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살 아이도 순장 흔적···신라 고분의 주인은 ‘10대 소녀’

도재기 기자 2024. 9. 13.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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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문화유산연구원, 경주 ‘황남동 120-2호분’ 조사
10대 왕족·3세 치아 확인…“순장 연구 귀중한 자료”
경주의 신라시대 고분인 ‘황남동 120-2호분’에서 무덤 주인과 3세 안팎 어린아이 순장자의 치아가 각각 확인됐다. 사진은 치아와 유물의 출토 당시 현황. 국가유산청 제공

신라시대 고분인 ‘경주 황남동 120-2호분’에서 무덤 주인인 10대 여성 왕족과 순장된 것으로 보이는 3세 어린아이의 치아가 각각 확인됐다.

신라 고분에서는 그동안 다양한 연령의 순장자가 발굴됐지만 3세의 어린아이 순장자는 처음 확인됐다. 신라를 비롯한 고대 사회의 순장제 연구 등에 귀중한 자료라는 평가다.

순장은 왕·귀족 같은 지배층 권력자가 죽어 매장할 때 신하·노비 등 종속된 사람들을 함께 무덤에 묻는 고대 장례풍습이다. 신라와 가야 고분들에서 자주 확인된다. 순장이 확인된 ‘황남동 120-2호분’은 지난 2020년 발굴조사 당시 금동관, 금동신발, 금귀걸이, 구슬팔찌 등 화려한 장신구를 착장한 10대 여성의 무덤으로 드러나 화제를 모았다.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은 “120-2호분에서 10대 피장자(무덤 주인)와 3세 전후 순장자에 해당하는 두 사람의 치아들을 각각 새로 확인했다”고 13일 밝혔다.

3세 안팎의 어린아이로 확인된 순장자의 치아들. 국가유산청 제공
3세 안팎의 나이로 확인된 순장자의 치아와 목걸이 일부. 국가유산청 제공

무덤 주인의 치아는 2점, 순장자의 치아는 4점이다. 무덤 주인 치아들은 아랫니의 제1~2 대구치(뒷어금니라 부르는 영구치)로, 금동관의 관테의 중앙부와 아랫부분에서 출토됐다. 치아를 분석한 결과, 연령대는 12~15세로 파악됐다.

순장자의 치아들은 금동신발의 아랫부분에서 발견됐다. 아랫니·윗니인 치아들의 분석 결과, 영구치가 이제 겨우 치아머리(치관, 잇몸 밖으로 드러난 치아 부분)가 형성되고 있는 단계로 나타났다.

3세 전후의 아이로 확인된 것이다. 특히 이 치아들은 한 조의 구슬목걸이, 곱은옥(곡옥)과 함께 둥글게 돌아가는 치아열 상태로 출토됐다. 구슬로 된 목걸이를 하고 순장된 것으로 보인다.

신라문화유산연구원 김권일 실장은 “어린아이의 주검은 무덤 주인의 발밑에 안치됐는데, 안치 방향이 무덤 주인과 반대방향”이라며 “주검이 안치된 위치, 유물의 출토 양상 등으로 볼때 순장자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즉, 120-2호분에 12~15세의 공주 등 최고 지배층 젊은 여성을 묻을 때, 그 발밑 아래에 3세 아이를 순장한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다. 김 실장은 “3세 어린아이의 순장은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았다”며 “이번 120-2호분의 발굴조사는 신라나 고대 사회의 순장제도, 순장자의 성격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경주 ‘황남동 120-2호분’의 무덤 주인은 12~15세의 여성으로 공주 등 최고 지배층으로 추정된다. 사진은 무덤 주인의 치아. 국가유산청 제공

발굴단은 120-2호분이 502년 이전에 조성된 무덤으로 본다. 신라는 502년(지증왕 3년)에 순장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에는 지증왕 당시인 502년 ‘춘삼월 왕이 영을 내려 순장을 금지했다. 그 전에는 국왕이 죽으면 남녀 각 다섯 명씩을 순장했는데, 이 때에 이르러 금지한 것이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실제 지증왕 이전에 조성된 무덤인 천마총에서는 5명, 황남대총 남분과 북분에서는 각 10여명, 최근 공주 무덤으로 추정돼 화제를 모은 경주 쪽샘지구의 ‘쪽샘 44호분’에서도 5명 이상의 순장이 확인됐다. 중대형 고분뿐만 아니라 신라시대 작은 무덤들에서도 그 숫자는 적지만 순장이 이뤄진 사실이 밝혀져 있다.

발굴단은 “120-2호분에 순장된 어린 아이는 이제 막 주인의 여종(비녀)가 되기 시작한 신분으로 추정된다”며 “지증왕이 순장을 금지 시킬 무렵의 마지막 순장자일 수도 있다”고 밝혔다.

순장풍습은 전 세계적으로 고대 유적들에서 확인되는데, 국내 가야 고분들에서도 그동안 많이 확인됐다. 금관가야 영역이던 김해 대성동 고분군, 대가야 중심지이던 경북 고령의 지산동 고분군 등에서는 순장자가 적게는 1명, 많게는 수십명에 까지 이르렀다.

대가야의 최고 지배자 무덤으로 추정되는 고령 지산동 44호분에서는 순장자가 40여 명으로 추정됐다. 특히 창녕 송현동 고분군에서는 15~16세 여성 순장자의 인골이 출토돼 이를 바탕으로 순장된 가야 소녀 ‘송현이’라는 이름으로 전신상이 재현되기도 했다.

신라와 가야는 물론 고구려, 백제에서도 순장풍습이 있었던 것으로 학계는 추정하고 있다. 한때 성행한 순장제도는 내세관 같은 가치관이나 장례문화·무덤 양식 등의 변화, 불교의 도입과 확산 등에 따라 6세기 중후반에는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한편 국가유산청과 경주시,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은 오는 19일부터 10월 19일까지 현장 접수를 통해 발굴 현장을 일반에 공개한다(일요일과 우천시 제외).

한 달 동안 매일 4회(오전 10시, 11시, 오후 2시, 3시)에 걸쳐 전문 연구자의 설명을 들으며 출토 유물들도 관람할 수 있다. 26일에는 경주 더케이호텔에서 출토 유물들에 대한 정밀분석 결과를 발표하는 중간성과 보고회도 개최된다.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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