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팔' 문형태 랩소디…볶음밥이 전하는 초심[박현주 아트클럽]
'Perfect Picture' 주제 신작 50여점 공개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 동화 같은 그림"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그 가난했던 시절 먹었던 '볶음밥'은 이제 완벽한 그림이 됐다.
전업 작가로 데뷔하고 늘 쪼들렸다. 중국집에 주문한 볶음밥이 좋았다. 밥, 짜장 소스, 짬뽕 국물을 따로 먹을 수 있어서였다. 밥만 지어두면 한 끼를 1/3씩 셋으로 나눠 세 끼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볶음밥을 먹었는데도 지금까지 가장 좋아하는 건 볶음밥이네요. 환경이 바뀌고 주머니 사정이 좋아졌지만 작가로서의 일상이나 고단함, 노동의 시간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문형태(48)의 신작 'Chinese Fried Rice'(2024)는 그의 초심을 보여준다. 볶음밥을 가슴에 품고 입맛을 다시고 있는 그림 속 문형태는 수저 들기를 멈추고 먼저 숫자를 쓰고 있다. 하나를 셋으로 나누는 1/3을 적는 과정인데 2처럼 보인다.
구질구질했던 시절 그를 배불리 했던 볶음밥은 희망을 상징한다. 그래서 이제 그는 안다. “모든 순간들은 항상 완벽한 그림"이 된다는 것을.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문형태 개인전(Perfect Picture)은 그의 저력을 다시 보여준다. 2022년 'CHOCKABLOCK'개인전 이후 2년 만에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신작 50여점이 공개됐다.
“제 작업을 동화와 연결한다면 動(움직일 동)과 畫(그림 화)를 사용하고 싶습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이라면 어떤 수식어도 마음에 들 것 같습니다.”문형태의 작업 근간은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있다. 동화 속 이야기를 전달하는 듯한 상상력을 함축하고 있다.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해 더 깊은 내면으로 세계관으로 사람들을 홀리는 작품은 희로애락이 빛난다. 그에게 고독과 동시에 행복을 준 그림은 보는 순간 눈길을 잡아 당기는 마력이 있다. 동화 같은 그림이지만, 볼수록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전하는 '묘한 그림'이다.
진득한 화면의 색감이 이상하게 마음을 끄는 이유가 있다. 작업의 밑 재료는 ‘흙’이다. 화면 위에 은은한 황토색이 만들어내는 따스하고 서정적인 분위기는 흙 물을 사용한 작업 방식 덕분이다.
“흙은 저의 일상을 시작하는 곳과 마무리하는 곳, 또한 생성과 소멸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의 삶의 흔적인 흙을 작업에 입힌다. 캔버스에 황토와 물을 섞어 바른 다음 표면에서 건조 된 흙을 걷어낸다. 노랗게 흙 물이 든 캔버스 위에 오일이나 크레파스로 형상을 탄생시킨다.
이 같은 작업 방식은 '모든 존재는 흙으로 회귀한다'는 깨달음에서 기인했다. “대학 시절 돌아가신 이모의 시신을 보고 인간의 죽음을 처음 느꼈습니다. 어차피 인간은 흙으로 돌아갑니다.”
문형태는 모든 작품에 흙을 바름으로써 자신의 손을 떠나는 작품들과 인사를 나눈다. 흙을 매개로 한 이러한 의식과도 같은 행위는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와 자연으로의 귀환과 삶의 과정을 보여준다.
자신의 내면을 돌아본 작품은 구상인데도 초현실주의로 흐른다. 사랑과 미움,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등 상반된 감정이 묘하게 어우러진다.
최근작 'Merry-go-Round' 는 회전목마를 타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그리고 있지만, 빙글빙글 회전하는 목마는 계속 오르락 내리락 하듯이 우리의 삶 역시 끝없는 오르내림의 반복임의 표현이다.
작품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숫자는 '관계 코드로 1은 자신, 2는 관계, 3은 가족, 4는 사회, 5는 고독을 의미한다. 독특한 이 표현 방식은 유년시절 외조부에 대한 기억에서 비롯됐다. 외조부는 자신이 빌려준 돈을 달력 뒷면에 기록해 두었는데, 이를 보고 인간의 생전 기억이 숫자로 단순화되어 각인될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문형태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기억의 코드화라는 독자적 방식을 통해 다양한 관계를 시각화했고, 그 관계가 만들어 내는 희노애락에 집중, 신비로움을 더욱 강조한다.
'잘 팔리는 그림'의 작가는 매번 부담감이 컸다. 이번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그는 이렇게 전했다.
오늘 마감한 그림은 평생 완성해야 할 큰 그림의 붓 질 한 번에 지나지 않는다. 작품을 만드는 기능인이 아니라 작업을 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30대에 미술시장 스타 작가로 부상한 그는 작품이 마르기도 전에 팔려나가 '마팔'이라는 별명도 있다. 전시 때마다 '솔드아웃' 품귀 현상을 빚는 마법 같은 그림이다. 중독성 있는 이번 신작도 날개가 돋았다. 자세히 보면 이상하고 기괴한 형상인데 묘하게 아름답다.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품은 '관계의 미학'을 전한다. 신작도 완벽한 디테일로 마음을 훔친다. 밀도감이 높아져 더 진득해지고 부드러워졌다. 작가로서 혼신을 다한 200호 크기도 나왔다. 작품 값은 2년 전보다 10% 올라 20호 크기(볶음밥)는 1500만 원이다. 전시는 10월9일까지.
☞공감언론 뉴시스 hyu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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