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헌의 음감] '보이넥스트도어' 같은 옆집 소년들 어디 없나요
옆집에 이런 소년들이 살면 얼마나 좋을까. 이웃의 개념이 희미해지고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어색한 관계만이 남아있는 2024년의 한국에서 보이넥스트도어는 계속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초인종을 누르는 청년들이다. 기분 좋은 쾌활함과 자유로운 감정, 활력 넘치는 모습으로 온 동네를 쏘다니는 이들은 동네의 유명 인사다. 비록 새벽 세 시까지 고래고래 노래를 불러서 한마디 할 때도 있고, 갑자기 우울해 보여서 걱정되기도 하지만, 활기차게 어울려 다니는 여섯 친구가 한데 모여 청춘을 노래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마냥 어려 보였던 이 녀석들이 곧 모두 20대라고 한다. 세상에.
'19.99' 앨범을 소개하는 트레일러 '19.99 트레일러 필름: 미스테리어스 20(19.99 Trailer Film: Mysterious 20)'에서 그룹의 방향성을 살펴보자. 앨범의 아이디어는 'l i f e i s c o o l'에서 강제 귀가 조치됐던 그룹의 막내 '운아기' 운학이 이제 곧 20대로 진입한다는 데서 출발했다. 영상은 전 세계 19세 중 오직 단 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슈퍼컴퓨터를 손에 넣게 된 운학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쫓기며 미지의 나이로 진입하는 순간을 보여준다. 19살이라는 나이에서 1999년을 추출하고, 이는 영상 속 직접 언급하는 '세기말 밀레니엄 신드롬'과 2002년 월드컵의 흔적이 남은 브라운관과 거치형 게임기, 쿼티 자판 휴대전화로 구현된다. 1999년의 소년들은 이듬해 모든 전산이 무너져 세계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과 다가올 새천년에 대한 기대라는 상반된 감정 사이에서 다가올 미래를 상상했다. 오늘날 소년들은 어떤가. 계속되는 세계구급 위기와 부정적인 예측이 쏟아지는 가운데 공동체의 경험은 희미해지고 파편화된 개인들은 더욱 자기주장만을 고집하고 있다. 그렇기에 여섯 명은 더욱 단단해져야 한다. 내일 없이 뛰어놀고, 소중한 추억을 쌓아야 한다.
보이넥스트도어는 친근하다. 그들은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퍼포먼스, 심오한 세계관의 보이그룹 대신 가볍게 들을 수 있는 일상의 이야기를 노래하는 유행에 때맞춰 등장했다. 성장 서사의 한 장, 팬서비스 한정으로 제한되었던 청량과 순수 콘셉트에 대한 다양한 재해석이 등장하는 가운데 보이넥스트도어는 이상적인 십 대의 나날 속 해맑게 웃고 떠드는 친구들을 자처했다. 회사의 운명을 책임져야 하는 중압감, 치열한 경연 프로그램을 통해 선발된 생존 경쟁의 상흔, 이 우주를 구원해야 하는 비장한 각오 등은 이 팀에 어울리지 않는다. 2023년 5월 싱글 'Who!'와 함께 첫사랑 3부작을 소개하며 또래들이 할법한 고민을 몰입감 있는 하이틴 시리즈물로 소개한 그룹의 목표는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할 것, 그리고 재미있는 음악을 중심으로 젊음을 무기 삼아 좋은 시절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재미있는 음악이라 소개했지만, 단순 흥미 위주의 가벼운 결과물이라는 뜻이 아니다. 보이넥스트도어의 음악은 현재 그룹에 대한 호평의 큰 부분을 차지하며 급성장하는 그룹의 핵심 동력이다. KOZ엔터테인먼트의 수장 지코부터 짚어보자. 2010년대 케이팝 시장을 풍미했던 블락비의 핵심 성공 비결을 자사 첫 보이그룹에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팝타임(Pop Time)과 함께 록과 힙합, 팝 등 장르 구분 없이 최적의 트렌드를 가져와 만든 '원 앤 온리(One And Only)'와 '어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 Fire)'에 사장님의 지문이 선명하게 묻어있다. 흥청망청 무대를 뒤집어 놓다가도 차분한 보편의 공감을 안겼던 악동 블락비의 정신이 빛나는 가운데, 멤버들은 곡의 가사를 직접 쓰고 제작에 참여하며 현실을 음악에 옮긴다. 보이넥스트도어에서 케이팝 팬들이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중반까지, 대중적으로도 지지를 받았던 많은 보이그룹을 떠올리는 건 우연이 아니다. 멤버 전원이 랩과 보컬, 댄스 능력치를 고루 가지고 있으며 핸드 마이크 라이브를 고수하는 모습, 역동적인 동작을 무리 없이 소화하는 퍼포먼스 또한 호감 요소다.
치밀한 앨범 구성은 이런 보이넥스트도어의 음악을 완성한다. 보이넥스트도어의 음악은 개별 노래 감상보다 앨범 단위 감상, 특히 첫 곡부터 마지막 곡까지 순서대로 들었을 때의 경험이 크게 다르다. 한 편의 단편 영화, 혹은 시리즈물을 의도한 듯 각 노래의 서사가 이어지며 물 흐르듯 유연한 감정의 몰입을 돕는다. '돌아버리겠다', '원 앤 온리', '세러네이드'의 '후(WHO?)' 싱글 3곡은 세븐틴의 데뷔 초창기 틴에이지 뮤지컬을 연상케 했다. 차분한 힙합과 신스팝, 록, 하이퍼팝 등 다양한 장르를 수록한 미니앨범 '하우(HOW?)'에서도 첫사랑의 만남과 이별이라는 줄거리 위 자연스러운 트랙 배치를 통해 능숙한 완급조절을 선보였다. 한 곡으로는 다 설명하기 어렵고, 긴 호흡으로는 전달하기 쉽지 않은 이야기를 흥미로운 곡 배치로 끊김이 없이 들려준다. 쉬워 보여도 많은 부분에서 고심이 느껴지는 결과물이다.
첫사랑 시리즈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그룹의 장을 여는 앨범 '19.99'는 지금까지 그룹이 쌓아온 서사와 개성, 실력을 총망라하는 작품이다. 언제나 솔직한 감정을 풀어놓았던 멤버들은 아직 낯선 20대의 입구 언저리에서 느끼는 혼란을 짜릿한 일탈과 자아도취로 풀어내면서, 동시에 서툴어도 괜찮다는 동 세대에 대한 위로를 전한다. 그 메시지를 과장하지 않고 현실적으로 담백하게 전하기에 더 현실적이다. 택시 할증 시간이 끝나는 새벽 네 시까지 제대로 놀아보겠노라 이야기하는 '부모님 관람불가'에서의 일탈은 '아빠 지갑에는 손댄 적 없지만 아빠 명품 옷을 걸친 적은 있어' 같은 귀여운 노랫말과 노래방에서 밤을 새우고 옥상을 아지트 삼아 노는 건전한 단계로 마무리된다. 거창한 다짐과 자신감에도 어른의 세계를 '찍먹'하는데 그쳤던 마지막 십 대와 이십 대 초의 일탈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추억까지 선사한다.
빅뱅, 틴탑, 블락비의 음악을 사랑했다면 더욱 아련할 '돌멩이'에서 그 아련함이 배가 되는데, 그렇다고 그룹이 소심한 것은 아니다. 십 대의 쑥스러움을 돌파하여 건조한 기타 연주 위 복잡한 감정을 깨트리고 싶어 하는 노랫말이 새로운 보이넥스트도어의 성장을 은유한다. 라디오 프로그램을 닮은 스킷을 거쳐 스스로를 '보이(Boy)'가 아니라 '가이(Guy)'라 선언하는 나르시시즘의 '나이스 가이(Nice Guy)'가 타이틀 곡인 데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이다. 여유로운 태도를 뒷받침하는 브라스 세션과 산뜻한 리듬 위에서 멤버들은 스스로를 강하게 믿는 동시에 상대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은연중에 내비친다. 이 고민이 '대학, 재수, 취업' 얘기만 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10대 시절과 달라진 상황을 고민하는 '스물'과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 없잖아', '주눅들지 좀 말자'는 '콜 미(Call Me)'로 완결되며 한 편의 기분 좋은 청춘물이 마무리된다. 청춘하면 떠오르는 여러 키워드에 맞춰 써 내려간 음악이 아니라, 보이넥스트도어가 살아가고 있는 나이와 청춘의 한 페이지를 음악으로 옮겼기에 더욱 밀도 있고 몰입할 수 있는 앨범이 만들어졌다.
보이넥스트도어는 데뷔 2년 차임에도 벌써 많은 것을 이뤘다. 데뷔 112일 만에 빌보드 200 차트에 진입했고, 일본 정식 데뷔 전부터 오리콘 주간 앨범 랭킹에 이름을 올렸다. '19.99'는 발매 당일 60만 장 판매고와 함께 그룹의 재기발랄한 음악을 더 넓은 세상에 알리고 있다. 세대, 국적 구분 없이 모두가 듣고 공감할 수 있는 진솔한 청춘 서사의 힘이다. 사실 이 모든 성과를 떠나 그룹 막내의 마지막 10대를 함께 축하하고, 이를 음악에 녹여 한 편의 앨범으로 담아낸 보이넥스트도어 멤버들에게 더욱 뿌듯한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가도 우정은 영원할 테니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즐거움이 더 나은 음악을 만들 테니까.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 / zener1218@gmail.com
<사진출처=KOZ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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