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부진 영풍, MBK 손잡고 고려아연 경영 장악 시도

정한국 기자 2024. 9. 14.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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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2조원 투입, 1주당 66만원에 공개 매수하기로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고려아연

세계 1위 비철금속 제련 기업인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둘러싼 2조원대 싸움이 시작됐다. 1949년 고(故)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공동 설립한 영풍은 1974년 고려아연을 설립했고, 영풍은 장씨 집안이 고려아연은 최씨 집안이 경영해왔다. 70여 년간 두 집안의 동업 관계가 이어졌지만, 2022년부터는 양 집안 갈등이 표면 위로 드러난 뒤 심화돼왔다. 그런데 13일 국내 1위 사모 펀드 MBK파트너스가 영풍 측에 가세했다. 고려아연 경영권 확보를 위해 최대 2조원의 주식을 공개 매수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영풍이 고려아연과의 각자 경영 원칙을 깨뜨리고, 사모 펀드와 손잡고 ‘적대적 M&A(인수 합병)’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두 집안은 영풍그룹이라는 한 울타리 안에서 주요 계열사의 지분을 함께 보유하는 방식으로 동업해왔다. 그러나 고려아연이 최근 영풍그룹 전체 매출의 75% 안팎을 도맡을 정도로 성장한 반면, 장씨 가문 쪽이 맡은 기업들은 부진해 격차가 벌어진 것이 갈등의 불씨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지난 5년간 고려아연의 연평균 영업이익은 약 8700억원이지만 장씨 집안이 경영을 하는 ㈜영풍은 약 7억원에 그친다. 특히 본업인 제련 부문에서 작년까지 3년 연속 적자가 나고 있다.

현금 창출력이 부족한 영풍이 고려아연을 상대로 잇따라 현금 배당 확대를 요구하는 가운데, 고려아연이 장기 성장을 목표로 이차전지·수소 등 신사업에 대규모 투자하자 부딪히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달 1일 창립 50주년을 맞은 고려아연은 전자·전기, 반도체, 자동차, 조선, 철강 등 주요 산업에 아연·연·동·은 등 기초 원자재를 공급하는 우리 기간 산업이다. 주요 산업 공급망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기업이 사모 펀드까지 가세한 경영권 분쟁으로 흔들리면서, 자칫 경쟁력까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래픽=양진경

◇공급망 핵심 기업, 적대적 M&A 시도

MBK는 이날 특수 목적 법인(SPC)을 통해 13일부터 다음 달 4일까지 고려아연 지분을 최소 7%, 최대 14.6%를 공개 매수한다고 밝혔다. 지난 12일 고려아연 종가(終價)는 55만6000원이었는데, MBK는 1주당 66만원에 공개 매수 하기로 했다. 14.6%를 모두 사들일 경우 대금은 약 2조원이다. 현재 고려아연은 영풍과 장씨 일가가 33.1%를 보유 중인데, MBK가 14.6%를 확보하면 의결권 있는 주식 기준으로 영풍·MBK 측이 52%를 확보하게 된다. MBK는 “고려아연의 지배 구조 및 기업 가치를 개선하는 게 목적”이라고 했다.

고려아연은 강하게 반발했다. 고려아연은 “경영권을 인수한 뒤 해외에 매각할 경우, 국가 기간 산업 및 이차전지 소재 관련 핵심 기술과 역량이 유출될 것”이라고 했다. 고려아연은 올 상반기 매출이 작년보다 8.7% 늘어난 5조4335억원, 영업이익은 50.3% 증가한 4532억원을 기록했고 2분기 영업이익률은 8.8%에 이른다. 올 2분기까지 98분기 연속 흑자다. 고려아연은 “현 경영진이 우수한 실적을 내는 만큼 지배 구조와 기업 가치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다음 달 초까지 주식 매입 대결이 치열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 측은 현대차그룹 등 우호 지분을 포함해 약 33.9%를 확보하고 있다. 영풍 측은 33.1%를 보유 중이다. 국민연금(7.6%)과 의결권 없는 자사주 등을 빼면 약 23%가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어, 이 가운데 얼마나 많은 지분을 우군으로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다.

그래픽=

◇재계 우려 속, 국민연금 뜻 촉각

재계에서는 고려아연과 기술 협력을 해온 기업들을 중심으로 우려가 커지고 있다. LG화학 관계자는 “경영권 분쟁이 지속될 경우 고려아연과의 미래 협력 관계에 불확실성이 커져 국내 배터리 산업의 장기적인 성장과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LG화학은 고려아연과 배터리 핵심 소재인 전구체 생산 공장을 최근 완공했다. 한화와 현대차그룹은 이차전지 소재 확보 등을 위해 협업하며 이 회사 지분도 보유 중이다.

공개 매수의 성공 여부는 단언하기 어렵다. 13일 고려아연 주가는 전날 대비 약 20% 올라 66만6000원으로 마감했다. 이정도 주가가 지속되면 MBK가 제시한 66만원에 주식을 넘길 투자자가 많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고려아연 주요 주주인 국민연금(지분 7.6%)의 의사도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영풍·MBK 측의 공개 매수에 국민연금이 응할지에 따라 외국인 주주, 소액 주주의 선택도 바뀔 수 있다. 다만 지난 3월 주총에서 국민연금은 고려아연 측이 올린 안건에 모두 찬성해, 현 경영진을 지지한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밝혔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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