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시세] 대한민국은 지금 '연애 프로그램 공화국'

박정은 기자 2024. 9. 13.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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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한편 청년들의 연애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사진은 ENA 연애프로그램 '나는솔로' 팝업스토어 사진. /사진=박정은 기자
"연애를 안 해도 만족스러운데 굳이 연애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최근 연애하는 청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2022년 인구보건복지협회가 발표한 온라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65.5%는 연애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심지어 29.1%는 연애 경험이 한 번도 없는 모태솔로라고 밝혔다. 2011년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발표한 '교제 경험이 없는 비혼 청년' 13.3%와 비교하면 10여년 사이에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청년들이 연애를 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다양한 추측이 나온다. '남녀갈등의 심화로 연애를 안 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 '출산·결혼·연애에 대해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기피하게 되는 것' 등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다수는 '청년들이 연애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것'이 가장 큰 공감을 받는 분위기다.

이성교제는 인간의 본능 중 하나다. 그럼 연애에 대한 흥미가 사라진 것일까. 청년층의 낮은 연애 비율과는 대조적으로 연애 프로그램에 대한 수요는 늘고 있다. 연애 프로그램의 시작을 알린 '하트시그널'부터 '환승연애' '솔로지옥' '나는 솔로' 등 공개 연애 프로그램들은 흥행을 넘어 계속 진화하고 있다.

연애에 관심 없는 청년들이 연애 프로그램에 빠지는 현상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연애 프로그램이 청년들의 연애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청년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어봤다.


선남선녀가 보여주는 현실감 있는 썸싱 '하트시그널'


'하트시그널'은 일반인 선남선녀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으로 많은 관심을 모았다. 사진은 '하트시그널 4' 출연자 모습. /사진= '채널A' 제공
연애 공화국의 포문을 연 채널A '하트시그널'은 시그널 하우스에서 펼쳐지는 청춘 남녀들의 연애를 관찰하고 분석하며 최종 커플을 예측하는 프로그램이다. 현실적이고 공감 가는 연애 감정을 보여주기 위해 출연자들은 모두 일반인이지만 현실에서 찾기 어려운 선남선녀 비주얼과 높은 스펙을 자랑한다.

'하트시그널 시즌 1'부터 챙겨본 애청자 최모씨(22·대학생)은 '하트시그널'의 가장 큰 재미로 현실감과 비현실감의 조화를 꼽았다. 최씨는 "상황이나 감정이 현실에 있을 법하다"며 "공감은 가지만 출연진의 외모를 보면 비현실감이 들어 연애에 대한 환상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최씨는 기회는 여러 번 있었지만 이성에 관심이 없어 연애 경험은 없는 모태솔로다. 최씨는 '연애에 대한 환상이 생기면 연애를 하고 싶지 않냐?'는 질문을 하자 "'하트시그널'을 보다 보면 썸씽이 있는 상황에서 많이 설레는 거 같다. 하지만 그걸 (선남선녀 출연자가 아니라) 현실에 있는 지인들이 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끔찍하다"라고 답했다.


'환승연애' 극단적인 상황에 놓여있는 전 연인들이 주는 아픈 공감


'환승연애'는 극단적인 상황에 놓여있는 전연인들이 보여주는 가슴 아픈 이야기로 사랑받고 있다. 사진은 '환승연애2' 출연진의 모습. /사진= 'TVING' 제공
티빙 '환승연애'는 다양한 이유로 이별한 커플들이 한 집에 모여 새로운 인연을 찾는 연애 프로그램이다. 감정적으로 극단적인 상황에 처해있는 이들의 모습을 잘 담아 시청자의 과몰입을 불러온다. 전 애인과 나의 친구가 호감을 가지고 만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다소 공감하기 어려운 상황임에도 시청자는 열광한다.

전 애인과 헤어진 지 3년 차에 접어든 오모씨(24·직장인) '환승연애'를 보는 이유로 상황적 공감을 꼽았다. 오씨는 "'환승연애'를 보면 각 커플들이 헤어지게 된 이유라던가 그 후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볼 수 있는데 이 부분에서 많은 공감이 됐던 것 같다"며 "이 프로그램을 보며 만약 나도 (전 애인과) 다시만나서 이야기를 나눈다면 얘기가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밝혔다.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연애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냐는 질문에는 "전 애인에 대한 생각과 반성이 드는 경우가 많다"며 "헤어지고 난 뒤 연애를 오래 쉬었는데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보다는 전 애인과 다시 연애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고 답했다. 하지만 "전 애인과의 재회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거 같다"며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너무 현실적이라 연출 같은 불쾌한 골짜기 '나는 솔로'


'나는 솔로'는 현실적인 출연진 구성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사진은 '나는 솔로' 팝업 스토어의 모습. /사진= 박정은 기자
'나는 솔로'는 결혼을 간절히 원하는 솔로 남녀들이 사랑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극사실주의 연애 프로그램이다. 극사실주의에 초점이 맞춰있다 보니 선남선녀들이 나오는 타 연애 프로그램에 비해 평범한 일반인들이 출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너무 현실적이라 연애에 대한 설렘보다는 '연애 빌런'을 보는 재미로 시청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나는 솔로' 팝업스토어에서 만난 권모씨(22·직장인)는 '나는 솔로' 애청자라며 타 연애 프로그램과의 차별성은 강조했다. 그는 "다른 연애 프로그램들을 보면 더 멋있고 잘난 사람들이 나와 현실감이 많이 없고 각본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며 "하지만 '나는 솔로'는 모두가 평범한 사람들을 보는 거 같아서 그런 의심이 덜 간다"고 밝혔다. 이어 "프로그램 취지가 연애에 간절한 솔로들이 나오는 건데 시청하다 보면 왜 솔로인지 알 거 같아 그 부분도 재미 포인트"라 덧붙였다.

권씨와 함께 팝업스토어에 방문한 김모씨(23·대학생)는 평소 '나는 솔로'를 전체를 챙겨보지는 않지만 유튜브에 올라오는 클립 영상은 꼭 챙겨본다고 전했다. 김씨는 "저는 '환승연애'를 좋아하는데 주인공들의 서사가 중요한 '환승연애'와 달리 '나는 솔로'는 공감성 수치가 오는 행동을 하는 재미로 본다"며 "전체 영상이 아니라 클립으로 봐도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나는 솔로'를 통해 연애관이나 연애하고 싶은 욕구에 변화가 있었냐는 질문에 김양은 "'나는 솔로'를 보면 차라리 연애를 안 하는 게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며 "'나는 솔로'에 나오는 상황 같은 연애를 할 바에는 지금처럼 혼자 있는 게 맞는 거 같다"고 전했다. 이에 권씨도 동조하며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솔로'는 다른 프로그램보다 더 판타지인 거 같다"며 "그런 사람들이 주위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어 "현재 연애 중인데 '나는 솔로'를 보면서 지금 남자친구에게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며 "어찌 보면 청년들의 연애에 대해 좋은 영향을 주는 게 아닐까"라고 덧붙였다.


대리만족으로 연애하는 대한민국, 과포화는 아닐까?


'나는 솔로'를 제외한 대부분의 연애 프로그램은 연애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과 경험을 대리로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실제로 주변 청년들이 연애 프로그램을 통해 일정 부분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연애를 안 하는 청년들이 늘어나는 추세 속에서 이 같은 연애 프로그램의 전성기는 계속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청년들이 각자의 사정으로 연애를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다보니 연애에 대한 대리만족을 느끼기 위해 연애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것"이라 말했다. 포화 상태로 향하는 연애 프로그램들에 대해서는 "실제로 연애 프로그램 시장은 이름을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범람한 상황"이라며 "이미 포화상태인 만큼 더 심화될 것으로 예측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정은 기자 pje4545@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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