닳고 닳은 대본 들고…최원영 "외나무다리에 선 기분으로 연기"

김현식 2024. 9. 13.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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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랑데부' 태섭 役 최원영 인터뷰
2015년 이후 9년 만에 연극 출연
"운명처럼 만난 작품…치열하게 연기 준비"
"관객에게 후회 없는 경험 안기고파"
드라마 '조립식 가족' 첫방송 앞둬
(사진=옐로밤)
[이데일리 김현식 기자] 연극 ‘랑데부’ 공연이 한창인 LG아트센터 서울 U+스테이지 대기실. 인터뷰를 약속한 배우가 손에 닳고 닳은 대본을 들고 걸어 들어왔다. 남자 주인공 태섭 역을 맡고 있는 최원영(48)이다.

“대사량이 어마어마한 데다가 단 두 명이서 실수 없이 해내야 하는 작품이잖아요. 물론 대사를 다 외웠지만 여전히 떨리는 마음이 있는데 그나마 대본을 들고 다니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하하.”

그의 말대로 ‘랑데부’는 남자 주인공 태섭과 여자 주인공 지희를 연기하는 두 명의 배우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의 퇴장도 없이 100분간 끌어가야 하는 작품이다.

최원영은 “집에서 밥을 먹다가도 공연 생각을 하면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아침에 잠에서 깨자마자 혼자 대사를 중얼중얼 대기도 한다”고 웃어 보였다.

심지어 ‘랑데부’는 움직이는 트레드밀을 설치한 런웨이 형식의 실험적 무대에서 연기해야 하는 작품이고, 공연 때마다 구성이 달라지는 ‘접촉 즉흥’ 퍼포먼스도 소화해야 한다.

최원영은 “이런 무대에서 연기해보는 게 처음이다. 무대 폭이 좁아서 외나무다리에 서 있는 것 같다는 기분도 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소화하기 까다로운 작품이라 어려움이 많지만 공연을 잘 끝내고 나면 ‘인간에게 한계는 없구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큰 뿌듯함을 느끼곤 한다”고 덧붙였다.

최원영의 ‘랑데부’ 대본(사진=김현식 기자)
최원영의 ‘랑데부’ 대본(사진=김현식 기자)
최원영이 연극 무대에 오르는 것은 2015년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 출연 이후 9년 만이다. 내달 첫방송하는 SBS 새 드라마 ‘조립식 가족’ 촬영을 끝마칠 때쯤 ‘랑데부’ 대본을 받았다는 그는 “배우로서 정체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던 와중에 운명처럼 이 대본이 저에게 왔다”고 말했다.

“마음속에 늘 연극 무대에 대한 향수가 있었고, 좋은 연극과 뮤지컬 출연 제안을 받기도 했었지만 일정상 맞지 않아서 함께하지 못했어요. 다행히 이번엔 온전히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적 여건이 되는 상황이라 합류 결정을 할 수 있었죠. 오랜만에 무대에 오르는 것이다 보니 두려움도 있었기에 몇 번의 자문을 해보는 과정도 거쳤어요. 그렇게 ‘더 늦어지면 안 되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랑데부’에 가까이 다가가 보기로 했죠.”

최원영이 연기하는 태섭은 과거의 아픈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만의 정해진 법칙에 스스로를 가둬놓고 사는 캐릭터다. 세상을 떠난 단골 중식당 ‘영춘관’ 사장의 딸인 지희를 만나면서 변곡점을 맞게 됐다. 작품은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온 두 남녀가 아픈 과거를 함께 풀어가며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사진=옐로밤)
최원영은 “심플한 작품인 것 같으면서도 참 어렵더라”며 “태섭이 지니고 있는 심연의 트라우마와 지희와의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을 100분 안에 어떻게 관객에게 설득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공연을 준비했다”고 돌아봤다. 이어 그는 “오랜만에 대본 하나를 치열하게 해체해보면서 태섭의 엉뚱함과 재기발랄한 면까지 디테일하게 표현하고자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수영장 한번 못 갔을 정도로 여름 내내 연습에만 몰두하며 작품 준비에 매진했어요. 태섭을 이해한 채로 연습하면서는 다른 배우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죠.”

지난달 24일 개막한 ‘랑데부’는 어느덧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공연은 오는 21일까지. 최원영을 비롯해 박성웅(태섭 역), 문정희·박효주(지희 역)가 작품에 출연 중이다. 최원영은 “공연을 하면 할수록 태섭의 작은 면까지 더 잘 표현해내고 싶다는 욕망이 커진다”면서 “남은 공연에서는 한층 더 여유로워진 모습으로 관객과 함께 태섭의 깊숙한 내면으로 들어가 심연의 여행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예매사이트 평점이 9.5점대를 유지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태섭 역을 노리는 배우들이 많다는 얘기도 들려오고요. 하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관객에게 후회 없는 경험을 만들어드리고 싶어요.”

(사진=옐로밤)
(사진=호두앤뉴엔터테인먼트)
2002년 영화 ‘색즉시공’으로 데뷔한 최원영은 그간 ‘시실리 2km’, ‘오! 문희’, ‘패스트 라이브즈’, ‘선덕여왕’, ‘상속자들’, ‘킬미, 힐미’,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SKY 캐슬’, ‘닥터 프리즈너’, ‘슈룹’, ‘하이라키’ 등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해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랑데부’는 새 소속사 호두앤뉴엔터테인먼트에 둥지를 튼 이후 처음 출연한 작품. 아직 방송을 앞둔 ‘조립식 가족’ 외 차기작은 정하지 않았다. 최원영은 ‘랑데부’를 잘 마무리한 뒤 찬찬히 차기 행보를 정하고 싶다고 밝혔다. 조곤조곤 토크를 나눌 수 있는 형식의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면 출연해보고 싶다며 미소 짓기도.

인터뷰 말미에 최원영은 작품 속 태섭의 숙원사업인 로켓 발사와 같은 목표가 있냐고 묻자 “예전엔 목표를 향해 달려가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게 전부는 아닌 듯싶어서 일희일비하거나 취하지 않고 주어지는 작품과 캐릭터를 책임감 있게 소화해내는 것에 집중하며 활동하고 있다”고 답했다.

끝으로 그는 “이번 작품 출연을 계기로 연기에 임하는 마음가짐과 태도를 다시 한번 재정비해 보고 있기도 하다”면서 “연기가 나를 한번 괴롭게 한 뒤 내뱉은 대사로 누군가에게 위로나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는 작업이라면, 앞으로 좀 더 신중하고 절실한 자세로 그 작업을 잘해내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김현식 (ssik@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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