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여성팬 몰린 야구장, 1000만명이 신명나게 놀았다
흥행 대박 ‘프로야구 드라마’ 비결
‘신드롬’이라고 불러도 될 만한 프로야구 흥행 대박의 비결은 무엇일까. 중앙SUNDAY는 투수 레전드 출신 정민철 MBC 해설위원(전 한화 이글스 단장)과 SK 와이번스-SSG 랜더스로 이어진 인천 연고 프로야구 팀에서 모두 우승을 경험한 류선규 전 단장의 대담을 마련했다. 지난 11일 서울 중앙일보 회의실에서 만난 두 전문가의 키워드는 ‘2030 여성들의 야구장 접수’ ‘연예-방송-야구 콘텐트의 결합’ ‘구단 전력의 평준화’ 등이었다.
Q : 1000만 관중의 비결은 뭐라고 보나.
A : ▶류선규(이하 류)=“2030 여성들의 야구장 유입이 가장 큰 요인이 아닌가 싶다. 1980년대 초반 박노준·김건우(이상 선린상고) 등 고교야구 선수들이 하이틴 스타급 인기를 누린 적이 있다. 1994년 LG 트윈스 신인 3총사(류지현·김재현·서용빈)가 ‘오빠부대’를 야구장으로 모셔온 적도 있다. 지금은 20~30대 여성들이 야구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이들을 통해 아이돌 문화가 야구장에 유입됐다.” A : ▶정민철(이하 정)=“연예 콘텐트와 야구 콘텐트가 미디어를 통해 절묘하게 섞이면서 티핑 포인트가 만들어진 것 같다. JTBC ‘최강야구’가 야구장 문턱을 확 낮춰줬다. 야구는 워낙 룰이 복잡해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최강야구를 통해 여성들이 야구 룰과 재미를 알게 됐고, 자연스럽게 야구장을 찾게 됐다. 이들이 야구장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응원하는 장면을 숏폼과 SNS 등에 올리고, 이게 선순환을 일으켜 관중 증가로 이어졌다고 본다.”
요즘 야구장에는 가족·친구·직장동료 등이 함께 오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승패와 크게 상관 없이 소리 지르고, 노래하고, 춤추고, 먹고 마신다. 한국 프로야구는 스포츠를 넘어 ‘국민 오락’이 됐다. 두 사람은 이 표현에 동의한다고 했다.
▶정=“비즈니스 스포츠는 대중의 기분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좀 더 퀄리티 있는 경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별개로, 많은 사람들이 야구를 통해 즐거움을 맛보면 좋은 것이다. 프로 스포츠는 고급 클래식보다는 대중가요 쪽에 가깝다. 야구인으로서 지금의 관심이 과연 연속성을 가질 수 있을까 겁도 난다.”
▶류=“2007년 SK 와이번스가 처음 스포테인먼트(스포츠+엔터테인먼트)를 들고 나왔다. 성적도 안 나고 관중도 적은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패러다임을 바꾸는 개념이었다. 경기장의 볼거리·즐길거리를 늘렸고, 승리하면 선수들이 내야 그물망을 뚫고 관중에게 달려가 인사를 했다. 당시만 해도 파격이었지만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다. 요즘 올스타전은 복장과 퍼포먼스가 너무 튀어 야구를 희화화 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이건 40~50대 아재들 생각이다. 야구장을 점령한 20~30대 여성들에겐 너무 재미있는 거다. 야구장의 주류가 바뀌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A : ▶정=“일종의 어그로(관심끌기)라고 생각한다. 스케치북에 응원 문구를 써 들고 있는 건 ‘이러면 내가 카메라에 잡힌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방송사에서도 주로 여성 팬이 스케치북을 들고 있는 장면을 보여준다. ‘야구장에는 저런 멋진 여성이 많다’는 입소문 효과도 있다.” A : ▶류=“얼마 전 한화 팬이 ‘포기하지 마. 우리도 너네 포기 안했잖아’라고 쓴 게 기억에 남는다. 2022년 6월 15일 고척돔에서 여성 팬이 ‘이정후 여기로 공 날려줘’라고 썼는데 이정후가 그쪽으로 홈런을 친 게 화제가 됐다. 이처럼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스케치북 응원은 스토리텔링의 좋은 소재가 된다. 프로야구와 미디어가 어떻게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Q : 올해 팀 간 전력 격차가 크게 줄었다.
A : ▶정=“야구인으로서 자성의 목소리를 좀 내자면 전력 평준화가 상향 평준화는 아니라는 거다. 국제대회에서 우리는 더 이상 일본의 라이벌이 아니다. 어쨌든 전력이 평준화 되니 1위가 꼴찌 팀에 잡히고, 누가 이길지 모르니까 더 보러 가고 싶은 거다. 일본 야구는 점수가 많이 안 나고, 역전승도 많지 않다. 우리는 다득점 경기에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반전과 끝내기가 수시로 나온다.”
대구 삼성라팍 100만 관중 더 놀라워
▶류=“올 시즌 KBO는 극심한 타고투저다. 5경기 합쳐서 100점 이상 나기도 하고, 14-1로 앞서다가 14-14가 되기도 한다. 어이가 없기도 하고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막장 드라마가 시청률이 높은’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KBO에서는 경기 시간을 줄이려고 다양한 시도를 하는데 요즘 팬들은 오히려 야구 오래 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Q : 올해 도입된 ABS(자동볼판정시스템)에 대한 생각은?
A : ▶정=“나는 좋다고 본다. 시청자와 관중이 스트라이크-볼 판정에 신경 쓰지 않고 편안하게 경기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판도 인간인지라 오심을 할 수 있고, 레전드급 투수와 막 2군에서 올라온 타자가 맞붙으면 아무래도 투수 쪽에 기울게 된다. 기계는 그럴 수 없다. 프로야구 타고투저가 두드러진 것도, 고교 대회에서 역사가 짧은 팀이 좋은 성적을 내는 것도 ABS 시스템의 영향이 크다고 본다. 우리 사회의 화두인 ‘공정’ 측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는 것 같다.”
Q : 올 시즌 가장 인상적인 팀은?
A : ▶정=“삼성이다. 올해 8위 정도로 봤는데 종반까지 힘을 잃지 않았다. 젊은 내야진 김영웅·이재현, 외야로 포지션 변경에 성공한 김지찬 등 원석들의 잠재력이 폭발하면서 드라마틱하게 반등했다.” A : ▶류=“나도 삼성이다. 올해 대구에 127만명이 왔다는 얘기를 듣고 데이터가 잘못됐나 싶었다. KBO리그 1000만 관중보다 더 놀라운 게 삼성라이온즈파크의 100만 관중이다.”
두 전문가는 앞으로 프로야구의 예능화가 더 짙어질 거라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류 전 단장은 “지난해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의 폭망이 올해 프로야구에 악영향을 주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국제대회 성적이 리그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국제 경쟁력을 무시할 수 없으니 국제대회에는 선별적으로 출전하고, 리그 경쟁력을 키우는 데 더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 위원은 “유소년 자원이 풍부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어린 선수들의 기본기 훈련 시간을 늘리고 특화된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올 시즌 최고 히트상품 김도영 위력, KIA 통합우승 가능성 커져”
「 올해 프로야구 최고 히트상품은 단연 ‘KIA의 김도영(20)’이다. 프로 3년차 3루수인 김도영은 프로 최연소 최소경기 30(홈런)-30(도루) 클럽 가입, 100타점-100득점 기록 등 타격 부문을 휩쓸고 있다.
류선규 전 단장은 “2024년의 김도영과 비교할 수 있는 야수는 30년 전 이종범(당시 해태) 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경쟁자는 이종범의 아들인 메이저리거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강백호(KT 위즈) 정도인데 이정후는 장타력·파워에서, 강백호는 스피드·수비력에서 김도영을 넘기 힘들다는 분석이다. 류 전 단장은 “김도영의 또 다른 강점은 전통 명문인 KIA 타이거즈 선수라는 점이다. 키움에서 성장한 이정후나 KT 소속인 강백호가 갖지 못한 팬덤과 스타성을 김도영은 갖고 있다”고 부연했다.
정민철 위원은 “한화 단장 시절 고교생이던 김도영 경기를 자주 봤다. 오른손 타자인데 타격 후 1루까지 뛰는 속도가 3.7~3.8초 나왔다. 보통 우타자는 4.1~4.2초 정도니까 엄청난 스피드였다. 홈런을 그렇게 많이 칠 줄은 몰랐는데, 프로 와서 파워가 크게 향상됐다”고 말했다. 2022년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1순위 지명권을 가졌던 한화는 시속 160㎞ 강속구 투수 문동주를 선택했고, KIA는 김도영을 뽑았다.
두 전문가는 김도영을 앞세운 KIA의 통합우승 가능성을 높게 봤다. 막판까지 순위 싸움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지만 페넌트레이스는 1위 KIA, 2위 삼성, 3위 LG로 굳어질 확률이 높고, 한국시리즈에서 KIA와 삼성이 맞붙는다면 KIA의 화력이 앞선다는 게 이들의 분석이다.
」
정영재 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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