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된장국에서 피어오르는 김도 ‘구름’입니다

황지윤 기자 2024. 9. 14.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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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날씨의 아이’ 기상 감수 맡은
日 기상청 연구자의 ‘하늘 바이블’

다 읽은 순간 하늘이 아름답게 보이는 구름 이야기

아라키 켄타로 지음| 김현정 옮김|윌북|388쪽|2만2000원

밥 먹으면서, 산책하면서, 여행하면서도 오직 구름 생각뿐이다. 365일 구름만 생각하는 ‘구름 덕후’가 구름을 비롯해 하늘에서 벌어지는 온갖 기상 현상에 관해 말한다. 2019년 개봉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영화 ‘날씨의 아이’ 기상 감수를 맡은 기상학자이자 일본 기상청 기상연구소 연구관 아라키 켄타로가 썼다. 이 책은 지난해 일본에서 출간, ‘하늘에 관한 바이블’로 불리며 현지에서 열렬한 반응을 얻었다.

◇된장국·아이스크림에서 구름을 보다

날씨는 인간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농경 생활을 시작한 뒤로 날씨에 적응하는 것은 인류의 주요 당면 과제였다. 인간은 기원전 3500년부터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기상은 과거 신의 영역으로 여겨졌지만, 점차 과학의 영역으로 들어온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상론’에서 날씨 연구는 ‘관찰’이라고 말한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부터가 기상학의 시작인 셈이다.

저자는 하늘을 올려다보지도 않고 하늘을 본다. 평소 즐겨 먹는 된장국을 보면서 ‘구름의 원리’를 떠올린다. 그릇에 담겨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된장국을 떠올려 보자. 뜨거운 국물 표면에 접한 공기가 따듯하게 데워지는 동안 국물 표면에서 수증기가 공급된다. 된장국 표면의 따듯한 공기가 주위 공기보다 밀도가 작고 가벼워 위로 올라간다. 공기가 상승하면 온도가 낮아져 차가워지면서 응결해 물방울이 생성된다. ‘무수히 많은 물방울과 얼음 결정체의 집합’인 구름이 만여들어지는 과정과 같다. 비가 그치고 아침의 공원 나무 그루터기에서 김이 나는 모습이나, 갓 뜯은 막대 아이스크림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 김도 구름의 일종이다.

기상학의 역사와 기본 원리는 물론 생활 속에서 만날 수 있는 기상 현상, 구름과 하늘을 즐기는 법 등을 차근차근 일러준다.난해한 기상학 교과서도, 설명이 모호한 하늘 사진집도 아니다. 일반 대중을 주 독자층으로 삼는다. 황인찬 시인, 케이채 사진작가 등 예술가들이 추천사를 쓴 점도 주목할 만하다. 예술가에게 하늘은 무궁무진한 소재가 된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천공의 성 라퓨타’(1986), 극장판 ‘도라에몽: 진구와 바람의 마을’(2003) 등 애니메이션도 하늘에서 벌어지는 기상 현상을 주목한다.

평소에는 구름을 보기 위해 하늘을 올려다봤다면, 비행기에서는 하늘을 내려다보며 구름을 만끽할 수 있다. 눈이 시릴 정도로 새파란 하늘은 덤. 수증기와 에어로졸(공기 중 부유하는 작은 입자)이 희박한 상공에서 파란색은 산란되지 않고 눈에 직접 들어온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당신의 ‘하늘 해상도’를 높여라

구름 마니아에게 비행기는 구름을 내려다볼 수 있는 이색 장소다. 저자는 비행기를 ‘하늘의 표현을 만끽할 기회’라고 말한다. 날개가 시야를 가리지 않는 창가 자리를 예약하는 게 우선. 어떤 현상을 보고 싶은지에 따라 좌우 어느 쪽을 예약할지 결정한다. 태양의 반대쪽 자리에 앉으면 ‘브로켄 현상’을 감상할 수 있다. 운행 중인 항공기 아래에 적운이나 층적운 같은 구름이 있으면 기체의 그림자가 구름에 비치면서 무지갯빛 원형 띠가 생기는 현상이다.

남들이 면세품 구매와 기내식에 몰두할 때 새파란 쪽빛 하늘에 매혹돼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본 기억이 있다면? 본능적으로 하늘색의 차이를 알아차린 것일지도 모른다. 상공에서 보는 하늘은 지상에서 보는 것보다 더 짙고 파랗다고 한다.

‘운이 좋아야 무지개를 볼 수 있다’는 것도 착각이다. 저자는 ‘약간의 지식만 있다면 얼마든지 (무지개를) 만날 수 있다’고 쓴다. 태양 반대편 하늘에서 비가 내릴 때를 노려야 한다. 소나기나 지나가는 비, 맑은 날 잠깐 오다가 그치는 여우비가 내릴 때가 절호의 기회다. ‘하늘을 예쁘게 찍는 법’ 같은 실용적인 요령도 소개한다. 무지개는 그림자처럼 아무리 쫓아가도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에 고배율 줌(zoom) 기능을 활용하면 좋다. 또 타임랩스(time lapse·저속 촬영) 기능을 활용하면 구름의 역동적 움직임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다.

비 오는 우중충한 날에도 이 기상학자는 재미나게 논다. ‘스마트폰 슬로모션 기능으로 물웅덩이를 찍어보라’고 조언한다. ‘위에서 빗방울이 떨어져 물웅덩이 수면에 닿았다 튀었다가 떨어지고 다시 튀는 과정’을 3~4초 촬영으로 볼 수 있다. 책을 덮고 하늘이 더 예뻐 보인다면, 당신의 ‘하늘 해상도’가 높아진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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