는 점은 더욱 중요하다. 대만 인민이 누리는 민주와 자유의 생활방식을 중국이 그들에 대한 도전이라 생각할 수는 없다.”
이어서 그는 중러 관계의 급소를 찌르는 놀라운 발언을 이어갔다.
“중국이 대만을 침범하는 이유는 실상 영토를 온전하게 회복하기 위함이 아니다. 영토 회복이 목적이라면 왜 아이훈 조약(1858년) 체결로 현재 러시아가 점유하고 있는 토지는 돌려받으려 하지 않는가? 바로 지금이 러시아가 가장 약해진 상황이 아닌가? 대만을 침략하는 목적은 진정 무엇인가? 규칙에 기초한 세계 질서를 바꾸려는 의도이다. 서(西)태평양에서, 아니면 국제적으로 패권을 이루려는 의도다.”
중러 관계의 미묘한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서 중국공산당 대외 전략의 모순을 들춰내는 날카로운 한 수가 아닐 수 없다. 중국은 지금껏 대만이 본래 중국의 영토라면서 실지 회복의 차원에서 대만과의 통일을 중화민족의 역사적 사명이라 주장해 왔다. 진정 그러하다면 중국공산당은 왜 러시아제국에 빼앗긴 만주 동북부의 광활한 영토에 대해선 실지 회복을 주장하지 않는가? 대만은 기껏해야 면적 3만6000 평방킬로미터의 작은 섬일 뿐이다. 이에 비해 1858년 아이훈 조약과 1860년 베이징 조약으로 러시아에 넘어간 영토는 그 면적이 각각 60만 평방킬로미터와 40만 평방킬로미터에 달한다. 대만의 27.7배, 한반도 전체의 4.54배에 달하는 실로 광활한 영토이다.
라이칭더는 아이훈 조약으로 넘어간 영토만 언급했지만, 1921년 소련의 승인을 받고 독립한 몽골의 영토 역시 과거 청 제국에 속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몽골 북서쪽의 탕드 우랸하이(唐努烏梁海) 지역도 과거에는 청 제국의 일부였다. 이미 독립국으로 1세기 이상 유지된 몽골을 제외하더라도 러시아가 점유하는 150만 평방킬로미터의 영토가 본래는 청 제국의 땅이었다.
낮은 음성으로 부드럽게 라이칭더는 시진핑을 향해 돌직구를 던진다. 날마다 국토 수복을 외치며 전의(戰意)를 다지는 중국공산당이라면 당연히 러시아가 점유하는 과거 “중국” 영토를 되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군사 전략상 시베리아 극동 지방 군대가 우크라이나 전선에 재배치된 바로 이 순간이 가장 광활한 실지를 되찾을 절호의 기회가 아니겠는가?
물론 중국은 현재 러시아와 국경 분쟁을 벌일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그 대신 라이칭더가 총통으로 취임한 후 사흘 지난 시점에 중국은 대만의 분열주의적 망동을 응징하겠다며 이틀에 걸친 대규모 군사작전을 전개했다. 중국은 대만을 향해서는 완강하게 “국토 완정(完整)”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전쟁 불사를 외쳐대지만, 정작 러시아에 넘어간 땅에 대해선 한 마디도 못하고 있는 꼴이다. 잃어버린 국토 수복을 외치면서 북방의 광활한 대륙은 방치하고서 3만6000 평방킬로미터에 불과한 작은 섬만을 위협하는 중국의 태도는 분명 모순적이다. 물론 대만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 문제를 냉철하게 지적해 왔지만, 지금까지 대만의 총통이 전 세계를 향해 단도직입적으로 이 문제를 직접 제기한 전례는 없었다.
즉각 대응하는 러시아, 입 닫고 침묵하는 중국
라이칭더가 의도했던 결과였을까? 인터뷰 다음 날부터 로이터, 가디언, 뉴스위크 등 서방의 유수 언론들은 잇따라 그의 발언을 대서특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는 현시점에서 중·러 관계에 잠복해 온 국경 분쟁의 빌미가 수면 위로 표출됐기에 뉴스 가치가 돋보였을 수 있다. 오늘날 러시아가 150만 평방킬로미터에 달하는 과거 청 제국의 영토를 점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서방 언론인들에겐 충격적이었을 수도 있다. 당연히 서방 언론의 관심은 온통 모스크바와 베이징의 반응에 쏠렸다.
지난 160여 년 동안 과거 청 제국의 영토를 점유해 온 러시아는 당연히 현상 유지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은 1) “하나의 중국 원칙”을 재확인하고, 2) 중국의 일부인 대만은 베이징을 대변할 아무런 자격이 없음을 강조한 후, 3) 중국과 대만의 평화적인 통일을 기원한다고 발언했다. 무엇보다 러시아는 2004년 이미 중·러가 국경 문제에 합의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대만 분열주의자들의 배후에 미국이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과의 국경 분쟁을 감당할 수 없는 러시아로선 최선의 선제 대응이었다.
러시아와는 달리 중국은 일단 침묵으로 대응했다. 베이징 외교부는 물론, 국무원의 대만 판공실에서도 라이칭더의 발언에 대해서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9월 1일 라이칭더의 인터뷰가 방송된 후로 침묵은 닷새 동안 계속되었다. 민감한 대만 문제에 대해서 촌각을 다퉈 즉각 대응으로 일관해 온 중공 중앙이 그토록 긴 침묵을 지킨 선례도 없었을 듯하다.
라이칭더 발언에 대한 중국 정부의 침묵은 결코 어렵잖게 설명된다. 타이완이 공식적으로 중국 역사의 일부로 편입된 것은 1683년 강희제(康熙帝, 재위 1662-1722)가 파견한 청 제국의 군대가 명나라 수복을 내걸고 대만을 지배하던 정씨(鄭氏) 왕조의 동녕국(東寧國)을 복속시킨 후부터였다. 212년이 지나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결과로 1895년 대만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그 점에도 대만은 아이훈 조약과 베이징 조약으로 러시아에 넘어간 헤이룽장 동북 지역과 다를 바가 없다. 모두가 청 제국의 실지(失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중국은 러시아에 빼앗긴 영토에 대해선 실지 회복의 의지조차 표현하지 않는가?
가장 난감한 집단은 “중화민족”의 “영토 완정(完整)”을 지상 명령이라면서 대만에 대한 흡수 통일을 부르짖어 온 중국 외교가 전랑들과 중국 인터넷의 신세대 홍위병 소분홍(小紛紅, 분노 청년)이다. 라이칭더는 외교 전랑과 소분홍의 논리를 그대로 차용해서 베이징의 중공 중앙을 논리적 함정에 빠뜨린 셈이다.
논리 대신 감정에 호소하는 중국
닷새가 지난 9월 5일에야 중국 국무원 대만 사무판공실의 선전국(宣傳局) 국장 천빈화(陳斌華)가 기자회견에서 라이칭더의 발언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러시아는 2004년 중러 양국이 이미 영토 문제에 합의했다는 사실을 가장 중요한 논점으로 삼았지만, 중국은 라이칭더의 질문에 대한 논리적 대구는 한 마디도 없이 늘 되풀이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만을 소리 높여 외쳤다.
“라이칭더는 부단히 대만독립의 도발을 자행하면서 소위 ‘중국 위협’을 제멋대로 과장하고 있다. (1992년 홍콩에서 만나 ‘하나의 중국 원칙’을 천명한) ‘92 합의’를 거부하면서 외부 세력의 반중 논조에 완전히 영합하여 ‘무력으로써 독립을 획책하고(以武謀獨)’, ‘외세를 끼고 독립을 도모하고(倚外謀獨)’ 있다. 이는 완전히 대만독립의 입장에 서서 분열을 획책하는 짓거리다. 완전히 개념을 뒤집고 시비를 뒤섞는 그 일파의 망언은 대만독립을 추구하며 국가를 분열하고 대만해협의 평화를 파괴하려는 위험천만한 그들의 의중을 충분히 폭로한다.”
천빈화는 러시아가 점유한 실지도 회복하라는 라이칭더의 지적에 대해선 구체적 대응을 피한다. 대신 그의 주장이 “개념을 뒤집고 시비를 뒤섞는” 망언이라고 언급하고 넘어갈 뿐이다. 논쟁을 개시하면 중국이 러시아에 빼앗긴 중화민족의 실지를 회복할 의지가 없다는 사실만 드러나기 때문이다. 천빈화는 고작 대만은 국가가 아니므로 주권이 없다는 판에 박힌 주장만 거듭하면서 중국의 영토와 주권을 온전하게 지켜야 국제질서가 보위된다는 애매한 주장을 펼쳤다. 끝으로 그는 “대만의 동포”을 향해서 “민족 대의에서 출발하여 라이칭더와 민진당의 대만독립 도발에 견결히 반대하라” 촉구하며 언론과의 일문일답(一問一答)을 급히 마쳤다.
러시아령 실지 회복을 꿈꿨던 마오쩌둥
오늘날 중국공산당의 영도자들과는 달리 1960년대 마오쩌둥은 공식 외교 선상에서 19세기 중엽 러시아에 넘어간 청 제국의 옛 영토를 수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드러내곤 했다. 예컨대 1964년 9월 10일 마오쩌둥은 일본 사회당 총수와 만난 자리에서 과거 러시아가 시베리아와 극동의 캄차카반도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를 일방적으로 점령했다면서 중소 영토 분쟁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 상태라고 말했다. 아울러 마오쩌둥은 소련이 외몽고를 중국에 돌려주고, 쿠릴(일본어: 치시마 千島) 열도는 일본에 돌려줘야 한다는 발언까지 했다. (岡察洛夫[Sergey N. Goncharov], 李丹慧, “俄中關係中的領土要求和不平等條約,” 二十一世纪, 2004.10.)
실제로 중소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1969년 3월 우수리강 전바오섬(珍寶島)에서 수백 명의 인명이 희생되는 대규모 군사 분쟁이 일어났다. 그 당시 더 큰 분쟁으로 확전되진 않았지만, 우수리강 이동(以東) 지역은 중러 관계가 나빠질 때면 언제든 분쟁 지구로 변할 가능성이 있었다. 마오쩌둥의 뜻과는 달리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러시아와 1991년, 1997년, 2001년에 걸쳐서 양국의 국경선에 관한 상호조약을 체결했고, 러시아 대변인의 상기 언급대로 2004년 다시 한번 동부 지역 국경선에 관한 합의에 이르렀다.
그 점을 모를 리 없는 라이칭더는 중국이 러시아에 대해선 “영토의 온전한 회복”을 포기했음을 지적했다. 그 논점에 대해서 중국 정부는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뿐이다. 러시아 점유의 실지 회복을 공식적으로 포기한 2004년의 결정은 중국공산당이 지금껏 대만에 대해서 선양해 온 국토 회복의 논리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중러 관계의 급소를 찌르는 라이칭더의 예리한 공격 앞에서 중국의 외교 전랑들은 말문이 막힌 듯하다. 상투적으로 거친 언사를 쏟아낼 뿐 핵심을 찌르는 논리적 반론은 한 마디도 못하고 있다.
대만은 2300만 인구의 작은 섬이지만 개개인의 자유와 인권은 물론 제도적 민주주의가 온전하게 정착된 선진국이다. 라이칭더가 말하듯, 대만 인민이 누리는 민주와 자유가 중국에 대한 도전일 수는 없다. 전 총리 차이잉원(蔡英文) 때부터 계속된 주장이지만, 대만은 이미 실질적으로 독립된 상태이므로 구태여 대만독립을 소리쳐 외칠 필요가 없다.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에 참여하는 전 세계 모든 나라들이 양안의 현상 유지를 지지하는 이유가 바로 그 점에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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