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쫌아는기자들] 48시간 낭비하는 법과 10가지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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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입니다. 쫌아는기자들은 ‘적어도 48시간은 본업에서 손 떼고 시간을 낭비하고 오십시오’라고 조언합니다. 72시간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48시간은 정말 자신이 창업자라는 사실도 잊고 시간 낭비하라고. 오늘 레터는 쫌아는기자들이 보내는 숙제입니다. 올해 쫌아는기자들이 만난 인터뷰이 가운데 ‘10명의 10가지 장면’입니다. 한 번씩 곱씹어보는 게 숙제입니다. 알토스 한 킴(김한준), 마인즈AI 의사 석정호, 최예진 워싱턴대 교수, 핏투게더 윤진성, 리브스메드 이정주, 마이리얼트립의 이동건 대표, 샌드박스네트워크 이필성, 정육각 김재연, 가우디오랩 오현오, 핑크퐁 김민석
1. 검머외 꼬리표에 대한 알토스 한 킴(김한준) 대표의 진심
-첫 한국 투자마저 실패였는데 계속 투자를 하셨네요?
”복합적이긴 한데 일단 장병규(크래프톤 창업자 겸 이사회 의장)님이 떠오르네요. 2007년쯤인가 주변에서 둘이 잘 맞을 것 같다며 장병규님을 소개해줬습니다. 사람이 참 좋았습니다. 당시 그분은 ‘첫눈(장병규 의장이 설립한 검색엔진업체로 2006년 네이버 운영사 NHN에 350억원에 매각)’을 막 매각한 뒤라 투자에 관심이 많았고 우리에게 투자를 배우고 싶어했습니다. 저 역시 이 사람에게 배울게 참 많다고 생각해 많은 시간을 함께 했습니다. 당시 장병규님은 집을 하나 마련해서 대학생들 데려와 하고 싶은 개발 맘껏하라며 재워주고 먹여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했습니다. 사재 털어서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는 걸 보면서 이 사람 돈 정말 멋있게 쓴다고 생각했죠. 그런 분이다보니 늘 주변에 좋은 사람과 팀이 따랐습니다. 2008년엔 게임 테라를 만들던 블루홀(크래프톤 전신)에도 투자를 했고, 그분의 소개로 배달의 민족에도 투자를 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분에게 소개 받아 쿠팡에도 투자를 했고요. 어느 순간부터인가 장병규 의장이 내개 한국에 와서 시간을 더 보내고 (국내 IT 스타트업들) 투자 좀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분은 늘 ‘투자해주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며 절 꼬셨죠. 당시 한국의 VC 펀드들은 부품이나 제조업 분야 투자를 잘해서 성공했지, 인터넷이나 모바일은 거들떠보지도 않았거든요. 장 의장님처럼 돈을 번 1세대 창업가가 자기 돈까지 써가면서 유망주들을 지원하는데 그 다음 단계 투자를 해주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는 게 제 투자 계기였습니다. 여러 회사 대표를 만났습니다. 그때 생각했죠. 이곳에 정말 기회가 많고 우리가 투자를 해야겠다고.”
-알토스벤처스가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 어떤 변화를 줬다고 자평하시나요.
”배민의 김봉진 대표는 초기부터 오랜 기간 함께했는데 매출이 몇백억원 넘겼을 때 자기 역할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무슨 소리냐. 당신은 정말 잘하는 사람이고 충분히 더 할 수 있다’고 응원했죠. 실제 보세요. 매출이 1조원을 달성할 때까지 끄덕없었잖아요. 언론 인터뷰에서 말하는 뭐가 될거야 계열의 자신감이 아니라 스스로 뭔가 이룰 수 있다는 현실적인 자신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급하게 달성하려 하지 않고 차근차근 그 꿈을 이룰 수 있게 도움을 주려고 굉장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큰 회사들과 일해봤고 유명한 대표들도 만나봤지만, 한국의 창업가들은 그런 대기업 경영자와 비교해도 전혀 꿇리지 않습니다.
2. [마인즈AI의 석정호] 우울증 막을 세계최초 바이오마커..자살률 1위인 한국에서 도전하는 의사
-잠시 말을 끊겠습니다. 우울증 문제를 푸신다는데, 우울증이란 페인포인트는 얼마나 큰가요?
”우울증 환자가 유병률로 조사하면 우리나라는 전체 인구의 약 5%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근데 그런 환자들 중에서 몇 명이 정신과 치료를 받는지,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조사했더니, 20~25% 정도였습니다. 우리나라가 자살률 1위인 국가인데요. 자살률이 매우 높음에도 불구하고 정신과 치료를 잘 안 받으러 옵니다. 왜 안 받으러 올까. 다들 진짜 내가 정신과 가야 되나 망설이게 되죠. 뼈가 부러지거나, 감기가 걸려서 정형외과나 내과에 가는 것과 달리, 정신과는 쉽게 가질 못하는거죠.”
-자살률을 말씀하셨는데, 자살 위험성 진단이라고 해도 천차만별일 듯 합니다. 사실 누가 당장 내일 자살을 하겠습니까.
”아뇨. 진단 결과, 레드그룹의 사람은 오늘 밤에도 자살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레드 그룹은 본인의 우울증 심각성을 빨리 깨닫고, 바로 치료하시라고 마인즈AI가 빨간불 경고를 날리는 겁니다. 자살은 우발적으로 충동적으로 하는 분들도 있고 술 먹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최진실 씨도 술 먹은 상태에서 목을 맸죠. 자살이라는 게 언제쯤에 일어날지 예측은 어렵습니다. 미리 정신 건강을 스크리닝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최진실 씨가 만약 코티솔 검사를 받았다면, 최악의 상황까지는 안 갔을 수 있다?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는 ‘인구 10만 명당 자살사망자 수’를 뜻하는 자살률이 2021년 26명입니다. 2021년에 자살 사망자 수는 1만3352명입니다. 우리나라가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아요. 굉장히 심각한데도 바깥에선 ‘누가 자살하겠어’하고 말죠. 20~30대 젊은 사람 비중도 꽤 높아요.”
3. 타임지 선정 AI 영향력 100인, 최예진 워싱턴대 교수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라는 AI, AI 윤리 어떻게 할 것인가”
-국제적인 데이터의 공유라, 한국에 대한 데이터가 없어서 AI가 편향될 수 있다는 것인가요?
“예컨대 쌈을 싸 먹는 한국 문화에 대해 ‘손으로 밥을 먹는 짓은 미개하고 비위생적’이라고 AI가 판단하는 오류가 생길 수 있죠. 역사관에 대한 충돌 문제도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어떤 사람이냐 묻는 질문에 ‘테러리스트’라고 답하는 AI가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면 한국이 입을 손해가 얼마나 클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죠.”
-윤리적 측면에서 AI 서비스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요.
”AI 개발이 미국 서해안의 빅테크에 과도하게 쏠려 있습니다다. 지금의 AI 서비스들은 미국, 특히 실리콘밸리의 도덕관이 과도하게 반영돼 있죠. 최근 수년간 실리콘밸리를 휩쓴 ‘효과적 이타주의(effective altruism)’ 사상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효과적 이타주의는 다수의 이익을 달성하기 위해 소수를 희생해도 된다는 전체주의적 성향이 강한 사상으로, 이미 수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어요. 더 큰 선(善)을 위해 작은 악(惡)을 행해도 된다고 판단하는 AI가 인류에 얼마나 큰 위협이 될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4. 핏투게더 윤진성의 투자 빙하기, 그의 성공 비결이 아니라, 버틴 이유
-윤진성 대표님은 현지 스코어, 살아남았으니까. 불편한 진실은 ‘포기 안하고 끝까지 버텨도, 실패하는 스타트업은 실패한다’는 겁니다. 똑같은 상황에서 진짜 끝까지 버텼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폐업으로 간다면, 창업가 개인이 삶에서 감당할 데미지는 어마어마하게 커지거든요. 남은 인생 전부가 걸릴지도 모르는.”네. 제가 아직 장가도 안 갔고, 그래서 자기 생각만 하고, 아직은 그랬던 것 같기는 한데, 고민해 볼 문제인 것 같아요. 주변에 교류하는 다른 창업자분들과도 이런 얘기들을 하게 돼요. 창업자들끼리는 사실 회사가 망가지면 빨리 폐업하고 다시 창업하는 게 낫지 않냐라는 말도 합니다.”
“어차피 지분 구조가 다 망가져 있고, 새로 돈을 받고 다시 성장할 수 있는 포텐셜도 없고, 회사에 사람이라도 있어야지 뭘 할텐데, 그 마저도 없으면, 끈질기게 버텨서 무엇을 할 수 있겠냐라는 거죠. 아직 저도 그런 상황까지는 당면해보지 못해서, 감히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그 상황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인지 공감하기 때문에 무엇이 옳고 그르냐는 판단을 하기엔 경험이 부족한 것 같아요.
-적어도 포기하는 창업가한테 돌을 던질 수는 없다는 동의하는 거네요. 반대로 창업가 입장에서 ‘좋은 VC, 투자자’는 어떤 곳일까요?
“오히려 치고받고 싸워주는 VC가 좋은 것 같아요. 핏투게더가 라운드를 여러 번 해서 기관 투자자가 많아요. 한 10개 정도 돼요. 아예 도움도 안 주시지만 핀잔도 안 하시는, 그런 하우스들도 있어요. 반대로 예전엔 많이 싸우다가 요새는 엄청 편을 들어주시는 VC들도 있거든요. 솔직히 엄청 관심을 갖고 주는 VC의 의견을 창업가가 다 받을 수도 없잖아요. 몇 년 전에 이 질문을 받았다면 ‘내가 주장하는대로, 다 그렇게 하라고 해주는 VC가 제일 좋다’ 이렇게 답변을 드렸을 텐데요. (투자 혹한기를 견뎌보니) 그것만은 답은 아닌 것 같아요.”
-창업가의 뜻을 항상 존중해주는 VC가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어쨌든 저질러놨을 때 책임을 지는건 창업자가 더 크게 데미지가 오는데, 그때 한 번 더 고민할 수 있게 같이 치열하게 논의해주는 과정들. 전에는 되게 싫었는데, 3년 전에 저한테 물어보셨으면, ‘이런 하우스는 진짜 안 좋아’ 이렇게 얘기했을 텐데, 돌이켜보면 그렇게 치고받고 싸우면서 나중에는 이렇게 힘을 같이 보태주는 VC들이 정말 지금은 좋은 VC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VC 입장에서도 그게 에너지잖아요. 이 회사를 꼼꼼하게 파악하고 시장을 파악하고 서치도 하고 주변 정황도 보고, 그리곤 스타트업 창업자에게 피드백들을 주는건데, 애초에 뎁스가 낮으면 VC가 창업자와 디스커션 자체가 안 됐을 거고요. 디스커션을 할 수 있는 VC는 회사 대표 입장에서는 공짜 리서치 인력이에요.”
5. [리브스메드의 이정주] 기업가치 8000억원 스타트업? “팬데믹땐 칼을 쓴 수형자였다”
-팬데믹이 지난 지금에야 이렇게 쉽게 말하지만, 막 닥쳤을 당시는 어땠나요?
”감옥에 갇힌 듯한 느낌이었죠. ‘코로나 끝나기 전에는 머리를 자르지 않겠다’고 결심했죠. 결국 머리가 어디까지 왔냐면, 여기 배꼽 근처까지.”
-칼을 쓴 수형자라는 표현도 썼던데.
“작년 초 국내에서 실내 마스크 해지가 발표가 났을 때, 코로나가 끝났다고 머리를 잘랐죠. 인생에서 3년 동안 머리를 길러본 유일한 시간이었죠. 당시 머리를 묶고 다녔는데 길을 가면 사람들이 막 다 비켜줄 정도였죠. 몰골이 말이 아니었죠. 심정은, 사극에서 칼을 쓰잖아요, 칼을 쓰고 머리를 늘어뜨린 수형자, 바로 그런 느낌이었죠.”
-팬데믹과 투자 혹한기를 모두 건너왔잖아요. 살아남은 이유를 스스로 평가하면.
”인내의 과정이 아닐까? 사실 리브스메드는 한 8년을 고생하고, (신제품 개발 성공해) 축포를 터뜨릴 시점이라고 생각했는데 더 큰 시련이 왔어요. ‘나한테 왜 이럴까’, 심적으로도 큰 고통이었죠. 다시 도전하자고 짐을 꾸릴 때 참 참담했어요. 그럴때 창업할 때보다 더 힘든 목표를 세우고 달려가보자라는 마음을 먹었는데, 그건 결국은 인내와 인내, 그리고 인내 아닐까요.”
6. [마이리얼트립의 이동건 대표] “3년만 버티자”로 12년, 팬데믹과 혹한기에도 살아남다
-그럼 마이리얼트립의 최대 경쟁자는 누구인가요?
”네이버와 구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부킹닷컴 같은 곳도 똑같은 고민일 겁니다. 여행은 기본적으로 빈도 수가 높지 않은 고관여 의사결정입니다. 이럴 때 가장 어울리는 맥락은 검색입니다. 테무나 알리 같은 곳에서 몇천원짜리 살 때는 굳이 다른 판매처를 검색해서 비교하지 않지만 800만원짜리 여행은 그럴 수 없습니다. 연차를 쓰니 날짜도 잘 계산해야 하고 검색과 계획이 중요합니다”
“보통 이럴 때는 개별 앱이 아닌 구글과 네이버를 먼저 검색하죠. 심지어 구글은 굉장히 중립적인 척하지만 사실상 여행 OTA(온라인 여행사)나 마찬가지입니다. 구글 맵에서 호텔을 검색하면 예약이 가능합니다. 부킹닷컴이나 다를 바 없죠. 구글 맵에서 디즈니랜드 검색하면 예약됩니다. 그리고 네이버도 비슷한 플레이를 하고 있죠. 저희 입장에선 사람들이 곧장 마이리얼트립 들어와서 런던을 검색했으면 하는데, 사람들은 이미 구글과 네이버에서 런던을 친 뒤 들어오죠. 저희 입장에선 검색 광고 비용 등 그들에게 통행세처럼 지불하는 비용이 엄청납니다.”
“큰 숙제입니다. 경쟁이지만 여행자들이 구글과 네이버를 안 가게 하기는 힘듭니다. 거기에 좋은 정보가 많기 때문이죠. 저희는 그래서 어떻게든 사람들이 마이리얼트립을 병행해서 이용할 이유를 한두개라도 더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요즘은 마이리얼트립을 계속 쓰게 만들게 하기 위해 작년 가을쯤 ‘동행 찾기’ 기능도 추가했죠. ‘유랑(유럽 배낭여행 인터넷 카페)’에 있던 거긴 한데, 우리가 여행 동료를 더 잘 찾아주자 하는 식으로 만들었습니다. 전화번호 인증 등으로 신원인증을 추가해서 동행에 대한 불안감을 낮췄죠. 반응은 좋은 편이에요. 지금 마이리얼트립 커뮤니티 글의 50% 정도는 동행 찾기입니다.”
7. [샌드박스네트워크의 이필성] 구조조정 후 1년만에 분기 흑자전환 성공.. 이필성이 보는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의 미래
-구조조정을 결정한 창업자이자 대표로, 개인적으로 가장 힘든일이 무엇인가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후회가 시작됩니다. 후회는 할수록 잘못 결정했던 순간들이 더 선명해져요. ‘왜 그 사람을 그때 뽑았지’, ‘왜 내가 그 조직을 방치했지’, ‘왜 이 사업을 하자 했지’ 온갖 후회가 밀려옵니다. 분명 당시엔 트렌드가 그랬고, 그 판단이 맞다고 생각했는데도요.”
“빨리 과거에서 배우고 미래로 가라지만, 계속 과거나 생각나고 후회를 하죠. 저에겐 약간의 완벽주의가 있는데요. 창업자, 대표들을 자세히 보면 대부분 완벽주의를 지향하려고 합니다. 재무도 잘하고, 영업도 잘하고, 투자도 잘 받고, 인격도 좋고, 추진력도 좋은. 전인적, 초인적 존재를 기대하고 그렇게 되려고 합니다. 완벽한 존재가 아니면 나는 인정받고, 사랑받고, 성공할 자격이 없어.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요즘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래도 이 아이디어 갖고 창업해서 여기까지 온 것도 잘했다’고요. ‘예전에 좀 실수를 했지만 그래도 넌 성공할 자격이 있다’고요. 그러니까, 창업자들에게 좀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너무 자신에게 가혹한 태도를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고요. 자꾸 뒤를 보고, 길게 미래를 보니까 더 이런 생각에 빠집니다. 그냥 오늘 하루를 잘 살았으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하는 날도 필요해요.”
-어느 스타트업이 결국 구조조정을 하고 생존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해봤던 창업자로서, 이 어려운 선택을 해야하는 다른 창업자에게 조언을 해준다면요.
“구조조정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는 상대방의 미성숙한 반응이나 감정적인 리액션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게 됩니다. 하지만 대부분 조직 구성원들은 성숙한 어른이기에, 솔직하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설명하고 합리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더라고요. 포장하거나 절충할 필요 없이, 우리가 처한 상황과 불가피하게 그런 선택을 해야 하는 이유를 이성적으로 잘 전달하는 거죠. 그 과정에서 일부 감정적인 반응이 나올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나의 잘못은 아닙니다.”
“좋아하는 심리학자 아들러의 말을 인용하면, ‘내가 충분히 합리적으로 행동했는데 상대방이 감정적으로 반응한다면 그 감정을 해결하는 것은 상대방의 과제’라는 거예요. 예를 들어 청소 도우미를 해고할 때, 그 분이 느낄 괴로움에 공감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정당한 계약 관계 하에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다면 그로 인해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죠.”
“구성원들을 대할 때도 일어나지 않은 상황이나 상대방의 감정에 미리부터 두려워하거나 괴로워할 필요는 없어요. 할 수 있는 건 오직 나 자신이 합리적으로 처신하는 것뿐입니다. 물론 조직의 상황이나 구성원들의 성향에 따라 세부적인 방식의 차이는 있겠지만요.”
8. [정육각의 김재연] 스타트업의 대기업 계열사 인수, 고래를 소화하기 시작한 새우는 어떻게?
-스타트업의 DNA가 반드시 옳지도 않습니다. 스타트업 DNA의 문제도 있죠.
“투자자들 중에선 VC도 있고, PE도 있습니다. 양쪽의 이야기를 듣는데, 스타트업은 대부분 미션 중심과 목적 중심으로 조직을 짜고 움직여요. 그래서 바텀업(Bottom-up)으로 ‘무얼 하겠다’는 걸 갖고 조립해서 성과를 내는 구조로 일을 합니다. 반대로 PE에서는 회사를 인수해 운영을 하기 때문에, 톱다운으로 KPI를 찍어 내리고, 이 KPI를 달성하는 방향으로 조직을 운영합니다.”
“정육각을 비롯해 유동성이 풍부하던 시기 스타트업들의 잘못된 버릇이자 습관인데요. 산출물과 성과가 다른 오류를 쉽게 범합니다. 만약 새로운 닭볶음탕을 PB 상품으로 냈다고 가정해볼게요. 스타트업에서는 이런 콘셉트의 닭볶음탕을 내자고 목표를 잡고, 미친 듯이 열심히 해서 좋은 제품을 만들어 출시합니다. 그런데 이 제품이 얼마의 매출과 이익을 내서 재무제표에 반영될 것인지는 세세하게 쪼개서 보지 않아요. 제품 개발, 마케팅, 각자의 조직이 성과를 낸다는 목적을 갖고 ‘우리의 노력이 조립이 되면 성장이 된다’는 관점으로 일을 합니다. 결론적으로 회사에 이익이 됐나요? 아닌 제품이 수두룩합니다.”
“반면 스타트업들이 ‘개인의 창의성을 무시한다’는 대기업식, 톱다운 운영은 ‘올해 PB 상품 매출 10억을 달성한다. 제품은 상관없고, 개당 평균 이익 2억을 목표. 만약 개당 2억 달성이 어렵다면, 상품을 쪼개서 각 상품당 2000만원이라도 이익을 달성할 것’이라는 식으로 목표가 내려옵니다. 목표가 다르지만, 반드시 이 목표를 이루려고 합니다. 이익 성과는 이 방식이 훨씬 나아요. 유동성이 풍부한 시기, 스타트업들이 자신의 성장을 말해주는 지표로 MAU를 말했습니다. 이제 그 방식이 통하지 않아요. 결국 매출과 이익입니다. 과거 정육각을 운영했던 방식에 대해 후회했던 부분도 있습니다.”
“이렇게 찍어 누르는 방식은 일의 목표가 명쾌하긴 합니다. 단 구성원들이 진취적이고, 속도감 있게 일한다고 보긴 어렵죠. 개인의 발전 속도에 제약이 걸립니다. 특히 스타트업의 빠른 성장은 구성원들의 빠른 성장, 러닝 커브에도 의존합니다. 결국 초록마을과 정육각 DNA의 장점을 융합할 수밖에 없고요. 어느 쪽이 맞다, 옳다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를 객관화하는 것이죠. 초록마을 인사에선 개인의 성취 욕구를 자극하는 방향을 고민하고, 정육각은 운영 효율화를 고민합니다.
9. [가우디오랩의 오현오 대표] 딥테크의 외로운 머니타이제이션, “작은 연못, 큰 물고기 전략”
-지금까지 몇 개의 사업 아이템을 접었나요?
“과거 VR 오디오 기술까지 포함하면… 지금까지 6개가 넘는 사업 아이템을 접거나 사실상 사업화에 실패했다고 봅니다.”
“가우디오랩은 이 산이 아니라면, 하산을 하고 새로운 산을 가야하는 컨센서스를 확실하게 모읍니다. 그래야 어떤 결정 이후 조직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어요. 모두가 동의를 한 것이니까요. 하산과 새로운 산을 결정하는 회의는 구성원 전원이 참석할 수 있습니다. 임원 참석으로 제한된 것도 아니고요. 토론 시간, 틀도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누구나 아이디어를 갖고 온 사람과 토론을 벌일 수 있어요.”
“제가 생각했던 새로운 사업 아이템이 직원들에게 저지당한 적도 있고요. 특히 열심히 개발한 기술이나 서비스를 접어야 하는 경우의 토론이 더 치열합니다. 밖에서 들으면 싸움 났다고 생각할 정도로 언성이 높아진 경우도 있고요, 결론을 못 내려서 몇 개월 동안 계속 회의가 열린 적도 있어요. 증명한 자료, 기술을 갖고 오라고 여럿이 요구한 적도 있고요. 이 회의에서 출시도 못하고 접힌 사업 모델도 여럿입니다. 물론 어떤 서비스는 2년 동안의 디베이트 끝에 출시가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10. [핑크퐁의 김민석] “5000개 댓글보다, 티켓을 든 50명이 훨씬 무섭다”
-앞으로도 캐시카우는 디지털이지만, 몰입감은 오프라인이 낫다는 얘기신가요?
”TV로 미키마우스를 100번 봐도, 디즈니랜드에서 오프라인으로 실제 인형들이 춤을 추는 공연을 경험하면, 다르거든요. 그런 경험은 내가 아니라,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같이 소리 질러주는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나만 좋아하는 줄 알았더니 너도 좋아하는구나, 내가 마음 놓고 좋아해도 되겠네라는. 캐릭터가 일종의 검증된 대상이 되는거죠.”
-캐릭터가 검증의 대상이 된다? 어떤 의미인가요?
”집단의 동조죠. 굉장히 캐릭터에 몰입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오프라인에 욕심을 조금 더 내고 있어요. 처음 이걸 느낀건, 유아교육전에 처음 나갔을 때였어요. 핑크퐁이 앱·유튜브에서 분명히 좋은 매출과 수익을 내고 있는데, 생각보다 세상은 조용했어요. 핑크퐁은 유아교육전에서 사운드북이나 인형들을 처음으로 팔기 시작했고, 엄청나게 인파를 줄을 서고 난리가 났었거든요.”
-집단의 동조? 이게 캐릭터 비즈니스의 핵심?
”저도 현장에서 진짜 열심히 포장했어요. 계속 들려요, 소비자의 소리가. ‘이렇게 인기가 있는 거였어’라고 자기들끼리 하는 얘기가요. 나만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너도 핑크퐁 알았어라는 거죠. 이 임팩트가 굉장히 컸다고 생각해요. 나만 매일 보고 있었고,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내 친구들이 다 그러더라라는 걸, 다들 안 거죠. 여기에 그 광경을 본, 방송국 PD라든가 무슨 공연 관계자든지, ‘이걸 해도 되겠네’ 하는거죠.”
-온라인의 소비자에게 오프라인으로 ‘네가 이걸 좋아한다’는 각인을 시켜준다?
”스타필드 같은 몰에서 핑크퐁이 일종의 무료 공연을 해요. 소비자들은 티케팅을 하지 않아요. 하지만, 1, 2, 3층 다 빽빽하게 사람들이 수백 명, 수천 명이 모여요. 그런 사진들이 있어요. 저희가 봐도, 그 사진 임팩트 있어요. (온라인) 1억뷰보다, 500명의 운집에 대해 사람들이 느끼는 임팩트가 더 커요.”
“댓글 5000개 보다, 티켓을 든 50 명이 줄 선게 훨씬 무섭죠. 핑크퐁도 오프라인 사업에 힘을 줍니다. 극장판은 벌써 네 번째 영화예요. 팝업 테마파크도 계속 열고 있어요. 다른 나라에 먼저 열고 있어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홍콩 등 다른 나라에서 테스트하고 있어요. 테스트 데이터가 쌓이면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계속 실험 중이고 다행히 잘 되고 있어요.”
-방금, 그 코멘트 ‘댓글 5000개보다 티켓을 든 50명이 훨씬 무섭다’라는건, 어떤 의미일까요?
”소비자들에게 ‘내가 이걸 좋아한다’는걸, 인식시켜줘야 해요. 온라인으로 보면서, 분명 이걸 좋아하고 있는데 소비자는 잘 몰라요. 그런데 ‘네가 이거 좋아하는 거야’ 라는 걸, 깨우쳐주려면 방법은? 무료공연을 보는 것보다, 1만 원, 3만 원 주고 티켓팅해서 공연 한번 보러갔다오면, 그 공연이 좋았는지 여부를 떠나, ‘내가 거기다 그 돈을 썼어. 나는 이거 좋아하는 사람이야’라는 인식이 생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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