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 ‘절규’·천경자 ‘꽃과 병사와 포성’…추석 연휴 꼭 봐야 할 전시들

노형석 기자 2024. 9. 13.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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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주비엔날레 등 전시회 풍성
뭉크의 명작 ‘절규’. 한가람미술관 제공

1892년 어느 날 북유럽 노르웨이 해안을 찾아가 빙하가 깎아낸 피오르 절벽 위를 산책하던 29살 청년 화가는 핏빛으로 물든 석양녘 하늘을 보고 갑자기 공포감을 느끼며 얼어붙어버렸다. ‘검푸른 피오르 위로 홍수와도 같은 불길이 뻗쳐오르는’ 모습에서 ‘자연의 거대하고 무한한 비명을 들었다’고 훗날 일기에 술회한 화가는 그뒤로 노을이 울렁거리는 하늘을 배경으로 양손으로 귀를 막은 채 소름에 겨운 듯 입을 벌린 사람의 모습을 줄기차게 그리게 된다.

불안하고 불온했던 20세기의 시대상을 예고한 그림이며,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복제된 그림으로 꼽히는 노르웨이 출신의 표현주의 사조 거장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명작 ‘절규’를 국내에서 만날 수 있는 전시가 19일까지 열린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절규’를 비롯한 여러 대표 연작들을 선보이고 있는 작가의 첫 한국 회고전 ‘비욘드 더 스크림’(19일까지)은 서울에서 한가위를 맞는 이들의 나들이 전시로 첫손에 꼽을 만한 자리다.

작가 컬렉션의 핵심인 노르웨이 뭉크미술관을 필두로 세계 23개 기관·개인이 소장한 작가의 시기별 유화와 판화, 드로잉 140여점을 대여해 꾸린 큰 전시다. 뭉크보다 더 유명해진 ‘절규’는 유화 원작 대신 종이에 찍은 석판화에 작가가 붓질해 채색한 실험적 방식의 판화(‘핸드 컬러드’)가 1점 나왔다. 전시의 묘미는 ‘절규’보다 ‘마돈나’, ‘병든 아이’, ‘키스’, ‘뱀파이어’ 등 유명한 그의 연작들이 창작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데 있다. 남자를 위험에 빠뜨리는 팜파탈의 상징 ‘마돈나’와 ‘뱀파이어’ 등 다수의 판본이 나온 판화 연작들과 초상화 연작들을 세심하게 살펴보면 죽음에 대한 불안을 모티브로 가지를 쳐나간 작가 특유의 정서적 표현들을 실감할 수 있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절규’를 비롯한 여러 대표 연작들을 선보이고 있는 뭉크의 첫 한국 회고전 ‘비욘드 더 스크림’ 현장. 노형석 기자

사진의 발광 스트로보 기법 등을 연구해 풍경 회화의 빛 묘사에 끌어들이거나 점차 형상이 해체되고 소멸되어가는 후반기의 독특한 추상화 흐름 등도 말년의 자화상 등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앞면에 유화로 그린 ‘난간 옆의 여인’이 있고, 뒷면에는 목탄으로 여인의 퀭한 얼굴(‘목소리’)이 그려진 1891년작 양면화도 흥미로운 감상거리다. 1902년과 1903년 독일 베를린과 라이프치히에서 삶과 사랑, 불안, 죽음이란 인생의 연속성을 담은 뭉크의 그림들을 한데 모아 내보였던 기획전 ‘생의 프리즈’를 퍼즐 복제그림 형식으로 재현한 색다른 관람 공간으로 전시는 마무리된다. ‘절규’란 명작과 표현주의 거장이란 막연한 수사로만 기억되는 뭉크 회화 세계의 단면을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한국화 거장 천경자(1924~2015)가 1970년대 초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국군 전투 현장에 종군화가로 가서 밀림 속 병사와 꽃의 모습을 환각적인 분위기로 그린 숨은 수작 ‘꽃과 병사와 포성’(1972)을 서울시립미술관 본관에 가서 감상하는 것도 좋겠다. 작가 탄생 100돌을 맞아 여성 한국화가 23인의 작품 세계를 엮은 기획전 ‘격변의 시대, 여성 삶 예술’에 나온 화제의 출품작이다. 고미술품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삼국시대 토기들과 중국, 일본의 고대 토기를 추려 전시한 서울 방이동 한성백제박물관의 ‘토기에 담긴 고대 문화’ 특별전이 맞춤하다.

광주시립미술관의 광주 비엔날레 30주년 특별전 ‘시천여민’에 나온 신학철 작가의 1996년 작 유화 ‘한국근대사-금강’의 일부분. 광주비엔날레 제공

지역에서는 격년제 국제미술제인 부산 비엔날레와 광주 비엔날레가 기다린다. 부산 비엔날레는 부산항 근교의 근대 도심을 산책하며 볼 수 있다. ‘어둠에서 보기’를 주제로 초량동의 근현대 가옥 초량재를 배경으로 하는 국내외 작가들의 설치작품들과 용두산공원 밑 부산근대역사관 건물 지하, 을숙도 부산현대미술관 전시장을 돌면서 인류세를 고민한 36개국 작가 78명의 설치, 영상, 회화, 사진들을 두루 볼 수 있다. 프랑스 미술비평가 니콜라 부리오가 ‘판소리’를 주제로 꾸린 광주시 용봉동 광주비엔날레관과 양림동 전시관들 또한 부산 비엔날레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담은 30개국 작가 72명의 전시를 꾸렸다. 비엔날레관 뒤쪽 광주시립미술관에서는 19세기 동학사상을 재조명하는 비엔날레 30주년 특별전 ‘시천여민’이 차려졌다. 민중미술 대가 신학철과 김준권의 1990년대 대작 ‘한국근대사―금강’과 ‘전봉준 초상’, 조각가 구본주의 ‘갑오농민전쟁’ 등 리얼리즘 수작이 다수 나왔다.

청주시립미술관은 고향 출신 작가 2명의 대형 전시회를 마련했다. 맨화폭과 검은 덩어리의 만남으로 이 땅의 현대사와 화가의 내면을 표현해온 추상화 거장 윤형근의 첫 고향 회고전과 대형 벽면에 한글 글자나 이미지들을 집적한 작업으로 알려진 강익중 작가의 개인전 ‘청주 가는 길’이다. 이 밖에 대구미술관은 이집트 출신으로 아랍권을 대표하는 현대미술 대가인 와엘 샤키(와엘 샤우키)의 개인전을 마련했고, 대구간송미술관은 국보 보물 소장품 40여점을 모은 개관전을 열고 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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