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은 핵 시설 시찰하는데…美 대선서 사라진 '북한 비핵화'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처음으로 우라늄 농축시설을 공개하며 핵능력 고도화를 과시하고 있지만 미국에선 '북한 비핵화'라는 이슈가 공론화되지 않는 분위기다.
최근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은 정당 강령에서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을 삭제했다. 이를 두고 미국 조야에서 북한 비핵화가 현실적으로 어렵게 됐다는 '컨센서스'가 자리 잡게 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국내에서 제기됐다.
민주당의 경우 공화당에 비해 적극적으로 사후 '수습'에 나섰지만,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공약집인 '새로운 앞길'(A New Way Forward)에도 북한 비핵화가 빠져 논란의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해리스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10일 첫 TV토론에서 경제와 외교 등 전방위 분야에서 공방을 벌였지만 북한 비핵화 등 한반도 사안은 주요 의제가 되지 못했다.
반면 북한은 '핵 카드'를 점차 구체화하고 있다. 김정은 총비서가 직접 나서 9·9절 맞이 연설을 통해 핵능력을 고도화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핵무기연구소와 무기급 핵물질 생산기지를 현지지도하면서 처음으로 우라늄 농축시설을 공개하는 '핵 압박'을 가했다.
우라늄 농축시설은 원심분리기에 우라늄을 넣고 고속으로 회전시켜 핵탄두 제조에 사용되는 고농축 우라늄(HEU)를 생산하는 시설로 핵무기 제작 능력을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노동신문은 상당한 수의 원심분리기를 공개하면서 자신들의 핵능력이 상당한 수준에 올랐음을 과시했다. 이는 동시에 자신들과의 '핵 협상'의 문턱이 높아졌음을 표출한 것으로도 해석되고 있다.
김 총비서는 이번에 무기급 핵물질 생산을 늘릴 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고 특히 미국을 언급하며 자신들의 핵 개발 행보에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했다. 핵 능력의 고도화 및 선전이 누굴 향하고 있는지 보여 주는 대목이다.
그는 "미제를 괴수로 하는 추종세력들이 공화국을 반대해 감행하는 핵위협 책동들은 더욱 노골화되고 위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라며 '철저한 핵무력 대응 태세'를 주문했다.
북한은 지난 2022년 '핵무력 정책법'을 제정하고 지난해엔 이를 헌법에 명시하면서 '핵보유국'으로서의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그 때문에 북한이 이미 2018년 방식의 '비핵화 협상'에는 관심을 껐다는 분석도 나온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의 행보는 일단 '비핵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것"이라며 "궁극적으로 새로운 핵 협상 지위를 인정해라, 즉 핵보유국을 정치적으로 승인하라는 얘기"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김 총비서의 이번 행보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인 '잘 조율된 실용적인 접근'의 실패를 부각하는 측면도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미 대선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로 '핵 행보'를 보인다는 분석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전제로 '단계적 접근법'을 통해 북한에 대한 외교적 관여를 모색하며 그 과정에서 최대한의 '유연성'을 발휘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지만, 결과적으로 '핵무력 강화'에 시간만 벌어줬다는 부분을 강조하는 면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향후 북한과의 '핵 협상'이 개시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난관이 예상된다. 북한이 원하는 카드를 마련하는 것보다 '북한의 카드'를 받아들이기 힘든 구도가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요구대로 미국이 북한을 '핵보유국' 또는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공식 인정한다면 NPT(핵확산방지조약) 체제가 무너지게 되기 때문이다. 동시에 동맹·우방국의 자체 핵무장론 등 한반도 주변은 '핵 도미노' 현상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핵보유국 인정 없이 북한의 '군축'을 협상 의제로 내세우더라도 북한은 결국 핵무기를 군축의 대상, 즉 '협상 카드'로 내세울 것이 자명하다. 이 카드를 받아들인다면 이 역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듯한 모양새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n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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