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수의 책과 미래] 환대와 증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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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가의 작품을 꾸준히 읽으면서 같이 나이 드는 일보다 기쁜 일은 드물다.
환대란 상대를 따지지 않고 고통에 처한 이에게 손 내미는 일이고, 증여는 사정 딱한 이에게 대가 없이 내 걸 건네는 행위다.
이름만 듣고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위기에 처한 누군가를 집으로 들이는 게 환대다.
환대가 있는 한 구원의 태엽이 풀려서 세상에 빛이 꺼지고 멜로디가 끊길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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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가의 작품을 꾸준히 읽으면서 같이 나이 드는 일보다 기쁜 일은 드물다. 한 걸음 앞에서 나란히 성찰하는 이가 있어야 삶은 곁길로 빠지지 않는다. '빛과 멜로디'(문학동네 펴냄)를 쓴 조해진 작가가 내겐 함께 걷는 독서 목록에 있다. 첫 인연 이래 스무 해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주인공은 승준과 권은. 이야기는 환대와 증여의 힘을 다룬다. 환대란 상대를 따지지 않고 고통에 처한 이에게 손 내미는 일이고, 증여는 사정 딱한 이에게 대가 없이 내 걸 건네는 행위다. 네가 누구인지 묻지 않는 게 환대의 원칙이고, 무엇과 바꿀지 헤아리지 않는 게 증여의 핵심이다.
"태엽이 멈추면 빛과 멜로디가 사라지고 눈도 그치겠죠." 어둠 속에서 열두 살 은이 응시하던 스노볼은 희망 자체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은은 굶주림과 추위에 떨며 죽어가는 중이었다. 태엽이 거의 풀린 상황에서 반장인 승준이 은을 찾는다. 그는 무작정 은에게 라면, 쌀 등을 갖다주고 아버지 필름 카메라도 빼내서 건넨다. 팔아서 살라고.
환대엔 구원의 힘이 있고, 증여는 기적을 일으킨다. 카메라는 어둠에서 작은 빛을 모아 그 빛으로 추위에 떠는 피사체를 감싼다. 어둠은 빛으로 옮기고, 죽음은 생명으로 되돌린다. 은은 말한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 가장 위대한 일이다." 지하에서 나온 은은 사진기를 들고 분쟁 지역을 찾아 떠돈다. 가자,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등 폭력과 학살의 현장에서 '사람을 살리는 사진'을 찍는다. 세계의 어둠에 작은 빛을 던져 생명의 태엽을 되감으려 한다.
그러나 모든 삶엔 태엽이 풀리는 순간이 있다. 시리아 내전에 갔다가 은은 포탄에 다리 하나를 잃고 낙담한다. 기자인 승준도 러시아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 여성을 인터뷰해 글을 써달라는 청탁에 망설인다. 갓 태어난 딸 지유 앞에서 이 세계의 지독한 어둠을 차마 들여다보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서다.
두 사람의 풀린 태엽을 되감은 건 난민 여성 살마. "은, 잊었어? 애나도 내 이름만 듣고 나를 초대했어." 살마는 은의 도움으로 영국에 정착지를 얻어 삶을 회복한 난민이다. 그녀가 승준이 취재한 우크라이나 임산부를 초대한다. 이름만 듣고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위기에 처한 누군가를 집으로 들이는 게 환대다.
초대받아 빛을 회복한 사람이 다시 어둠 속 누군가를 초대한다. 희망은 이렇게 만들어지고 또 이어진다. 환대가 있는 한 구원의 태엽이 풀려서 세상에 빛이 꺼지고 멜로디가 끊길 일은 없다. 한가위다. 당신은 지금 환대의 카메라를 누구에게 건네고, 증여의 빛으로 어느 어둠을 돌보고 있는가.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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