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경성] 게오르기우 격분케한 앙코르 ‘별은 빛나건만’

김기철 학술전문기자 2024. 9. 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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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조선인 테너의 단골 레퍼토리, 경성방송국 전파 탄 인기곡
'토스카' 공연 도중 상대역 앙코르에 항의해 무대로 뛰어든 안젤라 게오르기우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공연 전 기자간담회장의 게오르기우./연합뉴스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기우(59)의 돌출행동이 빚은 소란이 여전히 시끄럽다. 푸치니 서거 100주년을 맞아 서울시오페라단이 올린 오페라 ‘토스카’주역을 맡은 게오르기우가 지난 8일 테너 김재형이 3막 초반 앙코르에 응하자 무대에 뛰어들어 ‘이건 리사이틀이 아니라 공연이다. 나를 존중해달라’며 소리쳤기 때문이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소프라노라 주인공인 자신을 제치고 상대역 테너가 앙코르를 부르며 주목받는 상황을 그냥 넘어갈리 없다는 생각은 들었다. 2016년 빈 국립오페라극장 ‘토스카’에 나선 게오르기우가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이 관객 요청에 따라 앙코르를 부르자 무대에 나오지 않고 버틴 적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은 그때와는 상황이 좀 다르다. 단순히 늦게 나타난 게 아니라 무대에 뛰어들어( ‘난입’이라는 단어를 쓴 매체도 있다) 영어로 불만을 쏟아내면서( ‘토스카’는 이탈리아어 공연이다)극의 흐름을 완전히 끊어놓았기 때문이다. 게오르기우는 지휘자를 향해 ‘익스큐즈 미’를 연달아 세번 외친 후, ‘This is not recital, performance’라고 얘기했는데, 여기서 ‘익스큐즈 미’는 ‘실례합니다’ ‘죄송합니다’으로 옮기면 안될 것같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날 뭘로 보는거야’(순화한 표현이다)하는 뜻을 담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커튼 콜 소동은 더 심각하다. 억지로 끌려나오듯 늑장부리며 몇미터쯤 걸어나오다 인사도 하지않고 손을 내저으며 되돌아가버렸기 때문이다. 게오르기우의 ‘무례’를 보면서 이 소프라노를 격분케 한 ‘별은 빛나건만’은 언제부터 우리에게 익숙하게 다가왔을까 하는 의문이 문득 떠올랐다.

이인범은 1936년과 1937년 두 차례 경성방송국에 출연, '토스카' 중 '별은 빛나건만'을 불렀다. 국립극장이 1958년 주최한 국내 첫 '토스카' 전막 공연에서 주역 카바라도시를 불렀다.

‘토스카’, 푸치니 작품 중 방송 1위

결론부터 말하면 ‘별은 빛나건만’은 1930년대 라디오방송에서 조선인 테너가 즐겨 부른 오페라 아리아였다. ‘토스카’의 또다른 대표곡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또한 소프라노가 자주 부른 아리아였다. 푸치니는 1930년대 베르디 다음으로 가장 많이 경성방송국 전파를 탄 오페라 작곡가였다. 그의 주요작품 중 ‘라보엠’ ‘나비부인’(당시 ‘마담 버터풀라이’ 또는 ‘호접부인’으로 불렀다) ‘투란도트’를 누르고 ‘토스카’가 단연 1위였다. 1933년~1939년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간지에 실린 경성방송국 프로그램(조선어채널 제2방송) 7년치를 확인한 결과다.

◇1933년~1939년 ‘토스카’라디오 방송만 18회

1933년 4월 시작한 경성라디오 제2방송은 1939년까지 모두 18번 ‘토스카’아리아를 방송했다. ‘나비부인’은 14번, ‘라보엠’은 11번이었다. 성악가들이 스튜디오에 출연해 라이브로 부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드물게 현장 중계나 음반을 트는 경우도 있었다. ‘토스카’ 아리아는 ‘별은 빛나건만’이 제일 많았고, ‘오묘한 조화’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가 뒤를 이었다.

‘별은 빛나건만’은 ‘별도 빛난다’ ‘별만 반짝이누나’ ‘별은 반짝였다’ 등으로 소개됐다. 최소 9번 이상 연주된 것으로 보인다. 테너 이인범, 안보승, 최창은, 윤두선, 하대응, 전대홍 등이 이 곡을 불렀다. 안보승은 1937년 1월10일과 6월7일 두차례 ‘별은 빛나건만’을 불렀고, 이인범도 1936년 11월19일과 1937년 8월27일 이 곡을 부른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 미우라 다마키 상대역으로 ‘나비부인’핀커튼을 부른 테너 김영길도 두 번 출연해 ‘토스카’를 불렀다. 하지만 ‘별은 빛나건만’대신 1막의 ‘오묘한 조화’를 부른 것이 눈길을 끈다.

◇ ‘별은 빛나건만’대표곡으로 부른 이인범

‘별은 빛나건만’을 잘 불렀던 성악가로는 테너 이인범(1914~1973)이 손꼽힌다. 평북 용천 출신인 이인범은 연희전문 문과에 다니던 1935년 9월 조선일보 주최 제1회 전(全)조선음악콩쿨에서 2등을 차지했다.(발군, 영좌를 정복한 찬연, 악단의 삼신성, 조선일보 1935년9월24일) 바이올린(문학준)이 1등을 받았으니 성악 분야 1위인 셈이다. 1936년 제2회 콩쿨에도 참가, 성악부 공동 1위를 차지했다. 이인범은 1953년 석유난로 사고로 얼굴과 목에 심한 화상을 입었는데, 3년 후 명동 시(市)공관에서 독창회를 열면서 극적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1958년 국립극장 주최로 시공관에서 열린 국내 첫 ‘토스카’전막(全幕)공연에서 주역 카바라도시를 맡았다. 1962년 출범한 국립오페라단 초대 단장을 맡았고 연세대 음대 학장을 지내다 1973년 타계했다. 타계 5년 후 낸 추모 앨범에 ‘별은 빛나건만’을 수록할 만큼, 이 곡은 테너 이인범의 대명사였다. 딸 이방숙(81)도 피아노를 전공해 아버지와 부녀 리사이틀을 가졌고 연세대 음대학장을 지냈다. 원우현(82) 고려대 명예교수가 사위다.

1958년 10월11일~18일 서울 명동 시공관에서 국립극장 주최로 '토스카' 첫 전막공연이 열렸다. 한국오페라연구회(한국오페라단 전신)가 주관했다. 국립극장은 1958년 5월 제1회 오페라로 '리골레토'를 올린 뒤, 10월 '토스카'를 두번째 오페라로 공연했다. 테너 이인범이 카바라도시로 출연했다. 당시 포스터와 티켓사진/성규동 소장

◇정훈모, 이관옥 등 ‘사랑에 살고, 노래에 살고’

소프라노 정훈모, 이관옥, 오경심도 경성방송국에 출연, ‘토스카’를 불렀다. 도쿄 유학파로 독일 가곡을 원어로 불러 명성이 높았던 정훈모는 1934년9월29일 출연, 슈베르트 가곡 셋을 부른 뒤 ‘사랑에 살고, 노래에 살고’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신문 프로그램에 소개된 제목은 ‘노래와 사랑으로 살고’. 이관옥은 1938년11월20일 출연, 홍난파의 ‘봉선화’, 브람스 가곡 ‘일요일’와 함께 이 곡을 부른 것으로 보인다.

◇1958년 국립극장 주최,’토스카’첫 전막 공연

‘토스카’ 전막 공연은 앞서 본 것처럼 1958년 10월11일~18일 국립극장이 주최하고, 한국오페라연구회가 주관한 공연이 처음이다. ‘토스카’ 첫 전막 공연에 쏠린 관심덕분인지, 조선일보는 이틀에 걸쳐 공연평을 실었다 계정식 안병소 이흥렬 박태현 김동진 이성삼 등 당대 음악인들이 참여한 집단 비평이었다. 음악평론가 이성삼이 대표집필한 이 리뷰는 먼저 ‘전체적인 면에서 본다면 예(例)에 비해 다소 발전을 보여준 셈이라고 평가’'연 1회 정도의 출연으로서 그만큼 감당해낸다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가수들은 음악적인 재질이 있다고 보아야 타당할 것’(가극 ‘토스카’ 공연회평 上, 10월22일)이라고 썼다.

하지만 전반적으론 혹평이었다. ‘연기면에 있어서 가수들의 무능한 탓도 많았겠지만 연출에 책임이 있다고 본다’(가극 ‘토스카’ 공연회평 下, 10월24일)며 연기, 연출에 비판을 쏟아냈다. ‘토스카’ 첫 전막 공연에 대한 기대가 너무 높았던 것같다. 게오르기우 소동 덕분에 한국인이 사랑하는 오페라 ‘토스카’의 연원을 더듬어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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