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전 승패 가른 조지아… 이번에도 ‘최후의 승부처’ 되나

애틀랜타/김은중 특파원 2024. 9. 14. 01: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24 美 대선 경합지, 김은중 특파원 르포]
[7] ‘유권자의 33%’ 흑인 표심은
‘애틀랜타는 모든 것에 영향을 끼친다’는 문구가 새겨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한 건물 외벽의 모습. 이 문구를 만든 컨설팅 회사 ‘애틀랜타 인플루언스 에브리싱(AIE)’의 공동 창립자 세 명의 얼굴도 보인다. 조지아주는 2020년 기준으로 7개 경합주 중 흑인 유권자 비율이 가장 높다. /김은중 특파원

“나와 닮은 모습을 한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 나왔어요 ‘가자(Let’s Go)’라고 외치는 그녀의 말에 가슴이 뜁니다. 2008년 오바마 이후 한동안 보지 못했던 에너지를 느껴요!”

9일 미 남동부 조지아주(州) 애틀랜타의 에벤에셀 침례 교회에서 만난 중년의 흑인 여성 나야 윌리엄스씨는 “내 생에 흑인·여성 대통령을 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며 이렇게 말했다. 1886년 설립된 이 교회는 20세기 흑인 민권 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하며 수많은 흑인 지도자를 배출했고,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세례를 받아 설교한 곳으로 특히 유명하다. 교회가 있는 ‘스위트 오번’ 일대는 킹 목사의 생가도 있는 흑인 밀집 거주 지역으로 ‘애틀랜타가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고 적힌 대형 벽화에서 흑인 유권자들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윌리엄스씨는 “우리는 사상 첫 흑인·여성 대통령을 맞을 준비가 돼 있다”며 “우리 아들, 딸에게는 (해리스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좋은 롤모델이 될 것”이라고 했다.

9일 조지아주 애틀란타의 에벤에셀 침례 교회에서 나야 윌리엄스씨가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김은중 특파원

복숭아가 많이 재배돼 이른바 ‘피치 스테이트’라 불리는 인구 1000만의 조지아엔 이번 대선에서 펜실베이니아(19명) 다음으로 많은 16명의 선거인단이 걸려있다. 2020년 기준 흑인 유권자 비율이 전체 인구의 약 3분의 1 정도로 7개 경합주 중 가장 높은 것이 특징이다. 백인 비율은 50%가 조금 넘고 히스패닉이 10.5%, 아시아계도 5.2%나 된다. 주민들의 기독교 신앙이 강한 이른바 ‘바이블 벨트(bible belt)’로 1992년 빌 클린턴을 선택하기 전까지 공화당의 텃밭이었지만, 2020년 대선에선 민주당 조 바이든 대통령(49.5%)이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49.3%)을 0.2%포인트 차로 이겼다. 약 1만2000표 차로 패배한 트럼프가 당시 주 당국에 전화를 걸어 “잃어버린 표를 찾아달라”고 했고, 이 행동으로 파생된 ‘사법 리스크’가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를 옭아매고 있다.

그래픽=김현국
9일 조지아주 애틀랜타 도심에 있는 조지아주립대(GSU) 캠퍼스에서 만난 대학생 케일라씨. /김은중 특파원

조지아가 경합주로 거듭난 건 2000년대 이후 애틀랜타 대도시권에 아프리카계를 비롯한 다양한 인종이 유입되며 공화당이 우세한 농촌 지역과 균형을 이루게 됐기 때문이다. 2020년 대선 출구 조사를 보면 흑인 유권자의 88%가 바이든에 투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와 오차 범위 내 박빙인 해리스가 승리하기 위해선 흑인 지지층 결집과 투표율 상승 두 가지가 필요한데 현지에서 만난 이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도심 한가운데 캠퍼스가 있는 조지아주립대 2학년 케일라씨는 “트럼프가 해리스의 흑인 정체성을 운운하고 마치 ‘흑인 직업(black job)’이 따로 있는 것처럼 얘기할 때 화가 났다”며 “해리스는 능력 있는 지도자고, 그가 대통령이 돼도 미국은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반면 전통시장인 ‘뮤니시플 마켓’에서 만난 릭 도어리씨는 “이 동네 사람들은 피부색 하나만 보고 대통령을 뽑을 정도로 무식하지 않다”며 “물가 같은 경제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주민들 사이에선 “해리스가 무늬만 흑인이지 살아온 길은 엘리트 백인들과 다름없다” “검사로서 흑인을 감옥에 보내는 데 충실했던 그가 중산층 가정 얘기를 운운할 때마다 역겹다”는 얘기도 나왔다.

20세기 흑인 민권 운동의 중심지였던 미국 조지아주(州) 애틀랜타의 에벤에셀 침례교회의 예배당. /김은중 특파원

최근 들어 흑인 남성의 이탈이 두드러진다는 점도 해리스에겐 고민거리다. 이코노미스트는 “2023년까지 10년 동안 자신이 민주당원이라 밝힌 흑인 남성의 비율이 80%에서 62%까지 감소했다”며 “조지아의 흑인 공화당원들은 교육, 범죄, 이민 같은 이슈가 그들의 형제(민주당을 지지하는 흑인 남성)를 흔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2022년 주지사 선거에선 민주당 스테이시 에이브럼스가 1억달러(약 1330억원)를 넘게 써가며 흑인 유권자에 구애했지만, 공화당 브라이언 켐프 주지사에 7.5%포인트 차로 패배했다. 2022년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통과를 전후해 조지아에 100여 개 한국 기업의 대규모 투자가 이뤄졌는데, 켐프는 이런 경제 성과를 앞세워 재선 주지사가 됐다. 켐프는 4년 전 ‘선거 결과 뒤집기’에 동조하지 않아 지금까지도 트럼프가 많은 비판을 하는 인물로, 이번 조지아 승부에 영향을 미칠 키맨으로도 꼽힌다.

☞바이블 벨트(Bible belt)

기독교 복음주의 성향이 강한 미국 동남부 지역을 성경(바이블)에 빗대 일컫는 말이다. 루이지애나·미시시피·아칸소·앨라배마·오클라호마·조지아·테네시 등이 속한다. 동성애와 낙태, 마약 등에 대한 반대·혐오 정서도 미국 내 다른 지역보다 두드러진다. 이런 특성 때문에 정치적으로는 공화당의 표밭으로 인식돼 왔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