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영풍 분쟁에 MBK 본격 참전…2조 공개매수 '기습 공격'
장형진 "75년 공동경영 여기서 마무리"
MBK, 고려아연·영풍정밀 공개매수 추진
최윤범 경영권 박탈 취지, 백기사 등판 주목
고려아연·영풍의 경영권 분쟁에 국내 최대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MBK파트너스가 뛰어들었다. MBK파트너스의 전격 등판으로 고려아연을 둘러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 장형진 영풍 고문 간 경영권 분쟁이 격화될 조짐이다.
1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MBK파트너스는 전날 "고려아연 최대주주인 영풍과 특수관계인(장씨 일가)과의 주주 간 계약을 통해 고려아연의 최대주주가 돼 MBK파트너스 주도로 의결권을 공동행사하기로 합의했다"며 "영풍 및 특수관계인 소유 지분 일부에 대한 콜옵션을 부여받기로 했다"고 밝혔다.
영풍 측이 보유한 지분은 총 33.4%인데, 이의 절반을 MBK파트너스에 넘기는 것이다.
이로써 MBK파트너스는 영풍과 함께 고려아연의 최대주주로서 역할을 하게 되며, 영풍 및 특수관계인으로부터 고려아연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주주의 역할을 넘겨받게 된다.
장형진 영풍 고문은 "지난 75년 간 2세에까지 이어져온 두 가문 공동경영의 시대가 이제 여기서 마무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며 "3세에까지 지분이 잘게 쪼개지고 승계된 상태에서 그들이 공동경영한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적절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비철금속 1등 제련 기업으로서 고려아연의 글로벌 위상을 더욱 강화시킬 수 있는 MBK파트너스와 같은 기업경영 및 글로벌 투자 전문가에게 지위를 넘기는 것이 창업 일가이자 책임 있는 대주주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영풍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고려아연은 고(故)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세운 회사다. 현재 고려아연은 최씨 일가가, 영풍그룹과 전자 계열사는 장씨 일가가 경영을 담당하고 있다.
지난 2022년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취임 이후 최씨 일가와 영풍그룹 장씨 일가 간 고려아연 지분 매입 경쟁이 벌어지면서 두 회사는 경영권 갈등을 빚어왔다.
MBK·영풍, 고려아연 지분 최대 14.6% 공개매수
MBK파트너스는 영풍과 손잡고 공개매수도 실시한다. MBK파트너스와 고려아연 최대주주 영풍은 13일부터 오는 10월 4일까지 주당 66만원에 고려아연에 대한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를 위한 공개매수를 진행한다고 공시했다.
MBK파트너스의 특수목적법인(SPC) 한국기업투자홀딩스와 영풍은 고려아연 지분 약 7∼14.6%(144만5036주∼302만4881주)를 공개매수한다. 영풍의 매입 주식은 1만주로, 사실상 MBK파트너스의 단독 공개매수다. 투입 금액은 약 2조원이다.
전날 유가증권시장에서 고려아연은 55만6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공개매수가는 공개매수일 이전 3·6개월간의 평균종가에 각각 27.7%와 30.1%의 프리미엄을 적용한 가격이며, 전날 종가보다는 약 18.7% 높다.
공개매수 응모 주식 수가 최소 목표 수량에 미달할 경우 응모 주식 전량을 매수하지 않고, 목표 수량을 만족할 경우 전량을 매수한다. 초과할 경우에는 목표 수량만큼만 안분비례해 매수한다.
영풍정밀 경영권 확보도 추진…고려아연 지분 절반 확보
MBK파트너스는 이와 별도로 SPC를 통해 주요 관계사인 영풍정밀에 대한 공개매수도 동시에 실시한다.
영풍정밀 1주당 2만원에 공개매수를 진행하며, 최소 조건 없이 최대 684만801주(발행주식 총수의 약 43.43%) 범위 내에서 공개매수에 응모한 주식 전량을 매수한다. 영풍과 최씨 일가 지분을 제외한 유통주식 전량이 공개매수 대상이 되는 것이다.
MBK파트너스는 "영풍정밀에 대한 경영권을 확보한 후 기존 경영진과 함께 영풍정밀 본연의 비즈니스에 집중, 투자해 장기 지속 성장을 이끌 방침"이라고 밝혔다.
영풍정밀은 고려아연 지분 1.85%를 보유하고 있다. 현재 최씨 일가가 영풍정밀을 지배하고 있지만, 공개매수에 성공하면 영풍정밀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 1.85%에 대한 의결권도 가져올 수 있다.
공개매수에 성공하면 MBK파트너스와 장씨 일가의 지분율은 기존 33.13%에서 최소 40.13%, 최대 47.73%까지 늘어난다. 자사주 등 의결권이 없는 지분을 제외하면 MBK파트너스와 장씨 일가의 지분율은 최대 52%로 늘어난다.
MBK파트너스는 영풍 및 특수관계인 소유 지분 절반+1주에 대한 콜옵션을 부여받는 방식으로 최대주주로 올라선다. 의결권 있는 고려아연 지분 52%를 확보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경영권을 박탈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MBK파트너스가 영풍 측과 손잡으면서 경영권 분쟁은 새 국면을 맞을 전망이다.
MBK파트너스는 "MBK파트너스와 영풍은 향후 상법상의 절차에 따라 경영 대리인이자 2.2% 주주인 최윤범 회장에 관해 제기된 문제와 의혹들을 검토한 후 모든 주주의 이익 차원에서 필요한 조치를 강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MBK파트너스는 "최 회장에 대해 제기된 의혹과 문제점에 대한 검토는 고려아연 이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이나 경영진들이 회사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그동안 노력해 온 바와는 별개의 사안"이라며 "최씨 가문 일가들을 포함한 모든 주주의 이익을 위해 고려아연의 기업 가치를 증가시킬 것이며 현대차, LG 및 한화와의 사업적 제휴 관계도 더욱 강화하고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영풍, 최윤범 배임 등 의혹 제기 '총공세'
MBK파트너스와 손잡은 영풍은 법적공세에 나섰다. 영풍은 13일 고려아연 회계장부 등의 열람 및 등사 가처분 신청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기했다.
고려아연 경영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MBK파트너스와 함께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에 나서는 한편, 동업정신을 파기한 경영 대리인 최윤범 회장에 대해 제기된 문제점과 의혹들을 면밀히 조사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날 영풍은 “최윤범 회장은 고려아연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래 영풍그룹 공동창업주의 동업정신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기 시작해, 상법 등 관계 법령과 선관주의의무를 위반해 고려아연 주주들의 이익을 해하는 행위를 해왔다고 의심된다”며 “상법 제466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주주권에 기해 회계장부 등 열람 및 등사 가처분 신청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영풍은 고려아연의 회계장부 및 서류 등에 대한 열람 및 등사를 청구하는 이유로 5가지를 꼽았다. 원아시아파트너스가 운용하는 사모펀드 투자 관련 배임 등 의혹, SM엔터테인먼트 주가조작 관여, 이그니오 홀딩스 투자 관련 선관주의의무 위반 , 이사회 결의 없는 지급보증 관련 상법 위반 혐의, 일감 몰아주기 관련 의혹 등을 언급했다.
영풍은 이날 중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고려아연 자사주 취득 가처분 신청도 제기할 예정이다. 고려아연의 최대주주인 영풍이 공개매수를 진행하는 중에 특별관계인인 고려아연이 자기주식을 취득하는 것은 자본시장법 위반과 시세조종 혐의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사실상 방어측의 손발을 묶겠다는 행보로 풀이된다. MBK파트너스와 영풍은 고려아연 경영진과 이사회, 자사주 신탁계약을 맺은 신탁회사 앞으로도 공문을 보내 고려아연의 자사주 취득은 명백한 자본시장법 위반이자 주식시세 조종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고 경고장을 보냈다.
자본시장법 제 140조는 '공개매수자 및 그 특별관계자는 공개매수 기간 동안 공개매수 대상회사의 주식을 공개매수에 의하지 아니한 방법으로 매수하는 것이 금지'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고려아연과 영풍의 특수한 지배구조를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아연은 최윤범 회장 등 최씨 일가가 경영하지만, 영풍그룹 기업집단에 속해 있으며 최씨 일가는 영풍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특별관계자로 묶여 있다.
이로써 영풍의 '특별관계자'인 고려아연의 자기주식 취득은 공개매수 기간인 오늘부터 다음 달 4일까지 막히게 된다.
고려아연 "MBK, 적대적·약탈적 M&A…공개매수 반대"
이에 대해 고려아연은 13일 "(주)영풍이 기업사냥꾼 MBK 파트너스와 결탁해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공개매수"라며 "적대적·약탈적 인수합병(M&A)"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고려아연은 MBK파트너스의 특수목적법인(SPC) 한국기업투자홀딩스가 주당 66만원에 고려아연 상장 유통 주식 최대 302만4881주(지분율 14.6%)를 공개 매수하겠다고 공시한 직후 이에 대한 '반대' 입장을 명시한 의견서를 공시하며 이같이 밝혔다.
고려아연은 "이는 ㈜영풍의 경영에 실패한 장형진이 경영진의 의사에 반해 경영권을 침탈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라며 "본 공개매수는 중장기적인 기업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소액주주를 포함한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심각하게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고려아연은 "MBK파트너스는 국내에서 경쟁력 있는 회사를 인수한 다음 핵심 자산을 매각하거나 과도한 배당금을 수령해 투자금을 회수하는 약탈적 경영을 일삼았다"며 "이러한 사모펀드가 당사의 경영권을 취득하는 경우 이해관계자들에게 막대한 피해가 갈 뿐만 아니라, 투자수익 확보를 위해 전체 주주들과 구성원들의 이익에 반하는 독단적인 경영 전략을 추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이어 “MBK파트너스는 영풍 및 그 특수관계인들의 지분에 대해 콜옵션을 보유하고 있어, 공개 매수자들이 당사 경영권을 인수한 다음 이를 해외 자본에 재매각하는 경우 국가 기간산업 및 2차전지 소재 관련 핵심 기술과 역량이 해외로 유출될 우려가 심대하다”고 덧붙였다.
영풍과 MBK파트너스의 기습적인 공개매수 총공세에 고려아연도 대응책 마련을 부심 중이다. 우호지분 확보가 급선무다.
최씨 일가의 고려아연 지분율은 최윤범 회장 1.8%를 포함해 15.6% 수준이다. 현대차·LG·한화·트라피구라 등 우호 지분은 16.2% 수준으로 약 33.6%를 확보하고 있다. 장씨 일가 가 보유한 33.13% 지분율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에 따라 최씨 측이 백기사를 추가 확보하거나 대항 공개매수 등을 통해 반격을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MBK파트너스가 보도자료를 통해 모든 주주의 이익을 위해 최윤범 회장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현대차, LG, 한화 등과 사업적 제휴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상황에서 이들이 최 회장 측에 백기사로 나설지도 주목된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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