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망가뜨렸다"…구애 안 받아주자 화장실 침입 살해
고소당하자 선고 하루전 근무지 신당역 찾아 보복…무기징역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2022년 9월 14일 서울 중구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은 대표적 보복 범죄, 스토킹 범죄로 꼽히고 있다.
명문대를 나와 공인회계사(CPA) 시험에 합격한 전주환(1991년생)은 서울교통공사 입사 동기 A 씨(1994년)에게 일방적 구애와 스토킹을 해 오다 거절당하고 이 일로 재판에 넘겨지자 앙심을 품고 살인에 이르렀다.
이번 사건으로 스토킹 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지만 역으로 막을 수도 있었던 비극, 지방에서 올라와 용감하게 자기 인생을 개척해 나가던 자랑스러운 딸이 왜 이런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지, 1차 스토킹 범죄로 고소당했을 때 구속영장을 기각한 법원, 2차 고소 땐 영장 청구조차 하지 않은 검찰 등 여러 면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 피해자 근무시간 파악…준비해 간 흉기로, 비상벨에 동료 1분 안에 도착했지만
A 씨 스토킹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전주환은 2022년 8월 18일 1심 결심공판에서 '징역 9년 형'을 구형받자 "내 인생은 A가 망가뜨렸다"며 복수를 결심했다.
전주환은 스토킹 혐의로 기소된 뒤 직위해제됐지만 여전히 교통공사 직원 신분을 유지하고 있는 점을 이용해 2022년 8월 18일, 9월 3일, 9월 14일 오전과 오후 등 모두 4차례에 걸쳐 지하철 6호선 증산역과 구산역 사무실로 가 내부망인 메트로넷에 접속, A 씨의 집 주소와 근무지 및 근무 일정, 시간대를 확인했다.
이어 전주환은 9월 14일 오후 A 씨 집으로 찾아갔으나 내부망 주소가 옛 주소인 탓에 만나지 못하자 밤 근무지인 신당역으로 이동했다.
밤 8시 무렵 신당역에 도착한 전주환은 화장실 주변을 배회하면서 A 씨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A 씨가 밤 9시쯤 순찰을 위해 여자 화장실로 들어가자 뒤따라가 흉기를 휘둘렀다.
A 씨는 화장실 비상벨을 눌러 도움을 청했고 역무원과 사회복무요원이 1분 안에 도착, 피범벅이 된 A 씨와 흉기를 들고 서 있는 전주환을 발견해 119에 신고하는 한편 전주환을 체포했다.
◇ 119 긴급 후송했지만…전주환 1심 선고 하루 앞두고 보복
A 씨는 9분 만에 도착한 119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밤 11시 31분 유명을 달리했다.
전주환이 흉기를 휘두른 건 스토킹 범죄 1심 선고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그는 경찰에서 "A 씨가 합의를 거부해 원망이 사무쳤다"며 "일단 만나 합의해 달라고 빌어볼 생각으로 5번이나 집으로 찾아갔지만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전주환은 피해자 A 씨가 자신을 피해 집을 옮긴 사실을 몰랐기에 계속 옛 주소로 찾아갔고 고의로 회피한다고 생각, 죽여버리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 구속영장 발부, 신상공개, 스토킹 범죄 징역 9년 선고 경찰은 9월 15일 전주환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16일 서울중앙지법은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19일엔 신상공개위원회 위원 7명 만장일치로 '피의자 신상공개'가 결정됐다.
전주환의 살인으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영, 촬영물 등 이용협박)과 스토킹 처벌법 위반 혐의에 대한 1심 선고 날짜를 9월 15일에서 연기했던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판사 안동범)는 9월 29일 검찰 구형대로 징역 9년 형을 선고했다.
법은 전주환에게 A 씨에 대한 스토킹 범죄 책임을 물었지만 피해자는 이를 보지 못했다.
◇ 피해자 2021년 10월 1차 고소, 法 영장 기각…2022년 1월 2차 고소 땐 영장신청 안 해
전주환은 2018년 하반기 신입사원 연수 때 서울교통공사 입사 동기 A 씨에 꽂혀 2019년 1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2년 가까이 무려 350여 건의 문자 메시지와 전화로 '만나 달라'고 요구하고 협박했다.
A 씨가 단호히 거절하자 '동영상을 퍼뜨리겠다'고 협박했다. 전주환이 말하는 영상은 여자 화장실에 몰래 설치했던 카메라 내용물로 이후 피해자와 무관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주환의 협박을 받은 A 씨는 2021년 10월 7일 그를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영, 촬영물 등 이용 협박) 혐의로 서울서부경찰서에 고소했다.
경찰은 전주환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서울서부지법은 '도주 우려가 없다'며 기각했다. 법원 기각에는 전주환이 명문대학교를 졸업한 점과 공인회계사(CPA) 시험에 합격한 점이 참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영장이 기각되자 경찰은 1달간 A 씨 신변보호에 나섰으나 이후 A 씨가 원치 않는다며 중단했다.
서울교통공사는 경찰이 전주환에 대한 수사 개시를 기관통보해 오자 2021년 10월 13일자로 직위해제했다.
A 씨는 1차 고소 뒤 전주환이 더욱 집요하게 문자를 보내자 2022년 1월 27일 2차로 그를 고소했다. 이때 경찰은 재차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대신, 전주환의 혐의를 추가하는 선에서 그쳤다.
◇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총리, 장관, 시장, 경찰청장 총출동
A 씨가 스토킹범에게 살해당하자 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다시는 이런 범죄가 발을 붙일 수 없게 하라"고 지시하자 거의 모은 부처가 움직였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9월 16일 신당역을 찾았고 오세훈 서울시장,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윤희근 경찰청장도 바삐 움직였다.
신당역에는 피해자 추모 공간이 차려졌고 김상범 서울교통공사 사장은 9월 24일 "통한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대국민 사과와 함께 "고인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잘못된 관행과 시스템을 찾아내 고치고 조속히 대책을 만들겠다"고 했다.
2년이 지난 지금 서울교통공사는 직장 내 스토킹 범죄 예방과 가해자 및 피해자 분리 등을 골자로 하는 '스토킹 예방 및 2차 피해 방지 지침(안)'을 마련, 오는 9월부터 시행에 들어가기로 했다.
◇ 1심 "유족 슬픔과 상처 가늠하기 어렵다" 징역 40년형…31살 나이 감안
2023년 2월 7일 서울중앙지법 서울중앙지법 형사25-1부(박정길, 박정제, 박사랑 부장판사)는 보복 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전주환에게 징역 40년형과 함께 15년간 위치추적전자장치 부착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범행의 중대성과 잔혹성에 비춰 피고인의 죄책은 매우 엄중한 형으로 처벌하지 않을 수 없고 피해자 유족은 지금도 고통 속에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앞으로의 슬픔과 상처도 도저히 가늠하기 어렵다"고 질타했다.
다만 "피고인이 현재 만 31세로 개선해 나갈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없는 점, 유사 사건 양형 선례, 피고인이 앞선 재판에서 9년을 선고받은 점 등을 종합했다"며 사형을 구형한 검찰 요구를 뿌리친 이유를 밝혔다.
◇ 2심 "보복성 범죄, 엄히 다스려야"…무기징역으로 형 높여, 대법 확정
검찰과 전주환 모두 항소한 가운데 2023년 7월 11일 서울고법 형사12-2부(진현민·김형배·김길량 고법 판사)는 "전주환의 범행은 계획적이고 치밀하며 집요하게 이뤄진 보복성 범죄인 만큼 엄정한 처벌이 필요하다"며 징역 40년형을 깨고 무기징역형을 선고했다.
이에 전주환은 상고했지만 2023년 10월 12일 대법원 3부(주심 대법관 노정희)는 "공소사실이 모두 유죄로 인정된다"며 무기징역형을 확정했다.
한편 A 씨 유족들은 '서울교통공사가 피해자의 주소지와 근무 정보 등 개인정보를 적법하게 처리하지 않는 등 사용자로서 안전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전주환, 서울교통공사를 상대로 10억여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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