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먹으며 사랑받는, 이 시대의 불륜남녀

아이즈 ize 윤준호(칼럼니스트) 2024. 9. 13.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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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윤준호(칼럼니스트)

'굿파트너'서 불륜남으로 원성을 산  배우 지승현이 유튜브 영상에서 대국민 사과 형식으로 뜨거운 화제에 대해 감사인사를 전하고 있다. 사진=SBS 유튜브 영상 캡처  

'불륜 불패'는 이번에도 유효했다. SBS 금토드라마 '굿파트너'가 전국 최고 시청률 17.7%를 기록하면서 고공 행진 중이다. 자극적 설정과 뒷목 잡게 만드는 캐릭터가 난무하는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에 대중은 다시금 열광했다.

흥미로운 건, 과거 불륜 드라마 속 불륜남녀가 대중의 지탄을 받았던 것과는 달리 요즘은 이런 역할을 연기한 배우들이 오히려 각광받는 모양새다. 스타 탄생의 지름길이었던 로맨틱코미디 속 주인공 남녀 못지않게 주목받고 있는 셈이다.

'굿 파트너'에서는 단연 아내인 이혼 전문 변호사 차은경(장나라)을 두고 그의 비사인 최사라(한재이)와 외도하는 김지상(지승현)에게 대중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뻔뻔하게 최사라와 웨딩사진을 찍는 김지상은 "임신했다"는 최사라에게는 "내 애가 맞기는 해?"라며 민낯을 드러내 원성을 샀다. 김지상을 연기한 지승현은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에도 출연해 대중의 관심에 감사함을 표했다.

이런 김지상은 2020년대 최고의 불륜 드라마로 손꼽히는 '부부의 세계'의 이태오(박해준)와 비견된다. 그는 여다경(한소희)과 불륜을 저지르다 아내에게 발각되자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라며 오히려 역정을 내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사빠죄아'는 적반하장을 뜻하는 하나의 유행어가 됐다.

'부부의 세계' 박해준, 사진=JTBC

이에 밀리지 않는 불륜남의 항변은 임성한 작가의 작품인 '결혼작사 이혼작곡'에서 들을 수 있었다. 평소 남다른 아내 사랑을 보여주던 신유신(이태곤)은 불륜 현장이 발각되자 아내를 향해 "내 몸 가지고 내 맘대로 좀 했어"라고 큰소리 친다. 이 기막힌 주장은 시청자들을 더욱 몰입하게 만들었고 이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 16.6%를 기록했다.

이런 뻔뻔한 불륜남 못지않게 불륜녀들의 악행도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통상 처녀인 불륜녀가 유부남인 불륜남과 정을 통하는 식이다. 

불륜녀를 연기해 역대 가장 성공한 배우는 단연 한소희다. 그는 '부부의 세계'에서 여다경 역을 맡아 불륜남의 아내에게 진료를 받으며 임신 사실을 전하는 대범한 모습도 보인다. 숱한 손가락질을 받았지만 이 드라마의 헤로인은 한소희였다. 신인이었던 그는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고 이후 다양한 작품의 주연을 꿰차고 CF퀸에 등극했다.

'부부의 세계' 한소희, 사진=JTBC

2024년을 대표하는 불륜녀는 상반기 방송된 '내 남편과 결혼해줘'의 정수민(송하윤 )이다. 주인공 강지원(박민영) 곁을 맴도는 정수민은 학창시절부터 강지원의 모든 것을 가로채는 것을 넘어 성인이 된 후에도 그의 남편에게 눈독 들인다. 정수민의 악행이 강해질수록 시청률 곡선도 가파르게 치솟았고 그 결과 최고 시청률 12%를 기록했다. 이 작품을 통해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송하윤은 전성기를 맞았다. 하지만 이 직후 학교폭력 논란에 휩싸이며 현재는 활동을 중단한 상태다.

이보다 앞서 불륜녀 연기로 주목받은 배우는 김희애와 김서형이다. 김희애는 김수현 작가의 작품인 '내 남자의 여자'에서 일명 '폭탄 머리' 캐릭터로 강하게 인식된 화영 역을 맡아 180도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그동안 출연작에서 단아함의 상징이었던 그가 불륜녀로 변해 육탄전까지 마다않는 모습을 보며 시청자들은 아연실색했다. 김서형은 '막장극의 대모'라 불리는 김순옥 작가의 출세작인 '아내의 유혹'을 성공으로 이끈 일등주자다. 얼굴에 점 하나 찍고 다른 사람인 양 행동하는 민소희(장서희 분) 못지않게 "민소희!!!!"를 외치며 악다구니하는 불륜녀 신애리를 연기한 김서형은 시청자들의 질타와 사랑을 동시에 받았다.

'내 남자의 여자' 김희애, 사진=SBS

과거 불륜남녀를 연기한 배우는 '인지도는 높일 수 있어도 인기는 끌기 힘들다'는 평을 받았다. 불륜 캐릭터를 맡은 이후 길거리를 가다가 '등짝'을 맞고 음식점에서 "그렇게 살지 말라"는 질타를 받았다는 에피소드가 단골처럼 나왔다. 악역 캐릭터의 이미지로 굳어진다는 의미다.

하지만 시대적 분위기가 바뀌었다. 캐릭터를 캐릭터로만 받아들이는 인식이 강해지며 불륜 연기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배우들에 대한 대중적 호감도가 상승했다. 오히려 그들의 캐릭터를 십분 살린 CF까지 찍으며 각광받는 모양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이런 불륜남녀의 추락을 반긴다. 권선징악의 결말을 원한다는 뜻이다. 이는 일종의 '대리만족'이라 할 수 있다. 간통죄가 폐지된 현실에서는 불륜남녀에게 가할 수 있는 처벌 수위가 낮다. 형사 소송은 불가능하고, 민사 소송을 거쳐도 위자료 2000만 원 정도가 판례상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드라마 속 불륜남녀는 통상 깊이 추락한다. 사회적 매장을 당하거나 목숨을 잃기도 한다. 이렇듯 불륜 드라마의 인과응보는 빤하지만 여전히 대중에게 카타르시르를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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