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韓非子), 법치주의의 날개 [말록 홈즈]

2024. 9. 13.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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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렉스 에티몰로지’란 ‘자랑용(flex) 어원풀이(etymology)’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쓰는 말들의 본래 뜻을 찾아, 독자를 ‘지식인싸’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작은 단서들로 큰 사건을 풀어 나가는 셜록 홈즈처럼, 말록 홈즈는 어원 하나하나의 뜻에서 생활 속 궁금증을 해결해 드립니다. 우리는 단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지만, 정작 그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쓰곤 합니다. 고학력과 스마트 기기가 일상화된 시대에, ‘문해력 감소’라는 ‘글 읽는 까막눈 현상’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습니다. 단어는 사물과 현상의 특성을 가장 핵심적으로 축약한 기초개념입니다. 우리는 단어의 뜻을 찾아가면서, 지식의 본질과 핵심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와 학교를 떠난 이들의 지식 인싸력도 레벨업됩니다.
한비자. 출처 나무위키
“법대로 합시다!”(원칙대로!)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폭력적 권력이 원칙을 억누르는 세상)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딨어?”(여깄지~)

‘법’이란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법가사상을 집대성한 한비자(韓非子)입니다. 그는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한(韓)나라 왕 한안의 서자로 태어나, 인간의 품성은 본디 악하다고 주장한 순자(荀子)의 문하에서 배움을 얻었습니다. 강력한 법의 집행을 통치의 기본으로 여긴 법가의 대표인물입니다. 그의 사상과 재능을 존중한 진나라의 정왕(훗날 시황제)은 그를 영입합니다. 체계적이고 강력한 법가사상을 바탕으로, 진은 역사상 최초로 중국을 통일합니다.

우리는 한비자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똑 부러질거란 이미지와 달리, 한비자는 말을 심하게 더듬었습니다. 그래서 알아듣기 편하게 글을 더 잘 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비자의 법가가 엄격한 처벌만을 강조했다고 알려졌지만, 사실 그는 백성들을 심하게 억압하는 데 반대했던 인물입니다. 반면 왕족이나 귀족 같은 특권층에게야말로 법을 엄정하게 집행해야, 올바른 통치가 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권세가들로부터 미움을 받았고, 끝내 모함과 시기 속에 비극적 운명을 맞이하고 맙니다.

한비자란 이름은 독특합니다. 공자, 노자, 장자, 주자처럼 성씨 뒤에 위대한 인물이란 의미의 ‘자(子)’자를 바로 붙이지 않고, 한 비(韓非)라는 풀네임 뒤에 자(子)자가 이어집니다. 먼 훗날 태어난 당나라의 사상가 한유(韓愈)에게, 한자(韓子)가 붙여졌기 때문입니다. 유가의 서열이 법가보다 훨씬 높아 그렇게 됐다네요. 그렇다면 한비자의 본명은 한비(韓非)는 무슨 뜻을 품고 있을까요? 이름이 외자인데, 바로 ‘아닐 비(非)’자입니다. ‘한 아님’? 아이 이름이 ‘아님’이라니! 우리는 아이들의 이름을 지을 때, 훌륭한 뜻과 좋은 어감을 고려합니다. 도대체 무슨 미운 털을 박혔길래, 왕족의 이름에 이런 비극이 벌어진 걸까요?

출처 네이버 한자사전
이유는 간단합니다. 옛날의 ‘비(非)’자가, 다른 뜻으로 쓰였기 때문입니다. 비(非)자는 본래, 새의 날개 모양을 본뜬 상형문자로 날개와 날아오름을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양 날개가 서로 등지고 있는 모양을 보고, ‘대척하다’, ‘아니다’란 뜻으로 변화했습니다. 한비는 ‘한 아님’이 아니라, ‘한 날개’, ‘한 나래’를 의미했습니다. 한비라는 이름처럼, 그의 열정 어린 날갯짓에 법가사상은 힘차게 날아올랐습니다.
출처 네이버 한자사전
‘법 법(法)’자는 ‘물이 흐르듯 자연스런 규칙’을 뜻합니다. 이전에 쓰던 치(廌: 해치수. 뿔 달린 짐승)자가 들어간 ‘법 법(灋)’자는, 옳지 못한 자를 신비로운 beast 해치수가 물에 빠뜨려 벌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신분의 귀천을 넘어 법은 공정하고 정의롭게 집행돼야 한다는 한비자의 신념과 용기에 경의를 표합니다.
출처 etymonline
법을 뜻하는 영단어 ‘law’의 어원 ‘lagu’ 의미는 ‘명령이나 권한에 의해 규정된 규칙’, ‘권리, 법적 특권’입니다. ‘정해진 것’, ‘고정된 것’을 뜻하는 인도유럽조어(Proto Indo European) ‘leigh-’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유럽인들이 ‘정해진 규정’이니 무작정 따르지만은 않았다는 걸, 우리는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프랑스 시민혁명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21세기 한국사회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지켜보며 드는 의문이 있습니다.

- 우리의 법은 과연 누구에게나 정의롭고 공정한가?

- 대다수 평범한 국민의 행복을 위해 만들어졌나? 아니면 소수의 특별한 국민의 행복을 중심으로 위해 만들었나?

- 그 법은 과연 누가 만들고 사용하는가?

- 법률을 전공해서 탄탄한 인맥을 갖추면, 전문적 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가지지 않은 분야마저도 훌륭히 이끌 수 있나?

평범하고 힘없는 국민들도 의지하고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법이 잘 다듬어지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국가와 사회에 믿음이 생기고, 법이 잘 지켜지는 안정되고 희망찬 세상이 만들어집니다.

법률가 출신 파벌 ‘법벌(法閥: 법 법, 가문/패거리 벌)’이나 ‘사시오패스’ 같은 냉소적 단어가 생기지 않도록, 모두가 함께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법의 날개를 펼쳐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처럼, 법치국가 대한민국도 정의롭고 공정하며 꿈이 가득한 나라로 자라나길 소망합니다.

*감수: 안희돈 교수(건국대 영어영문학과). 건국대 다언어다문화연구소 소장. 전 한국언어학회 회장

[필자 소개]

말록 홈즈. 어원 연구가/작가/커뮤니케이터/크리에이터.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22년째 활동 중. 기자들이 손꼽는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커뮤니케이터. 회사와 제품 소개에 멀티랭귀지 어원풀이를 적극적으로 활용. 어원풀이와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융합해, 기업 유튜브 영상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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