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다시 불붙은 ‘지분 전쟁’…영풍·MBK 공개매수
창업주 후손끼리 경영권 다툼을 벌였던 고려아연에 사모펀드가 뛰어들며 지분 경쟁이 다시 불붙었다. 시가총액 10조원대 코스피(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인 이 회사 주가는 13일 이 여파로 20% 가까이 급등했다. 당분간 주가 변동성이 확대될 전망이다.
13일 주식회사 영풍과 한국기업투자홀딩스는 이날부터 다음달 4일까지 고려아연 주식 공개 매수를 하겠다고 공시했다. 한국기업투자홀딩스는 사모펀드 운용사인 엠비케이(MBK)파트너스가 설립한 투자목적회사다. 영풍과 엠비케이가 손잡고 고려아연 지분 매집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공개 매수를 통해 고려아연 지분을 추가로 취득해 경영권을 공고히 하고, 훼손된 지배구조를 회복하고 기업가치를 제고해 주주가치를 극대화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고려아연은 지난해 9조7천억원의 매출액과 6500억원대의 영업이익을 올린 비철금속 제련업체다.
공개 매수 규모는 고려아연 주식 144만5037주∼302만4881주다. 지분율로 환산하면 6.98∼14.61%다. 공개 매수 가격은 주당 66만원으로 전날 종가(주당 55만6천원)에 견줘 18.7% 높다. 전체 공개 매수 금액은 최소 9537억원에서 최대 1조9964억원에 이른다. 향후 공개 매수 응모 주식 수가 최소 매수량인 약 144만주에 미달하면 공개 매수를 취소하고, 이를 넘으면 최대 302만주까지 모두 현금으로 매수할 예정이다.
이번에 공개 매수에 나선 영풍(장형진 영풍 고문 일가 등 특별관계자 포함)이 현재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율은 33.13%다. 공개 매수에 성공하면 장씨 일가와 엠비케이의 고려아연 지분율은 최소 40.11%에서 최대 47.74%로 늘어나게 된다. 의결권 없는 자사주와 국민연금 지분율(7.83%)을 제외하면 절반을 넘는 지분 52.2%를 확보하게 되는 셈이다.
이날 엠비케이는 고려아연 지분 1.85%를 보유한 코스닥 상장사 영풍정밀 주식 공개 매수도 함께 착수했다. 이 회사 주식 684만801주(지분율 43.43%)를 다음달 4일까지 주당 2만원에 매수한다. 영풍정밀의 12일 주가는 9370원이었다. 영풍정밀은 장씨 일가와 경영권 다툼을 벌이는 현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일가가 지분을 나눠 갖고 있는데, 최씨 일가 쪽 지분을 제외한 유통주식을 모두 사들이겠다는 것이다.
이번 공개 매수가 성공하면 고려아연의 실질적 경영권은 엠비케이가 쥐게 될 전망이다. 영풍 쪽과 엠비케이는 앞서 전날 고려아연 이사 선임, 정관 개정, 자본구조 변경 등 의결권 공동 행사를 위한 경영 협력 계약을 맺었다. 엠비케이는 영풍보다 이사를 1명 더 선임할 수 있고, 대표이사(CEO) 및 재무담당임원(CFO) 지명권을 갖는다.
또 공개 매수 이후 양쪽이 고려아연 주주총회에서 이사 절반 이상을 선임해 이사회를 지배할 경우, 엠비케이는 영풍 쪽을 상대로 콜옵션(미리 정한 가격에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을 행사해 영풍 쪽보다 1주 많은 고려아연 주식을 확보할 수 있다. 엠비케이가 고려아연의 단일 주주 중 최대 주주가 되는 셈이다.
이날 고려아연 종가는 전 거래일보다 19.78% 급등한 주당 66만6천원에 장을 마쳤다. 영풍정밀 주가는 주당 1만2180원까지 뛰며 상한가(29.99%)를 찍었다.
고려아연은 고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함께 세운 회사다. 현재 고려아연은 최윤범 회장 등 최씨 일가가, 영풍그룹은 장씨 일가가 각각 경영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2022년 최 회장 취임 이후 두 일가가 고려아연 지분 확보 경쟁을 벌이며 갈등을 빚은 바 있다.
양쪽은 공방을 벌이고 있다. 고려아연은 이날 공개 매수를 ‘적대적·약탈적 인수·합병(M&A)’이라고 규정하며 “이번 공개 매수는 회사의 중장기적인 기업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소액주주를 포함한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심각하게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반면 영풍은 이날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고려아연 회계 장부 및 서류 열람 및 등사, 고려아연의 자사주 취득 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최윤범 회장에 관한 상법 위반 등 각종 의혹을 규명하고, 최 회장이 고려아연 주가를 공개 매수 가격 이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회사를 통한 자사주 취득에 나설 경우 자본시장법 위반이 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은 것이다. 양쪽의 물러설 수 없는 ‘쩐의 전쟁’이 시작된 셈이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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