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없고, 유례없고, 이례적인 지구에서 [젠더살롱]
지구의 대멸종 시대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레타 툰베리,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 연설 중에서
2017년, 아이가 지구에 와서 맞은 첫 번째 봄. 뉴스에서 미세먼지 소식이 연일 계속됐다. 미세먼지는 심혈관질환, 호흡기질환, 폐암 발생의 위험을 증가시킨다고 했다. KF80 이상 되는 마스크를 쓰라고 했다. 외출을 자제해달라고 했다. 처음으로 공기청정기를 샀다.
그해 여름, 이르게 폭염주의보가 발효됐다. 열돔 현상이라고 했다. 일사병, 열사병, 온열질환에 주의하라고 했다. 물을 자주 마시라고 했다. 외출을 자제해 달라고 했다. 처음으로 에어컨을 들였다. 겨울은 온통 북극한파였다. 북극에서 부는 바람이 제트기류를 타고 내려온 것이라고 했다. 저체온증, 동상, 한랭질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고 했다.
처음으로 유리창에 단열재를 붙였다. 외출을 자제해달라고 했다. 그 뒤로 매해 전례 없고, 유례없고, 이례적인 기후는 위기 상태의 지구를 경신했다. 돌봄 생활자로서 엄마-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의 사회적 신체는 전례 없고, 유례없고, 이례적인 기후 신경통이 생겼다.
가급적 외출을 자제하세요
돌봄과 기후위기는 직렬로 연결되어 '움츠러'들게 했다. 현관문 앞에서 자기 신발을 들고 "나가, 나가자"를 외치며 문을 두드리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야 했다. 현관문(동), 창문(서), 베란다 문(남), 냉장고 문(북)으로 배치된 4대문 안으로 '움츠러'들었다. 기후위기 서사가 돌봄에 포개어지며 기후변화는 기후위협으로 돌변했다. 공기청정기, 에어컨, 단열재 안으로 더욱 '움츠러'들었다. 기거할 장소를 협소하게 만들고, 몸의 이동성을 제한하게 만드는 '움츠림의 지리학'이 활성화됐다. 위협의 감각적 서사 속에서 돌봄을 수행하는 나의 사회적 신체는, 미래에 발생할 고통과 피해를 미리 예감하며, 세계에서 멀어지고 더욱 좁은 공간으로 움츠리게 했다.
국가와 기업들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고 있지 않는다'라는 불만은 '어떻게 해도 세계는 바뀌지 않는다'라는 절망으로 이어져,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라는 무력감으로 손쉽게 이어졌다. 과거는 녹아 사라져갔고, 미래는 종잡을 수 없는 혼돈의 시대가 실시간으로 펼쳐졌다. 아이를 하나 낳았을 뿐인데, 나의 세계감은 이례적이었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기후위기로 인해 돌봄노동 시간의 증가로 이어졌다는 36%의 응답과 돌봄노동을 여성 혼자 부담했다는 87.7%의 숫자 속에는 불쾌감, 짜증(29%)과 무기력(19.8%)의 성분도 포함된다(여성환경연대, 2022). 기후위기에 움츠러든 신체 중 81%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생겼다(한국리서치, 2024)"라는 사실은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미래를 먹어 치우는 자들
19세기 유럽인이 오스트레일리아를 식민화할 무렵, 일부 선주민들은 이 낯선 이방인들을 "미래를 먹는 자들"(Future eaters)이라고 불렀다. 그들에게 서구의 약탈자들이 먹어 치우는 것은 다름 아니라 '미래'였다. 2018년 8월 '미래를 위한 금요일' 수업 거부 시위를 시작한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당신들이 미래를 훔치고 있다"라고 말한다. 이에 동조한 전 세계의 환경운동가들은 "미래가 불타고 있다, 미래가 녹아내리고 있다, 미래가 침몰하고 있다, 미래를 약탈해가고 있다"고 이어 말했다. '미래'는 고위험 멸종위기종인 셈이다.
그리고 더 이상 움츠러들지 않겠다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에 젖어 있지 않겠다고, "우리 세대는 여러분이 배신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여러분이 우리를 실망시키기를 선택한다면 우리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며 말했다. "더 이상은 참지 않습니다."
과학적 해결책, 저항하라
2012년 미국 지구물리협회의 학술대회에서 공학자 브래드 웨너는 "아무런 걸림돌 없이 자원을 고갈시키는 바람에 '지구-인간 시스템'의 응답이 위험할 정도로 불안정해지고 있다"라고 발표했다. 그는 기후위기에 대응할 유일한 과학적 해결책이라고 강조하며 단 하나의 결론을 내놓았다. 그것은 바로 "저항하라(Revolt!)"였다. 무수한 보고서와 논문, 통계와 숫자, 그래프들의 '지금 당장' 화석연료 중심의 탄소 체제를 '긴급히' 멈추지 않으면 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결론에 꿈쩍도 하지 않는 국가와 기업을 향해 저항하는 것이 유일한 '과학적'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이 저항의 깃발에 '기후정의'(Climate justice) 이름이 펄럭인다. '기후정의운동'은 기후위기가 불평등한 사회의 위기이고 민주주의의 위기임을 명시한다. 기후정의운동은 불평등과 차별, 혐오와 배제라는 사회적 기후와 멸종이 임박한 생태적 기후가 교차한다. 인권학자 조효제는 한 인터뷰에서 "성소수자를 차별하면 지구 환경도 못 지키는 것"이라며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논리가 그대로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논리로 이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후정의운동은 자연보호운동, 친환경운동과 달리 아주 정확하게 '불평등'을 가리키며 '저항'을 활성화한다.
기울기의 정의
Climate(기후)의 어원은 '기울기'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Klima'에서 유래됐는데, 기후재난은 바로 이 '불평등의 기울기'에 따라 가장 낮은 곳부터 차별적으로 차오른다. 2022년 여름, 폭우로 인해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방에서 벌어진 참사는 여성-장애-빈곤-돌봄이 교차하던 그곳에 '기울기의 정의'가, '기후정의'가 가장 절실했음을 드러냈다.
불평등의 기울기에 따라 기후위기는 남성보다 여성에게, 비장애인보다는 장애인에게, 부자들보다 빈자들에게, 사람들보다는 비인간 생명들에게 가혹하게 기울어져 있다. 누군가에게는 이상 기후에 불과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생명을 위협하는 기후재난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죽음들이 실시간으로 펼쳐지는 기후지옥이 된다. "'더 빨리, 더 멀리,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대신 '더 천천히, 더 가까이, 더 관용적이고 생태적으로' 사는 수많은 방법을 상상하고 찾아"(기후정의선언) 나갈 "정의로운 전환"(파리기후협약)은 '저항' 없이는 가닿을 수가 없다.
춤을 추고, 노래하며
저항의 사회적 감각을 익히는 우리 가족행사 중 중요한 하루로 9월 기후정의행진이 있다. 여성의 날,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퀴어퍼레이드와 함께 우리 가족 4대 사회적 명절이다. 올해에도 초록색 티셔츠를 입고 참가했다.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를 구호로 한 올해 기후정의행진은 온실가스를 대량으로 방출하는 대기업 본사들이 줄지어 선 강남대로와 테헤란로를 돌며 3만 명이 함께 행진했다. 올해 공식 기후정의행진 노래는 산울림의 '개구쟁이'를 개사했는데 어린이-반려자도 아는 노래여서 노래가 나올 때마다 따라 부르며 흥겹게 박자를 탔다. 전례 없는 지구의 박자, 유례없는 절망의 박자, 이례적인 저항의 박자, 모두가 정의로운 박자를 함께 탔다. 원곡의 후렴구인 '개구쟁이!'의 자리에 '기후정의!'로 개사한 부분에서 어린이-반려자와 함께 엉덩이를 실룩이며, 오른손을 높이 들고 '기후정의'를 함께 외쳤다.
기후비상사태라는 이례적인 박자 속에서, 불안과 무기력에 짓눌리지 않기 위한 저항의 박자감을 익혀야 한다. 지속 가능한 삶의 박자를 발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린이-반려자와 함께 주먹 쥔 오른손을 높이 뻗으며 함께 춤추고, 행진하며 함께 노래 불렀다. "우리 같이 싸워요. 춤을 추고, 노래하며 싸워요/ 재난과 불평등, 민영화 난개발/ 모두 다 멈추고, 정의롭게 전환해/ 기후정의!"
그런데도 여러분은 여전히 돈과 끝없는 경제성장에만 빠져있습니다. 어떻게 감히 그럴 수가 있습니까?
그레타 툰베리,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 중에서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서한영교 작가가 격주로 글을 씁니다.
서한영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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