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미규명 진실] ⑥ '교통 통제 실패' 그리고 놓쳐버린 골든타임

홍주환 2024. 9. 1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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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29일 밤 10시 15분, 서울 이태원에서 압사 참사가 발생했다. 시민 158명이 거리 위에서 사망하고, 334명이 부상당했다. 참사 트라우마로 10대 생존자 1명도 목숨을 끊었다. 그로부터 약 1년 10개월이 흘렀다. 아직까지 이태원 참사가 '왜' 발생했는지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현재 이태원 참사의 원인은 파편적으로만 드러났다. 참사 직후 한 달여 간 진행된 국회 국정조사는 참사의 일부분만 다뤘다. 일부 공무원에 대한 수사가 있었고 재판이 진행 중이지만, 책임자들의 '개인적·형사적 책임'을 입증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참사를 일으킨 우리 사회의 여러 구조적 요인을 규명하기는 역부족이다. 

지난 5월 2일, '10·29 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법'(이태원특별법)이 통과됐다. 이 법에 따라 곧 독립적 조사기구인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구성된다. 특조위는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각 기관의 관행과 책임, 구조적 한계, 시스템과 법령의 부재 등을 총체적으로 조사한다. 참사가 발생한 지 551일 만에야 이태원 참사 전반에 대한 진상규명 기회가 열린 것이다. 

그렇다면 특조위가 반드시 조사해야 할 진상규명 과제들은 무엇일까. 뉴스타파와 독립언론 '코트워치'는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국회 국정조사 기록과 책임자들의 형사재판 기록, 별도 입수한 정부 문건 등을 분석해 특조위에서 반드시 다뤄야 할 진상규명 과제들을 추출했다. 그 과제들을 연재기사로 제시한다. <편집자 주>

[이태원 참사 미규명 진실]
① 그날 경찰은 왜 기동대를 배치하지 않았나  
② 대통령실 이전은 경찰 대처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③ 대통령실 이전은 용산구청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④ 경찰, 수뇌부 방침 때문에 '안전유지업무' 회피했나 
⑤ 출동 안 하고 "출동했다" 보고... 112신고 기록은 왜 조작됐나
⑥ '교통 통제 실패' 그리고 놓쳐버린 골든타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태원 참사' 발생 후 약 1시간 뒤인 2022년 10월 29일 밤 11시 20분 처음 사태를 인지했다. 재난·참사 대응 주무장관이지만 대통령(11시 1분)보다 상황 파악이 늦었다. 사태 파악 후에도 이 장관은 바로 이태원에 가지 않았다. 집에서 수행기사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30일 새벽 0시 45분쯤 현장에 도착했다. 이 장관의 집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으로 다리 하나만 건너면 이태원이다.

2022년 12월 27일 국회 국정조사 1차 기관보고에서, 국정조사위원인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이 장관에게 물었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 경기 고양시 일산에 사는 수행기사가 장관의 자택인 압구정까지 차를 몰고 오느라 시간을 허비한 것 아니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기사가 오는 사이)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 통상적인 사람이라면 택시라도 타고 가면서 지시를 내린다. 상황실로 가든 현장으로 가든 그 시간에 수행비서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85분을 낭비한 것이다. 
- 2022.12.27 이태원 참사 국회 국정조사 1차 기관보고

'시간을 낭비했다'는 윤 의원의 지적에 이 장관은 이렇게 답했다. "이미 골든타임이 지난 시간이었다." 자신이 참사 사실을 인지한 10월 29일 밤 11시 20분은 이미 '골든타임 이후', 즉 희생자들을 구하기는 늦은 때였다는 의미다. 정말 그럴까.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이 정확히 언제 사망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희생자마다 구조 당시 상태와 시간도 다 다르다. 그러므로 정확한 골든타임도 미지수다. 다만 취재 결과 확인된 사실은 있다. 참사 이후 정부의 대응과 골든타임이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뉴스타파는 참사 현장에 출동했던 소방대원들의 보디캠, 구급차 CCTV, 구급활동일지(이하 구급일지), 경찰·소방 무전망 등을 종합해 참사 당일의 구조 상황을 재구성했다. 그 결과 경찰의 총체적 '교통 통제 실패'가 있었고, 이로 인한 구조·이송 지연이 참사의 골든타임을 놓치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달리 말하면, 참사 발생 이후라도 교통 통제만 제대로 이뤄졌다면, 한 사람이라도 살릴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뜻이다.

참사 직전 '아수라장' 된 이태원로, 신속한 '교통 통제' 필수였다

참사 당일 밤, 이태원은 '아수라장'이었다. 도로에는 자동차가 가득했고, 인파는 차도까지 점령했다. 참사 전인 밤 9시 52분 용산서 교통무전망에는 "해밀톤호텔 부근 인원 증가로 인해 가지고 전 차선이 1개 차선씩밖에 통과가 안 되는 상황이다"는 무전이 흘러나왔다. 현장 CCTV 영상을 봐도 참사 골목 쪽 도로는 1개 차선밖에 통행이 되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 약 1시간 전 이태원로의 모습. 사진 좌측이 참사 현장이다. 출처 : 용산구청 CCTV

밤 10시 15분 참사 발생 직후에도 혼란은 여전했다. CCTV 영상에 따르면, 사고 골목 등에서 쏟아져 나온 인파는 이태원로에 가득했던 다른 인파, 차량과 뒤엉켰다. 엄청난 교통 정체가 시작됐다.

신속한 구조를 위해선 먼저 이 교통 정체를 해소해야 했다. 꽉 막힌 도로 탓에 구조대원들은 현장에 접근하는 것조차도 어려웠다. 10시 29분 소방 무전망에는 "차량 진입이 곤란해 도보로 이동 중이다"는 무전이 나왔다.

소방 인력 중 최초로 이태원 현장에 도착했던 서울 용산소방서 현장대응단 소속 유해진 소방관은 지난해 1월 4일 국회 국정조사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태원 참사 초기 상황을 설명하겠습니다. 사고 당일 저와 지휘팀장 등이 탑승한 지휘차는 삼각지역에 있는 용산소방서에서 10시 22분에 출동했고, 국방부 앞에서부터는 극심한 차량 정체로 중앙선을 넘어 역주행했지만 역시 차량 정체로 사고 지점까지 가지 못했습니다.

- 유해진 서울 용산소방서 소방관 / 2023.1.4 국회 국정조사

비슷한 시각, 119 신고가 빗발치며 용산소방서를 제외한 다른 소방서의 구급대도 하나둘 출발하기 시작했다. 소방청이 국회에 제출한 '시간대별 조치 내역' 자료에 따르면, 종로·마포·중부소방서 등에서 구급차 11대가 소방 대응 1단계 발령(밤 10시 43분) 전 출동했다.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건 구급차 진입로 확보를 위한 주변 교통 통제였다. 

이태원로 일대 교통을 통제할 책임은 경찰에 있었다. '경찰 재난관리 규칙'에 따르면, 재난 발생 시 경찰은 ▲현장 접근통제 및 우회로 확보 ▲교통관리 및 치안질서유지 활동 ▲긴급구조 및 주민대피 지원 업무를 해야 한다. 또 경찰청 교통국은 '재난지역 교통통제 및 긴급차량 출동로 확보'를 해야 한다.

참사 골목 앞인 이태원로는 크게 4갈래 주요 길목과 이어진다. 왼쪽 녹사평역 길목, 아래쪽 보광동 길목, 북쪽인 제일기획 길목, 한강진역(북한남삼거리) 길목이다. (아래 지도 참고). 경찰은 이 4개 길목에서 차들이 새로 이태원로에 들어오는 것을 막고, 동시에 이미 이태원로에 있던 차들을 밖으로 빼내야 했다. 그래야 구급차들이 신속하게 이태원로로 진입해 피해자들을 싣고 병원으로 갈 수 있었다.

교통 통제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계속 진입하는 구급차와 일반 차량, 그리고 기존에 있던 차들이 얽히고설켜 이태원로에는 엄청난 정체가 발생할 게 당연했다. 구조·이송 지연도 불가피했다. 

'이태원 참사' 지점과 연결되는 주요 길목은 4개다. 참사 당일 경찰은 이 길목을 신속하게 통제해야 했다. 새로운 차가 진입하는 것을 막고, 이미 길목에 있던 차들은 밖으로 빼내야 했다. 그래야 구급차들이 빨리 진입해 피해자들을 구조하고 이송할 수 있었다.

경찰 무전망 보니... 참사 후 새벽까지도 교통 통제 '난항'

하지만 참사 직후 경찰의 교통 통제는 느렸고, 부실했다. 참사 당일의 서울 용산경찰서·서울경찰청의 교통 무전망과 112 무전망에 따르면, 이태원로의 4개 주요 길목 중 3개 길목에 대한 교통 통제는 참사 후 무려 1시간이 넘어서야 시작됐다. 

당시 경찰의 교통 통제 과정을 살펴보자. 

10월 29일 밤 10시 35분, 용산서 교통무전망에 "특이한 상황이 없기 때문에 해밀톤 호텔과 (이태원)119안전센터 중심으로 근무하면 될 것 같다"는 무전이 등장한다. 해밀톤호텔과 119안전센터는 사고 골목 바로 근방이다. 이미 참사가 발생하고 20분이 지났지만 여러 길목을 종합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지령은 없었다. 10시 35분은 이미 11대 구급차가 출발해 이태원을 향해 오는 중이었다. 

10시 36분, 용산서 교통무전망에 녹사평역 쪽 길목을 통제하라는 첫 지시가 떨어진다. (괄호 안은 무전 시간이다)

(22:36:09) 용산경찰서 교통과장 : 52기동대(교통기동대) 2제대장, 저 교통과장입니다. 
(23:36:13) 52기동대 2제대장 : 네, 52기동대 2제대장입니다.
(22:36:16) 용산경찰서 교통과장 : 지금 좀 압박을 많이 받습니다. 모두 배치해서 근무를 좀 해주십시오. 녹사평부터 2명씩 이태원파출소까지 신호기(신호등)마다 2명씩 배치해서 근무를 해주세요, (인원을) 증가시켜서.
(22:36:37) 52기동대 2제대장 : 증가 배치. 알겠습니다.  

- 2022.10.29 서울 용산경찰서 교통무전망 녹취록

이후 녹사평역 방면 교통 통제 인력은 금세 배치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처음부터 완전 통제가 이뤄지지는 않았다. 녹사평역에 배치된 경찰관은 처음에는 이태원로로 들어오는 차량 행렬의 '꼬리만' 끊었다. 여전히 차는 계속 이태원로로 들어오고 있었다. 

10시 52분, "녹사평 근무자 그 이태원로로 차를 넣지 말고, 될 수 있으면 우회시켜 주십시오"라는 첫 번째 '완전 통제' 지시가 떨어진다. 10시 55분 "이태원로로 들어오는 차량을 완전 통제하라"는 지시가 재차 하달된다. 녹사평역 배치 경찰관은 10시 55분 "녹사평에서 전면 통제했습니다"라고 무전 보고한다. 참사 후 약 40분이 지난 뒤였다. 

한강진역, 제일기획, 보광동 방면은 더 늦게 통제가 시작됐다. 무전망에 따르면, 용산서는 밤 10시 54분 한강진역에 대한 첫 통제를 경찰관 2명에게 지시한다. 참사 신고를 받고 출동한 공덕·종로·회현119센터 등 구급차 8대가 이미 도착한 후였다. 

11시 2분, 지시는 한강진역에서 제일기획 방면을 통제하는 것으로 변경된다. 경찰관 2명은 제일기획 쪽으로 향했는데, 꽉 막힌 도로를 순찰차로 이동하며 시간이 지체됐다. 결국 경찰관 한 명이 내려 도보로 이동했고, 11시 15분에서야 제일기획 길목 통제가 시작됐다. 

(22:54:08) 교통안전반장, (여기) 교통과장입니다. 한강진 쪽으로 순찰차 1대 보내서 현시간 통제하십시오.
(22:54:37) 이OO 교통경찰관, 김OO 교통경찰관, 교통안전팀장입니다.
(22:54:43) 2명 순찰차로 와서 북한남삼거리로 이동해서 완전 통제하세요. 차량 완전 통제. (23:02:29) 용산교통센터, 북한남삼거리보다 제일기획에서 완전 차단하는 게 낫지 않습니까? 제일기획 쪽으로 좌회전 차량 들어올 수가 있는데요.
(23:02:37) 네, 그럼 제일기획 삼거리로 가십시오. 제일기획 삼거리 가서 이태원로로 오는 걸 통제하십시오. (중략)
(23:07:15) 이OO 경찰관, 제일기획 도찼했니?
(23:07:19) 지금 삥 돌아가지고요. 조금 시간 걸릴 것 같습니다. 도착하면 보고드리겠습니다.
(23:07:27) 걸어서, 제일기획 쪽에 걸어서 일단은 통제를 하시죠, 차가 막히면. (중략)
(23:15:34) 용산교통센터, 경찰관 제일기획 앞에 도착했습니다. 현 시간부터 해밀톤호텔 앞으로 가는 차량 다 우회시키겠습니다.
(23:15:43) 네 제일기획 앞 통제 시작. 알겠습니다.

- 2022.10.29 서울 용산경찰서 교통무전망 녹취록 

'이태원 참사' 당일인 2022년 10월 29일 밤 11시 10분 사고 골목 모습. 사람들이 깔려 있는 사고 지점 바로 앞에서 소방대원들이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피해자들을 살리기 위해선 빠른 병원 이송이 필수적이었지만, 11시 10분에도 참사 지점과 연결되는 4개 주요 길목은 거의 통제되지 않았다.

한강진역 길목 교통 통제는 정확히 언제 이뤄졌는지 확인이 어렵다. 무전망에 따르면, 30일 새벽 0시 16분 "북한남(한강진역 쪽)은 중부경찰서 순찰차 3호가 지금 근무 중"이라는 내용이 있고, 29일 밤 11시 36분에는 "중부경찰서에서 올 예정이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전에는 한강진역 길목을 통제했다는 무전이 없다. 그러므로 한강진역 교통 통제는 29일 밤 11시 36분에서 30일 0시 16분 사이에 시작됐다고 추정할 수 있다.

보광동 길목에 대한 통제 지시는 11시 14분 처음 하달된다. 이후 실제 통제는 몇 시 몇 분에 시작됐는지, 총 몇 명의 경찰관이 배치됐는지는 무전망에서 확인이 어렵다. 하지만 교통 통제에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 보광동 길목에는 샛길이 많고 아래쪽 교차로에서는 계속 차량이 올라오는데, 여기까지 내려간 통제 인력은 당장 없었다.

밤 11시 56분 무전망에는 "보광에서 차 올리지 마라", "보광교차로 좀 차단해 달라. 차 올라오면 안 된다"는 얘기가 나왔다. 하단 교차로에 대한 첫 통제 지시는 밤 11시 57분이었고, 교차로 통제는 30일 새벽 0시 11분 시작됐다. 같은 시각 "지금 보광동교차로에서 보광로로 지금 차가 계속 오고 있는데, 노선버스하고 차단하고 있죠?라는 질문에 "다 이제 통제해서 더 이상 차 안 들어오도록 조치하겠습니다"라는 무전이 나왔다. 0시 12분 "보광동 쪽만 되면 삼면이 다 통제된다"는 무전도 나왔다. 

용산서 무전망 내용을 종합하면, 경찰은 참사 다음 날 새벽 0시가 넘어서도 이태원로와 연결된 주요 4개 길목의 교통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했다. 

취재진이 입수한 용산경찰서 무전망 녹취록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 지점으로 이어지는 4개 길목 중 밤 11시 이전 통제가 시작된 것은 녹사평 방면 1개 뿐이었다.

서울경찰청, 참사 1시간 넘게 지나서야 "순찰차 보내겠다"

교통 통제가 늦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인력 부족'으로 보인다. 참사 발생 당시 이태원 현장에 있던 교통 통제 경력은 용산서 교통경찰 6명과 52기동대(교통기동대) 20명이 전부였다. 그나마 참사 직후, 교통경찰관과 기동대 경력 상당수는 사고 골목에서 심폐소생술(CPR)을 하거나 골목 바로 앞에 있었다. 

참사 당일 밤 10시 38분 경찰 무전망에는 "우리 교통근무자들은 차량보다는 사람들 위주로, 사람 위주로 하세요"라는 무전이 나왔다. 밤10시 45분, 52기동대 측은 "소방차 주변에 (20명 중) 16명이 있습니다"고 무전했다. 당장 참사 골목 앞이 소방차와 기존 차량, 인파로 아수라장이 된 상황에서 이태원로의 4개 길목으로 이동해 교통 통제에 전념할 여유가 있는 경찰관은 거의 없었다. 

(22:44:55) 용산경찰서 교통과장 : 지금 소방차 주변(참사 골목 바로 앞)이 많이 혼잡한 상황입니다. 그 부근에서 지금 사람들이 너무 많이 차도로 내려오는 상황입니다. 관리 좀 부탁드립니다
(22:45:19) 52기동대 무전경찰관 : 알겠습니다, 거기 지금 현재 16명 있습니다. 
(22:45:24) 용산경찰서 교통과장 : 알겠습니다. 소방차 주변 16명 근무 중 입니까? 
(22:45:30) 52기동대 무전경찰관 : 예, 소방차 주변 16명 근무에 녹사평 2명 있습니다. 

- 2022.10.29 용산경찰서 교통무전망 녹취록

현장의 교통 상황 관리는 경찰 교통정보센터에서도 한다. 교통정보센터는 관내 경찰 교통CCTV를 확인해 재난·재해 시 교통량을 관리해 원활한 교통 소통을 원활하게 만들어야 한다. 당시 이태원로를 가까이서 직접 비추던 경찰 교통 CCTV는 없었다. 다만, 교통정보센터는 용산 교통무전망을 동시에 모두 청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용산서 교통정보센터의 대응은 느렸다. 10시 57분에야 무전망에서 "(용산서 소속) 지구대 순찰차를 출발시켜야 하느냐"고 처음 물었다. 11시에는 "지역 순찰차는 오긴 왔는데 몇 대 안 된다", "인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무전이 송출됐다. 

용산서뿐만 아니라 다른 경찰서들도 신속히 이태원 현장을 지원해야 했다. 타 경찰서에 상황을 알리고, 지원 지시를 내릴 수 있는 것은 서울경청이었다. 하지만 서울청 교통정보센터는 참사 발생 후 1시간이 넘게 지났을 때까지도 참사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다. 

서울청 교통정보센터와 용산서 교통과 간 무전 내역을 보면, 용산 교통과는 10시 56분 서울청 교통정보센터에 "안전사고 우려가 높다"고만 무전했다. 이미 이태원 일대가 아비규환이 됐고, 구급차들이 도착해 여기저기서 CPR이 시작된 후였다. 

용산 교통경찰은 11시 26분에야 "30명이 압사를 당해 CPR 상태"라고 보고했다. 그제서야 서울청 교통정보센터는 "교통순찰대 1대를 지원하겠다. 경찰 싸이카(경찰 순찰용 오토바이) 3대에 교통순찰대 순찰차 1대 지원 어디로 하면 되는지 보고 바란다"고 무전한다. 이 무전이 나온 때가 11시 27분, 참사 발생 후 약 1시간이 넘게 지난 상태였다. 

다만 서울청의 뒤늦은 지원 결정이 용산서의 늑장 보고 때문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소방당국은 경찰청 및 서울청에 10시 18분부터 서울청 교통정보센터의 첫 지원 지시가 떨어진 즈음인 밤 11시 28분 전까지 총 6번 도움(공동대응)을 요청했다. 그사이 서울청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소방의 공동대응 요청을 받은 곳은 서울청 112상황실이다. 112상황실이 교통정보센터에 소방당국 요청을 전달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교통정보센터가 전달받고도 조치하지 않은 것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결국 참사 발생 1시간 13분 뒤인 11시 28분, 서울청 교통정보센터는 싸이카 4대, 순찰차 4대로 지원 내용을 정정하고, 각 일선 경찰서에 출동 지시를 내린다. 무전망에 의하면, 서울청 지시로 출동한 첫 지원 인력인 남대문·성동경찰서 순찰차가 이태원에 도착한 시간은 각각 11시 43분, 55분이다.

서울청이 할 수 있었던 지원이 타 경찰서의 순찰차, 싸이카 지원만 있던 건 아니다. 경비기동대를 파견할 수도 있었다. 경비기동대에 대한 첫 출동 지시는 11시 17분이었다. 그런데 이 지시는 이임재 전 용산서장이 내렸다.당시 11기동대는 대통령실 등 용산의 거점 지역 야간근무를 서는 중이어서 지휘권이 용산서장에게 있었다. 11기동대는 11시 40분 이태원에 도착해 도로에 있는 인파 등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서울청이 경비기동대에 첫 출동 지시를 내린 건 11시 33분이었다. 역시 소방에서 이미 7번이나 대응을 요청한 이후다. 교통 통제 인력, 경비기동대 지원 모두에서 서울청은 매우 느렸다. 

'이태원 참사' 직후 소방당국은 서울경찰청과 경찰청에 7번 넘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서울경찰청은 6번째 요청을 받은 뒤에야 교통 통제 지원에 나섰고, 7번째 요청 후 인파 관리를 위한 경비기동대를 처음 출동시켰다. (출처 : 이태원 참사 긴급구조 대응활동 종합평가보고서 및 소방청 보도자료)

'교통 통제 실패'의 여파… 자정 넘어서도 구조·이송 지연

경찰의 교통 통제 실패는 구조·이송 지연으로 이어졌다. 취재진이 이태원에 출동한 서울·경기·인천 지역 소방서의 구급일지를 확인한 결과, '교통 정체로 구조 작업이 늦어졌다'는 취지의 기록이 참사 직후부터 자정 이후까지 지속적으로 올라왔다.

참사 발생 3분 뒤인 밤 10시 18분 출동한 종로119안전센터의 구급일지에는 "차량 정체 및 행인이 차량을 막고 있어 현장 진입이 어려워 도착 시간 지체됨"이라고 적혀 있다. 4분 뒤 출동한 잠원119안전센터는 "이태원 일대 교통 정체 극심해 인근 도로에서부터 도보로 접근함", 신당119안전센터(밤 10시 35분 출동)는 "차량 정체로 현장에 진입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일지에 썼다. 

30일 새벽 0시19분 현장에 도착한 경기 백운119안전센터의 구급일지에도 "차량으로 인한 정체, 구급차 줄 서 있던 상태"라고 적혀 있었다. 0시 25분 도착한 경기 포천119센터는 구급일지에 "차량 정체로 현장도착 및 환자 접촉이 다소 지연됨"이라고 썼다. 

이태원 참사 현장에 출동했던 경기 의왕소방서 백운119안전센터의 구급활동일지. 새벽 0시 19분에 현장에 도착한 구급대원들은 "차량 정체, 구급차 줄 서있던 상태"라고 적었다.

교통 통제의 실패는 단순히 구급차의 현장 도착 지연만 유발하지 않았다. 피해자를 태운 구급차가 이태원을 빠져나가는 데도 영향을 줬다.

취재진이 확보한 참사 당일 구급차 내외부 CCTV 영상을 보면, 10시 27분 이태원로에 정차돼 있던 이태원119안전센터 구급차에 한 환자(기록에 따르면 참사 피해자는 아니다)가 실렸다. 구급차는 바로 출발하지 못했고, 앞뒤가 꽉 막힌 도로에서 1~2분가량 정차했다. 그리고 11분 뒤인, 10시 38분 순천향대병원에 도착했다. 현장에서 병원까지는 약 1km, 과도한 정체만 아니었다면 5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이태원 참사' 당일 이태원119안전센터의 구급차 CCTV. 밤 10시 28분 환자를 실은 구급차가 차량 정체에 막혀 오도가도 못 하고 있다.

또 다른 CCTV 영상에 따르면, 밤 11시 12분에 현장에 도착한 상도119안전센터는 환자(참사 피해자)를 싣고 11시 17분 순천향대병원으로 출발했다. 구급일지에 따르면, 소방대원들은 이 환자를 '사망'이 아닌 '심정지 응급' 상태라고 판단했다. 소생 가능성이 0%라고 보지는 않은 것이다. 

구급일지의 환자 상태는 현장 의료진 혹은 구급대원이 판단해 적는다. 소방청의 구급일지 작성지침을 보면, '사후강직, 시반 등 사망의 징후가 있거나 강력히 의심되는 경우'에는 환자 상태를 '사망(혹은 사망 추정)'이라고 표시할 수 있다. 응급 표시는 아직 사망이라고 확정하기는 이르고, 병원으로 옮겨 소생 시도를 해봐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구급차는 11시 45분, 순천향대병원에 도착했다. 역시 평소 5분 거리를 이동하는 데 28분이 걸렸다. 

앞선 CCTV 영상과 비교하면, 10시 27분에 순천향대병원으로 출발한 이태원119센터보다 11시 17분 출발한 상도119센터의 이동시간이 더 길어졌다는 것(11분 -> 28분)을 알 수 있다. 갈수록 교통 정체가 해소된 게 아니라, 더 심해졌다는 걸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태원 일대 교통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구급차까지 몰리며 정체가 심해졌고, 이로 인해 구조·이송이 더 지연됐던 것으로 보인다. 용산서 교통무전망에는 밤 11시 23분 "지금 구급차량 계속 들어오는 상황이다", 11시 30분 "구급차량들로 인해서 차량이 정체되고 있는 상황이다"는 내용이 있다. 

이런 정황은 다른 구급차 CCTV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서빙고119안전센터의 구급차 CCTV에 따르면, 한 환자가 11시 37분 구급차에 탔다. 구급일지상 상태는 '심정지 응급'이었다. 역시 소방대원들은 소생 가능성이 0%라고 판단하지 않았다. 구급차는 참사 현장에서 200m 떨어진 곳에서 해밀톤호텔 쪽을 바라보고 있었고, 목적지는 서울 종로구 혜화동 서울대병원이었다. 

구급차는 피해자를 태우자마자 출발했다. 원래는 유턴해서 한강진역 쪽으로 가면 최단거리였지만, 옆 뒤로 차가 가득해 불가능했다. 차는 직진했고, 출발과 동시에 앞이 가로막혔다. 이태원로에 빽빽이 들어찬 구급차, 자동차, 버스 때문이었다. 구급차는 우회를 시도했다. 또 시간이 지체됐다. 구급차가 가로지르려던 횡단보도로 사람들이 길을 건넜다. 구급차가 먼저 지나갈 수 있도록 행인을 통제하는 인력도 전혀 없었다. 

구급차는 11시 39분까지 가만히 있다가 우회해 서울대병원으로 향했다. CCTV에 따르면, 당시 구급차는 용산구 보광동까지 갔다가 다시 한남동, 한강진을 거쳐 서울대병원으로 주행했는데, 한강진을 지났을 때가 11시 50분이었다. 만약 도로 통제가 잘 돼 구급차가 우회하지 않았다면, 예상되는 한강진 경유 시각은 11시 40분도 안 됐을 것으로 보인다. 구급차는 11시 59분 서울대병원에 도착했다. 

당시 용산소방서 무전망에는 이런 내용의 무전이 지속적으로 올라왔다. 

(23:53경) 지금 이태원역에서 녹사평역까지 구급차가 갈수 있게 통제를 해야 될 것 같아요. 차량이 나갈 수가 없어요, 구급차가. 경찰 독촉 좀 해주세요.
(23:54경) 해밀톤 호텔 앞으로 누워 있는 환자가 너무 많아. 그런데 구급차가 빠지질 못하고 있으니까 빨리 경찰에 추가 출동 요청할 수 있도록.
(23:57) 지금 녹사평역에서 이태원역까지 통제가 안 되고 있어. 경찰력 빨리 추가 출동 요청해서 구급차가 빠질 수 있도록 해줘야 돼.

- 2022.10.29 용산소방서 무전망 녹취록

'이태원 참사' 당일 용산소방서 서빙고119안전센터 구급차의 이동 경로. CCTV 영상에 따르면, 서울 종로구의 서울대병원에 가려고 한 이 구급차는 최단거리로 가지 않고 한남동 방향으로 우회해 이동했다. 심각한 교통정체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약 10분 늦게 병원에 도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구조·이송 빨랐다면 피해 규모 줄었을까

다시 골든타임으로 돌아와 보자. 이상민 행안부장관은 참사의 골든타임이 '11시 20분 이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뉴스타파가 확보한 일부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사체검안서에는 사망일시가 이렇게 나온다. "30일 00시 00분 이전 추정", "29일 23시 59분 이전 추정", "29일 22시 15분 추정." 취재 결과 다른 희생자 다수의 사망 시각도 비슷하게 표시돼 있었다. 즉 현재로서는 희생자가 언제 사망했는지 모른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희생자 각각의 골든타임도 정확히 알 수 없다. 

이 '알 수 없다'는 사실은 두 가지 가능성을 암시한다. 

첫째, 이상민 장관은 골든타임이 11시 20분 이전이라고 주장했지만, 어떤 희생자는 그 이후에도 생존 상태였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이태원 참사를 수사한 경찰 특별수사본부는 2022년 11월 25일 언론 브리핑에서 "의학적 관점의 골든타임은 개인별 신체 조건이나 위치 등에 따라 끼임이나 압박의 정도가 다르므로 심정지 등 응급상황이 발생한 시점도 달랐을 것으로 판단한다. 참사 당일 오후 11시 이후에 (심정지가) 온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둘째, 구조·이송이 신속했다면 끝내 사망하지 않았을 희생자의 가능성이다. 소방 구급일지에 따르면, 이태원 현장에서 병원으로 출발한 시각이 29일 밤 11시부터 30일 새벽 0시 전인 구급차는 모두 39대, 이중 출발 당시 환자 상태를 '심정지 응급'으로 표시한 구급차는 18대다. 호흡곤란 응급 1대, 의식장애 응급 5대도 있다. 사망으로 판단해 병원이 아닌 용산구 원효로다목적체육관 임시 영안소로 향한 구급차는 딱 1대다. 

발견 당시 심정지 응급 상태였던 희생자 고 강가희 씨는 29일 밤 11시 20분 병원으로 출발했다. 42분경 강북삼성병원에 도착한 강 씨는 약 13분간 심폐소생술을 받았다. 그러자 멈췄던 강 씨의 심장은 다시 뛰었다. 이후 강 씨는 '살아 있었다.' 중환자실에서 이틀을 버텼고, 31일 밤 8시 45분 사망했다. 강 씨의 어머니 이숙자 씨는 "병원에서 가희가 좀만 더 빨리 왔으면 좀 더 손 써봤을 수 있다고, 소생 가능성이 더 컸을 수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강가희 씨의 병원 의료기록. 참사 후 약 1시간이 흐른 밤 11시 20분경 심정지 상태에서 구조된 강 씨는 11시 42분경 서울 강북삼성병원에 도착했다. 병원에서 심폐소생술을 받은 강 씨의 심장은 다시 뛰었고, 강 씨는 이틀을 버티다 2022년 10월 31일 밤 8시 45분 사망했다.  

희생자 고 김유나 씨도 발견 당시 심정지 응급 환자였다. 김 씨는 밤 11시 32분 발견돼 45분 병원으로 이송됐고, 55분 서울대병원에 도착했다. 김 씨는 병원 도착 뒤 사망 선고를 받았다. 언니 김유진 씨는 지난해 1월 국회 국정조사 공청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 동생이 사복 경찰과 소방관 등에게 실려 나가는 영상을 봤습니다. 소방관이 의식 돌아온 거냐고 묻자 사복 경찰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주 천천히 들고 걸어서 옮기는 것으로 보아 의식이 돌아와 괜찮은 상태로 판단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때까지 살아 있었다는 건데, 병원 응급실에는 새벽 0시에 심정지 상태로 도착했고 0시 반 사망했다고 했습니다. 그 영상을 보고 놀랐습니다. 의식이 돌아와 살 수도 있었던 상황인지 몰랐습니다. 병원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현장 교통 통제 및 관리가 미흡했다고 생각합니다.

-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김유나 씨 언니 김유진 씨 / 2023.1.12 국회 국정조사 공청회 

김 씨를 이송한 구급차의 구급일지에는 또 "차량 정체 및 인파로 현장도착 지연됨"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외에도 희생자 고 유채화 씨의 동생은 국정조사에서 "저희 언니는 CPR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차가운 길바닥에 누워 몇 시간을 병원에 이송되기를 기다렸다"고 말했다. 유해진 용산소방서 소방관도 국정조사에서 "구조작업을 하는데 막대한 지장이 발생한 게 현장 통제의 실패에서 비롯됐다는 판단도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그렇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교통 통제 실패'의 원인 조사해야

교통 통제 실패의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의문점만 무성할 뿐이다. ▲왜 용산서는 참사 인지 직후 곧바로 서울청 교통정보센터에 지원 요청을 하지 않았나 ▲서울청 교통정보센터는 소방에서 6번이나 지원 요청이 오는 동안 어떤 일을 했나 ▲경비기동대는 왜 밤 11시 17분이 돼서야 첫 출동 지시를 받았나 ▲경찰의 재난·참사 교통 통제 시스템과 능력, 훈련 체계 전반에 문제는 없나 등이다. 

물론 책임이 경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태원로에 대한 추가 차량, 인파 진입을 막기 위해선 일대에 재난문자 발송이 필요했다. 용산구청은 밤 10시 53분 행정안전부로부터 재난문자 송출 요청을 받았다. 용산구청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보다 못한 서울시가 밤 11시 56분 재난문자를 보내 '차량 우회, 이태원 지역 접근자제 요청'을 했다. 그게 최초 문자였다. 용산구청은 30일 새벽 0시 11분이 돼서야 재난문자를 처음 발송했다. 

행정안전부도 마찬가지다. 참사 당일 밤 10시 43분 소방대응 1단계를 발령한 소방청은 48분 이런 사실을 행안부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 보고한다. 이후 행안부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경찰에 현장 통제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등 대응은 없었다. 이상민 장관이 참사 사실을 처음 인지했다는 11시 20분 이후에도 행안부를 통한 현장 통제 인력 증가는 없었다. 

교통 통제 실패에 대해 책임기관의 지휘부들은 국정조사 등에서 "반성하겠다", "죄송하다"고 말했다. 사과만으로는 참사의 재발을 막을 수 없다. 경찰과 행안부, 용산구까지 총체적인 교통 통제 실패의 이유를 규명해야 한다. 

뉴스타파 홍주환 thehong@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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