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북한의 ‘자해 소음’

김광일 기자 2024. 9. 1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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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1989년 12월 미군이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를 잡으러 파나마시티에 들어갔으나 그는 바티칸 대사관으로 도망쳤다. 무력 체포를 할 수 없게 된 미군은 기상천외한 방법을 썼다. 전차와 장갑차를 갖다 놓고 공회전을 시켰고, 대사관 옆 공터를 헬기 착륙장으로 만들었다. 이때 나오는 소음이 효과가 있을 듯하자 이번에는 대형 스피커로 록 음악을 24시간 틀었다. 더 클래시, 밴 헤일런 등 주로 과격 밴드의 연주였다. 견디다 못한 노리에가가 열흘 만에 손들고 나왔다.

▶헤비메탈 같은 강렬한 비트 음악은 그걸 접해 볼 기회가 없었던 문화권 사람에겐 적잖은 고통이다. 미군은 중동의 아랍권 포로에게 ‘소음 고문’을 자주 써먹었다. 심리전 장교들은 “소음 공격이 24시간 이상 계속되면 뇌와 신체 기능이 흔들리고 이어 사고 능력이 붕괴된다. 그때 심문을 시작한다”고 했다. 같은 질문을 계속 던진다거나 얼굴에 백열등을 쏘여서 잠을 못 자게 하는 것보다 헤비메탈이 더 효과적이었다고 했다.

▶전쟁터 같은 극단적 대치 상황이 아닌 일상생활에서도 참을 수 없는 소음에 포위당할 때가 있다. 주택가까지 파고든 시위꾼들의 확성기 소리, 심각한 이웃 싸움으로 번지는 아파트 층간 소음이 대표적이다. 분필이나 손톱으로 칠판 긁는 소리가 소름끼치는 이유는 과학적으로 설명이 된다. 그때 나는 2~5kHz 고음은 인간의 귀 모양을 따라 잘 증폭되고, 또 대뇌의 어떤 부위는 이런 특정 소리에 매우 강한 불쾌함을 느낀다고 한다.

▶최근 북한이 전방에 설치한 확성기로 소음을 방출하는 바람에 접경지 남측 주민들이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주로 강화도 북쪽에 사는 주민들의 고통이 크다고 한다. 합참에서는 “미상(未詳) 소음”이라고 표현했는데, 정체를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사이렌에 북장구 소리가 섞였다고도 하고, 쇠를 깎고 긁는 듯한 소리라고도 했다. 북한의 쓰레기 풍선에 대응해서 우리 군이 가요와 라디오로 대북 방송을 하자 북한은 기괴음을 내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스피커는 남쪽이 아니라 북쪽을 향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북한 군인과 주민이 한국의 대북 방송을 못 듣게 하려고 소리를 섞는 것이다. 일종의 ‘자해 소음’이다. 그런데 바다로 맞닿아 있어 중간에 막아주는 산이 없는 강화도 교동도에 이 북한 소음이 들리고 있다. 엉뚱한 피해인 셈이다. 심할 땐 지하철 소음과 맞먹는 85dB 수준에 이른다. 직접 들어보니 음산하게 기분 나쁜 괴음이었다. 쓰레기 풍선에 이어 쓰레기 소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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