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금감원장의 사과를 보며

김희래 기자 2024. 9. 14.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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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10일 서울 중구 은행회괸에서 열린 금융감독원장-은행장 간담회를 마치고 백브리핑을 위해 자리 잡고 있다. /뉴스1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자신의 가계 대출 규제 관련 발언이 세심하지 못했다고 인정하며 지난 10일 공식 사과했다. 앞서 “가계 부채 관리 속도가 늦어지더라도, 대출 실수요자 피해가 없어야 한다”며 상급기관인 금융위원회의 대출 규제 강화 기조와 상반된 메시지를 낸 지 6일 만이다.

이 원장이 자신의 발언에 대해 직접 사과한 것은 이례적이란 평가가 많았다. 그는 그동안 공매도 재개 방침을 섣불리 언급하고, 상법 개정, 상속세제 개편 등 타 부처 정책에 목소리를 내 숱한 ‘월권 논란’을 일으키면서도 사과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엔 그의 발언이 국민들의 집안 살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가계 대출 분야에서 문제를 일으키면서 고개를 숙이게 됐다.

은행권은 지난달 말 이 원장이 방송에 출연해 ‘대출 금리 인상이 아닌 다른 대출 규제’를 주문한 데 따라 대출 한도 축소, 유주택자 규제 등 각종 규제를 쏟아냈는데, 그가 열흘 만에 다시 ‘실수요자 보호’를 말하자 혼란에 빠졌다. 금감원 내부에서조차 “원장의 대출 규제는 ‘오빠 맘을 맞혀봐 스무고개’”라며 일관성이 없다는 비아냥이 나왔다.

이 원장의 사과로 당장 급한 불은 껐다. 다만 가계 대출 규제 문제를 두고 금감원장이 사과하게 된 상황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란 점은 곱씹어봐야 할 부분이다. 만약 누군가 사과해야 한다면 그건 금융위원장이어야 한다.

금감원은 금융위에서 감독 업무를 위탁받은 민간 조직이다. 원장을 포함해 직원 2000여 명 모두 민간인 신분이지만 법상 금융위의 지휘를 받는다. 그러나 이 원장 취임 이후 이 같은 지배구조는 무너졌다. 이 원장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는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관계 부처에서는 그의 발언이 사견인지 대통령의 뜻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고 한다.

그 결과 이 원장이 금융위를 비롯해 법무부, 기획재정부 등 금감원의 업무 범위를 뛰어넘는 주요 정책에 대해 거듭 발언할 때 관료들은 그를 말리지 못했다. 향후에도 이런 일이 생기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물론 이 원장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공무원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는 시스템의 문제다. 더 나아가 전직 금융위 고위 관료들은 대통령 최측근 금감원장의 거친 발언이 되풀이될 경우 금융 위기 등 위기 상황에서 대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2022년 4월 서울북부지검 부장검사였던 이 원장은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던 ‘검찰 수사권 박탈’에 반발해 사표를 던졌다. 그랬던 그가 금융 당국의 지휘 체계에 균열을 내고 있는 모습은 어딘가 아이러니하다. 이번 일이 금감원과 금융위 사이 바람직한 지배 구조를 정립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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