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식의 궁리] 나이키와 게스 시대가 저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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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라졌지만 1990년대 '메이커'라는 말이 있었다.
주로 유명 브랜드 상품을 통칭했는데 당시 젊은이들은 신발은 나이키, 셔츠는 폴로, 청바지는 게스를 갖춰야만 했다.
레거시 브랜드는 뒤늦게 주도권을 되찾으려 했지만 대부분 실패로 귀결되고 말았다.
브랜드 충성도라는 용어는 이젠 교과서에나 나오는 사어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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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라졌지만 1990년대 '메이커'라는 말이 있었다. 주로 유명 브랜드 상품을 통칭했는데 당시 젊은이들은 신발은 나이키, 셔츠는 폴로, 청바지는 게스를 갖춰야만 했다. 대량으로 양산한 패션을 소비해야 안도하던 시절은 얼마 전까지 이어졌다. 2010년대 초반 중고생들은 검은색 노스페이스 패딩을 교복처럼 입었는데, 부모님들은 자녀가 따돌림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20만원대 패딩을 아낌없이 사줬다.
'소비의 집단성'은 어른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회식 자리에서 양주는 발렌타인, 소주는 두꺼비가 으레 올라왔고 주거는 성냥갑 같은 아파트를 고집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동차를 흰색, 은색, 검은색 가운데서만 고르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한국인은 남과 다르면 불안을 느끼는 무채색의 민족이다.
외국인은 갸우뚱할지도 모르지만, 기업에 이는 장점이 된다. 마케팅에 별다른 지출을 하지 않아도 표준화된 제품을 잘 만들면 되니 투자 효율성이 높다. 품질을 꾸준히 유지해야 하는 과제는 있었지만, 임직원이 부지런히 일한다면 매출은 보장됐다. 한국인의 집단성은 브랜드 충성도의 다른 이름이었다.
힘의 균형은 대형마트의 등장으로 흔들리더니 전자상거래가 부상하면서 무너졌다. 대형마트는 매대의 제한이라도 있었지만, 전자상거래 플랫폼은 이마저도 없다. 플랫폼은 식료품부터 가전까지 모든 종류의 제품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였고 소비자는 전자상거래에 더욱 의존했다. 레거시 브랜드는 뒤늦게 주도권을 되찾으려 했지만 대부분 실패로 귀결되고 말았다. 실제로 요즘 소비자들은 특정 제품을 구할 때 플랫폼을 먼저 떠올린다. 치킨을 예로 들면 이젠 동네 치킨집 연락처를 검색해 주문하는 사람은 없다. 대신 배달 플랫폼에 접속해 마음에 드는 제품을 골라 주문 버튼을 클릭할 뿐이다. 접속부터 배달까지 이어지는 과정에 브랜드가 개입할 틈은 없다.
더욱 큰 변화는 플랫폼이 브랜드 숫자 자체를 크게 늘렸다는 것이다. 화장품만 봐도 그렇다. 다소 멀더라도 특정 제조사 매장을 찾던 소비자는 이젠 집 근처 올리브영 매장을 방문해 2400여 개 브랜드를 직접 시험해 본 뒤 마음에 드는 제품을 골라서 산다. 패션도 마찬가지다. 가장 가입자가 많은 패션 플랫폼 무신사의 경우 입점 브랜드가 8000여 개에 달한다. 어떤 브랜드도 플랫폼에서 압도적 점유율을 달성하지 못한다. 소비자는 플랫폼의 등장과 함께 철저히 파편화됐다.
플랫폼의 영향력이 커지자, 브랜드는 정부에 규제를 요구하고 나섰다. 특히 소상공인이 대부분인 외식업계가 가장 큰 목소리를 낸다. 소비자가 플랫폼에 의존할수록 경쟁이 심해지니 불만을 토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표준화된 제품을 안정적으로 내놓던 프랜차이즈 점주들은 이젠 브랜드 없는 개인 매장과도 경쟁하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 관점에서 보면 예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 브랜드 충성도라는 용어는 이젠 교과서에나 나오는 사어가 되고 말았다. 배고플 때마다 유명 브랜드 매장을 찾아가며 얻는 안도감은 스스로 플랫폼에서 맛집을 발굴하고 느끼는 쾌감을 압도하지 못한다. 플랫폼이 이룩한 소비혁명으로 소비자는 객체가 아닌 주체로 변모한 것이다. 인간은 객체일 때보다 주체일 때 더욱 큰 만족을 느낀다.
[김규식 컨슈머마켓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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