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서 폐암 놓쳐 '17억' 배상, 소송당사자는 외래 두 번 더 간 의사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이 '필수 의료'를 기피하는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정부와 국회가 '의료사고 처리 특례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필수 의료 중 사고가 났을 경우 책임보험·공제에 가입했다면 원칙적으로 의사를 법정에 세우는 일(공소 제기)을 제한하는 내용이다. 의료 분쟁 시 환자·의료진 간 불신을 완화하기 위해 '환자 대변인' '국민 옴부즈맨' 등의 제도도 시행될 예정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해당 판결은 필수 의료(응급의학과)와는 큰 연관성이 없다. 머니투데이가 입수한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2018년 1월 두통으로 가톨릭중앙의료원 산하 한 병원 응급실에 내원해 흉부 방사선 촬영, 뇌 CT, 심전도, 혈액 검사 등을 받았다. 의료진은 "'혈관 이상은 보이지 않았으나 뇌실(뇌 사이 빈 곳) 확장으로 외래 방문은 필요하다'고 설명했고 A씨는 당일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다음날, 흉부 방사선 촬영 영상을 판독하던 중 의료진은 '좌측 폐문부의 종괴 혹은 뚜렷해 보이는 혈관 의증'을 발견한다. 폐암을 암시하는 소견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로부터 이틀 후 신경과 외래 진료를 위해 병원을 찾은 A씨에게 의료진은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뇌 검사만 추가 시행했다. A씨가 며칠 뒤 뇌 검사 결과를 확인하러 한 번 더 병원에 왔지만 역시 폐 병변이 발견된 사실을 알리지도, 추가 검사를 시행하지도 않았다.
A씨는 이후 11개월이 지난 같은 해 12월, 건강검진 중 흉부 CT 검사를 받다가 뒤늦게 폐암을 발견한다. 암은 이미 커졌고 폐에서 다른 장기로 전이된 3B~4기로 악화한 상태였다. 서둘러 폐암 수술을 받았지만 이후 뇌와 부신까지 전이돼 표적 항암제를 복용해야 했다.
이에 A씨는 의료진이 흉부 방사선 촬영에서 폐암 소견이 확인됐는데도 이런 추가 검사 여부, 치료 방법과 예후 등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았다며 가톨릭학원과 보험사를 상대로 일시금 약 65억원과 매달 생계비 1200여만원, 매년 치료비 700만원을 지급하라는 내용의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A씨는 당시 44세 피부과 전문의로 매달 3500여만원을 벌었지만, 암으로 일을 전혀 할 수 없는 상태가 됐고 표적항암제 약값이 비싸 배상 청구 금액이 컸다.
가톨릭학원측은 "병변이 의료진에 따라 두드러진 혈관이라고 의심할 수 있고 추후 경과 관찰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는 소견"이라고 반박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미 흉부 방사선 촬영 검사 결과 폐암을 의심할 만한 병변이 확인된 이상 위 병변이 혈관성 병변으로 의심된다고 하더라도 이를 명확히 진단하기 위해 흉부 전산화 단층 촬영 등 추가 검사를 시행해야 하는 것이 당시의 의료기관 등 임상의학 분야에서 실천되고 있는 의료행위"라고 설명했다.
다만, 재판부는 A씨가 응급실에 내원한 직후 폐암을 치료해도 완치됐다거나 뇌·부신 전이가 발생하지 않았을 거라고 단정하기를 어려운 점 등을 들어 병원 측 책임을 30%로 제한했다. 예상 수입과 치료비 등 약 17억원은 일시금으로 지급하고 매달 일정 금액을 최대 4억6000만원 추가 지급하라는 판결이 이래서 나왔다.
법원 판결이 필수 의료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이를 인용·보도하는 데 주의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최근 의정 갈등으로 국민과 환자 불안이 커진 상황에서 자칫 '잘못된' 내용이 퍼질 경우 불필요한 불안과 걱정을 유발하거나 의사·환자 간 신뢰를 깨트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윤구현 간사랑동우회 대표는 "의사가 환자의 진료기록을 보지 않고 개별 환자 사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하는 것처럼 재판 결과도 판결문을 모두 보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의료사고가 소송으로 가는 근본적인 원인을 찾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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