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태기자의 책에 대한 책] "진실을 알려면 삶이라는 커튼을 찢어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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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가 뛰어나면 생전보다 사후에 그를 추종하는 더 많은 사제(司祭)들이 생겨나는 법이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그의 예술적 사상은 '커튼'이란 제목의 이 책에 자세하다.
그 때문에 인간은 너머보다는 커튼에 적힌 내용을 진실로 착각하며 살아간다.
본성의 한 양상이 소설을 이루고, 그 소설은 삶의 커튼을 찢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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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가 뛰어나면 생전보다 사후에 그를 추종하는 더 많은 사제(司祭)들이 생겨나는 법이다. 밀란 쿤데라가 그런 인물이다. 작년 눈을 감은 쿤데라는 지금 이 순간 더 숭앙받는다.
쿤데라는 많은 글을 썼고 주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농담' '불멸'이 대표작이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그의 예술적 사상은 '커튼'이란 제목의 이 책에 자세하다. 민음사판 '밀란 쿤데라 전집'의 13번째 책이다. '커튼의 은유'를 통해 예술과 인간과 역사의 관계를 단단하게 연결하는 걸작 산문집이다.
쿤데라에게 인간 세계란 거대한 커튼으로 뒤덮인 장소다.
모든 존재의 생멸 앞에 비물질적인 커튼이 걸려 있다. 이 커튼은 '세계 너머'를 보지 못하도록 눈을 가린다. 그 때문에 인간은 너머보다는 커튼에 적힌 내용을 진실로 착각하며 살아간다.
삶의 진실한 모습을 희구하는 자라면 완강한 커튼을 찢어야 한다. 이때 소설은 "커튼을 찢어버리는 역할"을 한다. 책은 그런 점에서 각 권이 훌륭한 한 자루의 '칼'이 된다.
쿤데라는 돈키호테의 패배, 정확하게는 '돈키호테의, 그 어떤 위대함도 없는 패배'를 되짚으며 말한다. 인간의 패배가 소설의 존재 이유가 됨을 감각한다.
"삶이 패배라는 사실은 너무나 명백하다. 패배에 직면한 우리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그 패배를 이해하고자 애쓰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소설이 도구로서의 가치를 지니지 못함을, 또 모든 소설가가 충실히 자신의 역할을 해내지 못한다는 명백한 사실을 쿤데라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책 '커튼'에서 쿤데라는 식상하고 판에 박힌 소설을 내는 소설가에게 경멸과 혐오의 시선을 보낸다. 진부한 소설을 만드는 소설가는 이 세계에서 유해하고 또 무익하다는 것. 물렁물렁하고 미지근한, 심지어 작가 자신에게 '자족적인' 문학은 나무를 향한 범죄가 아니었던가.
그런 소설가는 심지어 성실하기까지 하다. 그건 야망이라는 귀기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라고 쿤데라는 본다. "소설가의 성실함이 그 지나친 야망이라는 고약한 기둥에 묶여 있다는 그것이 바로 소설에게 내려진 저주다."
제 역할을 해내는 소설가는 '인간 본성'을 응시한다. 본성의 한 양상이 소설을 이루고, 그 소설은 삶의 커튼을 찢는다.
커튼이 드리워진 세계, 모든 인간은 '진실의 사생아'로 태어난 건 아닐까.
자신이 진실로부터 대우받지 못하는 커튼 안 포로라는 사실이 책을 읽으며 각성된다. 우리는 소설을 읽어 커튼을 열면서 자신의 기원을 향한 도정을 시작한다. 소설 속 인물을 따르고 사건을 따라가다 보면 피투성이, 만신창이가 될지라도 그것은 꽤 그럴듯한 경험이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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