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텔레그램? 언젠간 잡힌다…"그들의 실수를 놓치지 않을 것"

박서경 기자 2024. 9. 13.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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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빈 검거 수사팀장 인터뷰로 짚어본 텔레그램 수사의 현 주소

● "못 잡는다, 잡히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고등학생이었던 A양은 자신을 상대로 한 일명 ‘지인 능욕 텔레그램방’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습니다. 해당 방에는 190명 넘는 사람들이 참여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들이 A양의 일상 사진을 두고 성폭행 방법을 투표하고 있다는 익명의 제보를 받은 것입니다. A양은 즉시 관할 경찰서에 신고했고, 어머니는 경찰 민원 대표 번호 182를 통해 사이버수사대와 상담을 했습니다. 경찰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당시 어머니와 경찰 간 통화 녹취록에 따르면 경찰은 "텔레그램에 요청하는 것은 힘들다", "그래서 가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지를 묻는 것이다", "일상적인 사진이 퍼지는 거라면, 이상한 사진은 아니지 않느냐"라고 말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이러한 일부 경찰의 미흡한 대처를 다 알고 있다는 듯, 텔레그램을 이용한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들은 "절대 나를 못 잡는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SBS 취재진은 자신을 '지인 능욕방 운영자'라고 주장하는 한 텔레그램 이용자와 연락이 닿았는데, 그는 인천에 사는 25살 대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반성의 기색 없이 "예쁜 몸을 만들어줬으니 본인들도 좋아했을 것"이라고 궤변을 늘어놨습니다. 그러면서 "잡힐 걱정은 없다. 잡아보라"며 수사기관을 조롱했습니다.

의문이 들었습니다. 정말로 텔레그램을 이용한 디지털 성범죄는 잡을 수 없는 걸까요?

텔레그램 성범죄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 '박사방'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해당 사건의 주범 조주빈은 2020년 3월 16일, 인천 미추홀구 자택에서 체포됐습니다. 텔레그램 방에서 "내가 있는 국가는 수사가 안 된다"고 자신한 지 불과 2주 만의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조주빈과 그의 공범들은 어떻게 검거될 수 있었을까요.

당시 수사팀장이었던 유나겸 현 제주경찰청 사이버수사대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조주빈 검거 과정부터 딥페이크 범죄에 맞선 대응까지, 수사 현장에서의 고민과 성과를 들어봤습니다.

● '박사방' 조주빈도 잡혔다


유 대장은 박사방 사건 당시 텔레그램이라는 플랫폼에 대한 대응 방법이 거의 없었던 상황에서 수사를 맡았습니다. 텔레그램이 수사에 협조하지 않을 거라는 점을 예상하지 못했고, 미국 국토안보수사국(HSI)과의 국제 공조로 협조를 얻으려 했지만 성과가 없었습니다. 텔레그램이 미국 수사기관과도 협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검거의 주된 단서 중 하나는 조주빈이 자신도 모르게 남겼던 여러 흔적들이었습니다. 유 대장은 이 부분을 추적하는 데 방점을 뒀습니다. 가령, 입장료를 입금하라며 남긴 가상화폐 지갑 주소는 중요한 단서였습니다. 조주빈은 여러 사람을 통해 가상화폐로 범죄 수익을 현금화 했으며, 경찰은 이 자금 흐름을 추적해 서서히 조주빈의 공범들부터 차례로 검거하기 시작했습니다.

공범들의 진술과 조주빈이 남긴 닉네임 등 디지털 흔적들을 비교 분석했고, 유사한 다른 사건이나 텔레그램 대화에서도 유의미한 정보를 확보해 결국 신상을 파악해 검거에 성공했습니다. 유 대장은 SBS와 인터뷰에서 "텔레그램처럼 협조가 어려운 메신저를 이용하는 범죄자도 충분히 검거할 수 있다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습니다.

수사 과정에서 보완해야 할 점도 발견됐습니다. 당시 경찰은 위장수사를 시도했지만, 조주빈은 경찰이 아닌 것을 증명하라며 추가적인 아동 성착취물 유포를 요구해 수사에 혼선을 주었습니다. 유 대장은 "위장수사에 대한 법적 가이드라인이 없던 상황에서 큰 딜레마에 빠졌다"고 회상했습니다. 수사관이 오히려 위험에 빠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위장수사만으로는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 위장수사 개선의 필요성

위장수사제도는 2021년 9월부터 시행됐습니다. 이에 따라 경찰관은 신분을 밝히지 않고도 수사할 수 있습니다.
신분비공개수사
(청소년성보호법 제25조의2 ①)
신분위장수사
(청소년성보호법 제25조의2 ②)
신분 비공개  
위장 행위 
상급경찰관서 수사부서장 사전 승인
검사 청구 + 법원 허가
3개월 제한 
법원 허가
(긴급 시 사후 48시간 이내 법원 허가)
3개월 제한 (연장 시 최대 1년)
아동 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에만 적용
범의 유발형 함정 수사는 허용되지 않음

유 대장은 해당 제도 도입으로 수사의 안정성이 강화됐지만, 여전히 몇 가지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 위장수사 적용 범위 확대 필요
현재 위장수사는 미성년자 피해자에 대해서만 적용됩니다. 하지만 성인 여성의 고통도 상당하므로, 위장수사 적용 범위를 성인 피해자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 긴급 상황에서의 신속 대응 부족
조주빈 사건 당시 6개월 동안 텔레그램 방이 38개나 생성되고 폐쇄되었습니다. 주말이나 야간에 가해자와 접촉이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사전 승인을 받기가 어려워 신속한 대응이 불가능했습니다. 유 대장은 사후 승인 제도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비공개 수사 기간의 제약  
서울대 디지털 성범죄 사건에서 잠입 추적을 했던 민간단체 ‘추적단 불꽃’은 가해자와 신뢰를 형성하는 데 2년이 걸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행법에서는 신분 비공개 수사의 기간이 3개월로 제한돼 있습니다. 유 대장은 "이런 제한은 수사의 연속성을 방해한다"며 수사 기간 연장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다만 위장수사 남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위장수사 기록을 상급 기관에 보고해 적법성을 검토하는 방안이나 외부 감독 장치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 "딥페이크, 끝까지 추적합니다"

딥페이크 기술이 발전하며 수사망을 피하려는 범죄 수법도 진화하고 있습니다. 유 대장은 2019년에도 연예인 얼굴을 음란물에 합성한 영상들이 있었지만, 당시에는 합성임을 쉽게 구분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딥페이크 기술은 너무 정교해져 피해자조차 자신을 의심할 정도로 발전했습니다.

과거에는 피해자가 "이건 나 아니야"라고 대응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피해자의 개인정보까지 온라인에 무분별하게 유포되면서 피해자들은 2차 피해 앞에 속수무책인 상황입니다. 이러한 딥페이크 범죄의 2차 피해 문제는 심각합니다. 피해자들은 온라인 공간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을 지도 모릅니다. 유 대장은 "이 범죄는 단순한 디지털 범죄가 아니라 인격 살인에 해당하는 중대한 범죄"라며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경찰도 새로운 유형의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수사 기법을 개발하고 있다고 합니다. 유 대장은 "초기에는 디지털 성범죄가 너무 새로워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지금은 경찰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범죄자를 추적하고 있으며 성과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피해자 보호 차원에서 모든 정보를 알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습니다.

유 대장은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피해자가 범죄를 인지했을 때 경찰에 즉각 신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범죄 초기 단계에서 경찰이 신속하게 개입하면 더 많은 증거를 확보할 수 있고 추가 범행을 막을 수 있다"고 부연했습니다. 수사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초기에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유나겸 대장은 "결국 조주빈도 실수를 남겨 수사망을 좁혀갈 수 있었다"고 회상하며, "사람은 완벽할 수 없고, 가해자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들의 실수를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결의를 다졌습니다.

박서경 기자 psk@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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