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렁탕에 날달걀·다진마늘 넣어 먹어 봤어?

이승욱 기자 2024. 9. 13. 14:3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여기 소문나면 곤란한데 인천 중구 ‘중앙옥’
중앙옥 설렁탕. 이승욱기자
관광객을 상대하는 북적이는 ‘TV 맛집’은 사절합니다. 지역의 특색있는 숨은 맛집, 누가 가장 잘 알까요? 한겨레 전국부 기자들이 미식가로 이름난 지역 터줏대감들에게 물었습니다. “어디 가서, 뭘 먹어야 합니까?” 대답을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한두 군데 마지못해 추천하면서 꼭 한마디를 덧붙이네요. “여기, 소문나면 곤란한데.”

지난달 31일 대학교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동기, 후배들과 술자리를 가지고 있었다. 지역 맛집을 소개하는 ‘여기 소문나면 곤란한데’를 써야 하는 순서가 돌아온 것에 대해 하소연하고 있을 때 친구가 박아무개(30)를 가리키며 말했다. “네가 소개해주면 되겠네. 인스타그램에 계속 맛집 올리잖아.”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연재 구독하기)

인천시교육청 남부교육지원청 소속으로 미추홀구의 한 학교 행정실에서 근무하는 박씨에게 시선을 돌렸다. “회사에서 취재비 지원도 되니까 식사비 걱정은 하지 마. 추천만 해줘. 섭외는 내가 다 할게”라며 처량하게 쳐다보는 기자에게 박씨는 “어렵지만 한번 해볼게요”라고 답했다. 박씨의 인스타그램은 친구의 말처럼 음식 사진으로 가득했다. 일식·중식·한식을 가리지 않고 새로 개업한 식당부터 역사가 있는 노포까지 박씨의 인스타그램을 보면 맛집을 정말 잘 찾아다닌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엔 음식 사진과 함께 글 한두줄 덧붙여 게시물을 올렸지만 “작위적이고 허황한 글은 쓰지 않는 것이 좋다”는 지인의 핀잔을 듣고, 지금은 음식 사진만 올린다고 한다. 그런 박씨에게 연락이 다시 온 건 ‘맛집 추천’ 부탁을 한 지 10일 이상 지난 11일이었다. “인천에 맛집은 거의 중구 신포동에 몰려있어요. 중앙옥이라고 설렁탕 잘하는 곳 있는데 거기 어떠세요?”

중앙옥 현판. 이승욱기자

12일 오후 찾은 중앙옥은 인천 개항장 거리 일대인 인천 중구 중앙동3가 4-34에 있다. 다른 부연 설명 없이 상호만 적혀있는 현관 안에서부터 고소한 냄새가 풍겨왔다. 현관 옆에는 2014년부터 올해까지 받은 블루리본 스티커가 길게 붙어있었다. 중앙옥에는 이미 2∼3개 팀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식당 역사 등을 듣기 위해 중앙옥 사장 김현진(50)씨와 대화를 하는 중에도 손님이 끊이지 않아 김씨는 주방과 창고를 여러 차례 오갔다.

중앙옥이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1979년 12월25일이다. 하지만 실제 그 역사는 외할머니가 한국전쟁 중 피난한 경남 진주에서 시작됐다. 먹고 살기 급급했던 시기라 인근 미군기지에서 나오는 뼈 부속물과 고기를 고아서 설렁탕을 팔았던 게 중앙옥의 시작이었단다. 이후 사장님의 모친이 인천으로 이사 온 뒤 인천에서 중앙옥의 역사도 시작됐다.

“일단 설렁탕 3개와 수육 1개 주세요.”

주문한 지 5분 정도가 지나자 설렁탕과 수육이 나왔다. 특이한 것은 설렁탕에 넣어 먹을 수 있도록 날달걀과 다진 마늘이 함께 제공된다. 마늘과 달걀을 넣지 않고 맛본 국물은 보통의 설렁탕처럼 깔끔한 맛이다. 여기에 달걀을 넣으면 설렁탕 맛이 훼손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 박씨가 옆에서 “여기는 날계란 꼭 넣어서 먹어봐야 해요”라며 날달걀을 직접 깨 설렁탕에 넣었다. 의심도 잠시, 다진 마늘까지 넣은 국물에선 고소한 맛이 났다. 다진 마늘의 달큰한 맛과 향이 깔끔함을 어느 정도 유지해 줬다. 수육은 쫀득하면서도 부드러웠다.

“처음 왔을 때는 달걀을 안 넣고 먹었어요. 그때는 다른 설렁탕집과 큰 차이를 못 느꼈는데, 두 번째 왔을 때 달걀을 넣고 먹은 뒤부터 단골이 됐죠.” 끊임없이 숟가락질하는 나를 보곤, 박씨는 ‘그것 보라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 이날 모임에 참여한 인천 중구청 직원 ㄱ(31)씨도 “저도 중구에서 일할 때 점심 먹으러 여기 많이 왔어요. 그만큼 공무원 사회에서 알아주는 맛집이기도 합니다”라고 거들었다.

박아무개(30)가 기자의 설렁탕에 날달걀을 넣고 있다. 이승욱기자

중앙옥이 날달걀과 다진 마늘을 주는 것은 시대상·주변 환경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설렁탕에는 원래 소면이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1960∼70년대 혼분식 장려 운동의 영향으로 식당에서 쌀밥 양을 줄이고 밀가루 음식 비율을 높이면서 소면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영양 불균형을 우려한 사장님의 모친이 고객이 단백질을 보충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날달걀을 제공했다고 한다. 더군다나 중앙옥이 위치한 중구는 내항이 있어 항만, 조선소 등에서 밤일을 하는 노동자가 많은 곳이라, 술을 마시며 밤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달걀로 해장하라는 의미도 있다. 김씨는 “날달걀은 인천에서 중앙옥을 시작하고부터 제공하기 시작했어요. 다진 마늘은 옛날에는 내장 같은 것도 다 같이 끓여서 내놨기 때문에 잡내를 잡기 위해 제공하기 시작했죠”라고 말했다.

중앙옥 메뉴판. 설렁탕은 1만원이다. 이승욱기자

중앙옥이 있는 개항장 거리는 과거에만 해도 인근에 내항과 인천시청이 있어 사람이 모이는 인천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인천 남항, 북항이 생기면서 내항 기능은 축소되고 인천시청도 남동구로 이전하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과거보다 많이 줄었다. 중앙옥도 그 영향을 받았지만 여전히 하루 준비한 설렁탕은 전부 소진할 정도로 식당을 찾는 손님은 꾸준하다. 사장님의 마지막 말에서는 이런 복합적인 감정이 느껴졌다. “하루에 설렁탕 100그릇을 준비하는데, 저녁 8시면 재료가 소진돼요. 손님이 너무 많아져도 설렁탕 양을 더 늘릴 수 없으니, 그것도 문제죠”

이승욱 기자 seugwookl@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