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 섬 개펄에 거인 눕힌다: 영국 조각 거장 안토니 곰리 인터뷰
신안군 ‘1섬 1뮤지엄’ 참가 영국 조각가 곰리
밀물과 썰물이 넘나드는 개펄은 작가가 작품을 설치하기 꺼리는 환경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곰리에게는 매우 익숙한 환경이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어나더 플레이스(또다른 장소)’(1997)는 100개의 실물 크기 주철 인물상이 끝없는 수평선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해변에 드문드문 서있는 작품으로서 2005년 영국 리버풀 근처 크로스비 해변에 영구 설치되어 그곳의 명물이 되었다. 이 조각들은 밀물 때가 되면 바다에 잠긴다. 인간의 몸이 때가 되면 자연의 순환으로 돌아가듯이. 신안 비금도에 설치될 작품 역시 조수간만에 따라 물에 잠겼다가 드러났다 할 예정이다. 비금도 작품의 차이는, 가까이에서는 기하학적인 건축 공간으로 보이며 안으로 들어갈 수 있고 멀리서 보아야 누워있는 인간의 형상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층위의 해석과 감상이 가능하기에 곰리의 조각작품들은 평론가뿐 아니라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아왔다. 그것을 잘 알려주는 에피소드가 있다. ‘어나더 플레이스’는 수상스포츠 이용자들의 안전과 철새 서식지 훼손 등을 이유로 2년 후 철거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영구 설치를 요구하며 소송을 했고 결국 지방의회는 설치 공간을 약간 축소하는 조건으로 영구 설치를 허가했다. 이 에피소드는 곰리가 현대미술의 현학성에 빠지지 않고 대중과 소통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그는 추상적인 작업으로 전환하기까지 190㎝에 가까운 자신의 거구를 직접 본뜨는 작업으로 유명했다. ‘어나더 플레이스’의 100개의 인체 조각도 모두 그의 몸을 본뜬 것이다. 자신의 벌거벗은 몸에 석고를 바르고 굳혀 틀을 만든 뒤 금속 재료를 부어 완성하는 것인데 극도의 인내와 체력이 필요하다. “내 몸을 사용하는 것은 내 자신을 표현하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경험하는 보편적인 몸의 느낌을 전달하려는 것”이라고 작가는 과거 여러 인터뷰에서 말했다.
중앙 SUNDAY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비엔날레 기간 중 곰리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은 작가와의 일문일답.
A : “(관람객이) 해변의 작품에 도착하는 과정이 무척 중요한 작품입니다. 숲과 모래언덕을 거쳐 20분 정도 걸으면 작품에 닿도록 (산책로를) 구성하고 있어요. 작품은 만조선(밀물로 해수면이 가장 높을 때 땅과의 경계선)에서 70~80m 정도 바다 쪽에 있을 겁니다. 썰물일 때는 작품 내부를 걸어다닐 수 있습니다. 작품은 드로잉에서처럼 매우 추상적인 형태여서 이때는 ‘몸’ 안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할 거예요. 숲 같기도 하고 기능 없는 건축물, 통상적인 직각의 기하학적 구조에서 벗어난 건축물 같기도 할 것입니다. 서로 다른 크기의 38개 정육면체 공간 프레임이 얽혀있는 형태인데, 벽이 없는 해체된 건축물을 돌아다니는 느낌일 거예요. 그러다 해변을 떠나 (그 뒤에 있는) 낮은 산에 올라가게 될 것이고 산 정상에서 내려다볼 때 비로소 자신이 몸 안에 있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Q : 안에 있을 때는 건축물, 밖에서 멀리 볼 때는 인간 몸으로 느껴지는 거군요.
A : “이 작품은 신체를 형상화해 나타내는 (represent) 게 아니라 신체를 관람객에게 떠올리게(evoke) 하는 것이니까요. 이게 저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산에서 내려다볼 때 이 추상적인 구조물을 주변의 다른 관람객과 함께 보며 비로소 그 크기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고 사람의 몸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 작품이 오브제라기보다 장소라고 할 수 있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가지가 깃들 수 있는 장소 말이죠. 첫째로 바다가 깃들 수 있죠. 만조 때는 바닷물이 작품 높이의 150~170㎝까지 올라옵니다. 바닷물이 너무 차지 않으면 작품 안에서 헤엄을 칠 수도 있겠죠. 그리고 또 깃들 수 있는 것은 물론 관람객들이겠죠.”
Q : 작품 제목이 엘리멘탈(Elemental: ‘원소에 관한’‘기본적인’‘자연력의’ 등의 뜻이 있다)이라고 들었습니다.
A : “우리 인간은 물질의 일시적인 집합체로서 살아있고 의식을 갖습니다. 이건 축복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하지만 언젠가 땅으로 돌아가죠. 현상계, 물질 세계를 구성하는 원소의 지속적인 교환으로 돌아가는 것이죠. 우린 우리가 일시적인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슬픈 일이 아니고 그저 현실입니다. 그걸 받아들일 때 그 또한 축하하게 된다고 생각해요. 유일하게 영구적인 것은 변화입니다. 불교 사상이죠. 저는 이 작품이 매우 확장된 방식으로 입멸(parinirvana)을 표현한 것이라고도 생각합니다. 부처님의 삶을 생각해보면, 그가 사람들을 가르칠 때는 수직으로 똑바로 서있는 상태였던 반면에 열반으로 넘어가는 마지막 순간에는 수평으로 몸을 옆으로 돌리고 누운 자세였습니다.”
신안 사람들의 삶, 지구와 밀착돼 감동
A : “네, 여전히 하고 있어요. 불교와 불교 명상을 발견한 것이 제 삶과 예술의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Q : 하지만 몸을 직접 캐스팅하는 것은 지금은 안 하시죠.
A : “아주 가끔만 합니다. 이제는 내가 있던 곳의 기억을 몸의 디지털 스캐닝을 통해 포착하고 변형시킵니다. 그런 작품의 형태는 더 이상 신체 표면의 끝으로 인식할 수 없는 게 대부분입니다. (일반적인 인체 조각의 경우 조각과 그를 둘러싼 공간이 조각의 표면으로 분명히 경계 지어지는 반면에, 블록이나 수직·수평의 뼈대로 이루어진 곰리의 추상적 인체 조각은 조각 내부와 바깥 공간의 경계가 열려있고 서로 넘나들며 명확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예가 공사장 비계 같으면서 인체를 연상시키는 ‘스캐폴드(비계)’ 연작이다.) 저는 점점 더 건축의 문법으로 몸의 형상을 만들어 왔습니다. 건축의 수직·수평 직교적 문법을 사용하는 것이죠. 저는 신체를 ‘장소’로 정의합니다. 인류의 반 이상이 도시의 그리드에서 사는 지금, 건축은 우리의 두번째 몸 같아요.”
Q : 신안 비금도에 대한 인상은 어떠셨나요.
A : “전라남도 지방과 신안 사람들의 삶이 지구와 밀착되어 있는 모습에 감동했습니다. 바다에서 소금을 만들고, 해초를 양식하고 그걸 말리고, 또 육지에서 고추를 재배하죠. 근원적인 삶의 조건에 단단히 뿌리내린 듯한 사랑스러운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번 작품은 어떤 면에서 그러한 삶에 대한 찬양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문소영 기자 moon.so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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