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한 축구팬 “이게 팀이냐” 웅변... 선수들은 도열해 박수쳤다
한국·프랑스·독일까지
축구장에서 무슨 일이
한국 프로 축구팀 성남FC는 지금 큰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재명 전 성남시장의 불법 후원금 의혹 때문만은 아니다. 경기력이 너무도 저조하기 때문이다. 한때 K리그를 제패한 전통의 강호는 강등돼 지난해 2부 리그로 떨어졌고, 현재는 그마저도 꼴찌(13위)다. 팬들은 들끓었다. 지난 5월 28일, 천안시티FC와 벌인 경기 역시 잘 풀리지 않았다. 결정적 찬스가 잇따라 무산됐다. 2대0으로 졌다. 단 한 골도 기록하지 못한 채 벌써 4연패였다.
시합 직후, 응원석에서 한 팬이 확성기를 들고 선수들을 호되게 꾸짖기 시작했다. 천안 원정 경기까지 따라나선 열혈 팬, 영원한 편애를 믿어 의심치 않던 ‘12번째 선수’가 팀을 향해 호통치는 이례적인 상황. “우리는 여러분의 (경기) 결과를 갖고 일주일을 살아가요. 기대감으로 매 경기 응원하는데 이렇게 계속 지는 동안 골 하나 못 넣고. 반성해야 돼요!”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선수들은 라커룸으로 들어가지 않고 팬 앞에 도열해 이를 경청했다. “진짜 선수들 스스로가 우리한테 보여줘야 됩니다…. 올해도 계속 응원할 테니까!” 격정의 연설이 끝나자 선수들과 감독은 90도로 허리를 꺾어 인사했다.
“잘 들어, 너희가 비판을 받기 싫다거나 할 말이 있다면 나중에 해. 지금은 들어야 할 시간이다.” 지난해 9월 3일, 프랑스 명문 축구팀 올림피크 리옹 응원단도 광분에 휩싸였다. 4대1 대패. 몰락을 예견케 하는 리그 4경기 연속 무승. 한 중년 남성 팬이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너희는 리옹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다. 여기 몸담은 수많은 이름과 영광의 순간을 더는 더럽히지 마라…. 이 유니폼을 입고 함부로 고개 숙이지 마라.” 스타디움을 쩌렁저렁 울린, TV 해설진도 놀란 2분간의 일장 연설.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모여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박수를 쳤다. “가자! 리옹!” 다시 응원가가 울려 퍼졌다.
충성도 높은 서포터스가 토해내는 ‘분노의 웅변’은 최근 축구계에서 벌어지는 가장 이색적인 장관으로 손꼽힌다. “정신 차리라” 질책하는 응원단의 따끔한 목청, 이를 애정의 충고로 받아들이는 선수들의 진중한 반응. 팀과 팬의 공생(共生) 관계를 보여주는 명장면이기 때문이다. 패배하면 물건을 던지거나 선수단 버스를 막고 난동을 부리던 과거 사례와 반대편에 있다. 축구 해설가인 이용수 세종대 교수는 “‘나가라’ ‘그만 둬라’ 이런 차원이 아니라 ‘더 잘하자’는 진심이 담겨 있다면 선수들도 이 외침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라며 “목표 달성을 보장하는 건 아니지만 분명 발전적 방향의 소통”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 2일, 독일 분데스리가 다름슈타트는 홈에서 6대0 참패를 당했다. 한 강성 팬이 그라운드에 난입했다. 남자는 선수단 쪽으로 향했다. 일촉즉발의 긴장, 그러나 그가 시작한 건 예상과 다른 속사포 연설이었다. 분위기가 험악해질 수도 있었지만 선수들은 오히려 관중처럼 해당 팬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 장면이 중계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골키퍼 마르셀 슈헨은 “그의 스피치는 메시지가 명확했고 전혀 공격적이지 않았다”며 “이런 감수성 역시 우리 팀의 일부”라고 했다.
이와는 사뭇 다른 충돌 양상이 지난 5일 서울에서 벌어졌다. 대한민국 대 팔레스타인의 월드컵 최종 예선. 홍명보 감독 선임 논란 이후 열린 첫 경기, 팬들의 야유 등으로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0대0 무승부. 경기가 끝나자 수비수 김민재가 국가대표 서포터스 ‘붉은악마’ 쪽으로 걸어가 항의하는 돌발 상황이 벌어졌다. 단체 인사까지 거부한 김민재는 “못하기를 바라고 응원하시는 부분이 조금 아쉬워서 말씀드리고 싶었다”고 했고, 붉은악마 측은 “지금까지 어떤 순간에도 ‘못하길 바라고’ ‘지기를 바라고’ 응원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잡음이 커지자 김민재는 9일 “반성하고 있다”며 “팬들과 어떻게 관계를 가져가야 할지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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