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 해수욕장 가고… 차례상엔 단감 대신 열대 과일
‘폭염 한가위’가 예고됐다. 기상청은 추석 연휴 기간(14~18일) 최고 기온이 33~35도 수준으로 매우 덥고 습한 날씨가 될 것이라고 13일 밝혔다. 추수 전 곡식을 미리 걷어 차례를 지내며 풍년을 기원한다는 추석(秋夕)의 의미는 퇴색했다. 적잖은 시민이 추석 더위를 피해 ‘늦여름 휴가’를 떠나고 있다.
직장인 문모(28)씨는 올 추석 귀성 대신 가족들과 호캉스(호텔+바캉스)를 하기로 했다. 그는 “날씨가 너무 더워 호텔 수영장에서 추석을 보내기로 했다”고 했다. 주부 김한나(41)씨는 날씨가 선선한 강원 홍천으로 가족 여행을 간다. 김씨는 “수타사 앞 계곡이 시원하다고 해서 수영복을 챙겨 간다”고 했다.
제주도 해수욕장 12곳엔 ‘늦여름 피서객’이 몰리고 있다. 제주도는 지난달 31일 도내 해수욕장을 공식 폐장했지만 이달 15일까지 안전관리 요원 40여 명을 배치한다는 방침이다. 제주 해경과 소방 등에는 해수욕장 폐장 이후에도 각종 수난 사고 신고가 잇따르고 있다고 한다. 제주 해경 관계자는 “추석 연휴 때 해수욕장과 포구 등에 피서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며 “안전 사고 방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했다.
추석 연휴 해외 출국자 숫자는 역대 최다를 경신할 전망이다. 9월에도 폭염이 가라앉지 않자 아예 외국으로 떠나겠다는 것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이날 “13~18일까지 인천공항 하루 평균 이용객은 지난해 추석 연휴 대비 11.6% 늘어난 20만1000명가량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이전 최고치인 2017년(18만7623명)보다 7%가량 높은 수치로 역대 최다 규모다. 출발 여객은 14일(12만1000명), 도착 여객은 18일(11만7000명)이 가장 많을 것으로 예측됐다.
추석 폭염은 명절 밥상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추석 특산품인 송이버섯을 재배하는 경북 농가는 ‘개점휴업’ 상태다. 이번 여름 덥고 습한 날씨와 태풍으로 송이버섯의 재배량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산림조합중앙회에 따르면 13일 기준 송이버섯을 판매하는 공판 자체가 없다. 해마다 9월 초 공판을 시작했지만, 올해는 첫 공판 일정조차 잡지 못했다. 울진산림조합 관계자는 “30도를 웃도는 폭염으로 포자(胞子)도 형성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경북 봉화에서 송이버섯을 키우는 이모(53)씨는 “4000만~5000만원을 주고 송이 산을 임차한 농민들은 앉아서 하늘만 원망하고 있다”고 했다. 꿀 사과로 유명한 경북 영천시도 더운 날씨로 사과가 튼실하게 자라지 않아 당도가 떨어진다고 한다. 사과는 상대적으로 서늘하고 일조량이 많은 곳에서 재배하기 적합한 과일이다.
단감 농가도 울상이다. 단감이 일소(日燒·과일 화상)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경남농협 관계자는 “경남 진주의 한 농가는 재배 면적의 20%가 일소 피해를 입었고, 창원·김해 지역에서는 평균 5~10%의 면적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했다. 단감이나 사과 등 기존 특산물의 재배에 어려움을 겪자, 더운 날씨에도 잘 자라는 제주 애플망고 등 열대 과일이 추석 특산품으로 인기를 끈다고 한다.
상당수 가정은 “날씨도 더운데 전을 왜 부치냐”며 차례상을 간소화하고 있다. 주부 임모(51)씨는 “시부모가 이번 추석에는 날씨도 더우니 전 같은 요리를 하지 말자고 했다”고 말했다. 고온 다습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상온에서 장시간 보관하는 기름진 명절 음식을 먹지 않겠다는 시민도 많다. 권모(56)씨는 “남편이 최근 전을 먹고 장염에 걸렸다”며 “이번 추석 때는 차례상에 과일과 한과, 술 정도만 올릴 예정”이라고 했다.
추석 빔을 제작하던 한복 업체들도 폭염 직격탄을 맞았다. 대학생 권모(22)씨는 “반바지·반팔 차림으로 고향에 내려가려고 하는데 한복이 웬말이냐”고 했다. 서울 광장시장의 한 한복 상인은 “명절마다 어린이·아기 한복 주문이 제법 들어오는 편이었는데 올해는 날씨가 워낙 더워 명절 한복을 찾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엔 “에어컨 트는 추석은 처음이다” “미리 사둔 추석 빔은 설날에나 입어야 하나” 같은 글이 올라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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