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전작권도 없는데 ‘즉강끝’이 가능하나?

권혁철 기자 2024. 9. 13.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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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철의 안보이는 안보
김용현 국방장관이 지난 9일 해병대 2사단 병영식당에서 해병대원들과 함께 식사하고 격려하고 있다. 김 장관 뒤에 ‘즉강끝’을 강조하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국방부 제공

애초 신원식 국방장관이 국가안보실장으로 옮기면 그가 강조했던 ‘즉강끝’ 구호도 사라질 것이란 예상이 군 내부에서 많았다. 그동안 역대 국방장관, 합참의장, 각군 참모총장 등이 바뀌면 전임자가 강조했던 정책이나 특정 용어도 동반 퇴장했기 때문이다. 신 전 장관은 지난해 10월 취임한 이후 북한이 도발하면 “즉시 강력히 끝까지 응징하라”고 강조했고, 그가 일선부대를 방문하면 장병들은 이를 축약해 ‘즉강끝’이란 구호를 우렁차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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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현 국방장관은 지난 6일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적이 도발한다면 ‘즉강끝 원칙'으로 참혹한 대가를 치르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장관은 지난 2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즉강끝 구호를 언급한 데 이어 취임사에서도 이를 언급했다. 그는 예상과 달리 즉강끝 구호를 계승할 뜻을 분명히 했다.

김 장관은 취임 사흘만인 지난 9일 해병대 2사단을 찾아 “적이 도발한다면 즉강끝 원칙 아래 적이 추가 도발을 할 수 없을 때까지 충분히, 단호하게 응징하고 결과를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김 장관은 즉강끝을 계승하는 것을 넘어 그 의미를 확장했다. 그는 취임사에서 “즉강끝의 ‘끝’은 북한 정권과 지도부이고 그들이 도발한다면 정권의 종말을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신 전 장관 때의 즉강끝은 “적이 침투·도발하면 최단 시간 내 ‘즉강끝’ 원칙으로 현장에서 작전을 종결한다”는 뜻이었다. 김 장관은 즉강끝의 최종목표를 북한 정권 종말로 제시했다.

이와 달리 그동안 군에선 즉강끝 구호를 달성해야 할 국방정책의 구체적 목표가 아닌 수사적 표현로 받아들였다. 대외적으로는 북한의 도발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발신하고, 안으로는 장병들에게 전투의지를 고양시키는 것으로 이해했다. 마치 국군 장병들이 “휴전선 155마일을 물샐틈없이 지키겠다”고 다짐하지만 실제로는 휴전선을 물샐틈없이 지킬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장병들이 이런 다짐을 하는 것은 철저한 대북 경계 태세를 강조하는 수사적 표현이다.

지난 6일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국방장관 이·취임식에서 김용현 장관(왼쪽)과 신원식 전 장관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국방부 제공

그동안 즉강끝이 수사적 표현으로 인식된 것은 현실에선 구현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먼저 즉강끝 가운데 ‘강력히’는 유엔사·연합사 정전교전규칙과 충돌해, 유엔사가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문제 삼을 가능성이 있다. 교전규칙에는 부대의 배치나 전투준비태세, 무력행사의 조건과 시기, 특정 군사적 수단의 이용 승인, 제한 등의 내용이 담긴다. 교전규칙은 평시와 전시로 나뉜다. 한국은 군사적으로 정전상태여서 현재 상황에서 북한이 군사도발을 하면 국군은 유엔사·연합사 522-4 정전교전규칙(유엔사·연합사 정전교전규칙)과 합참 교전규칙에 따라 대응한다.

유엔사·연합사 정전교전규칙은 국제법을 반영해 무력을 행사할 때 비례성을 강조한다. 비례성은 무력행사가 과도해서는 안 되고 위협 요인의 제거 목적에 국한해야 한다는 뜻이다. 일선부대에선 장병들에게 “받은 만큼 돌려줘라”(동종 동량 대응)는 식으로 비례성을 쉽게 교육했다. 예를 들어 북한이 총탄 1발을 쏘면 총탄 1발로 대응한다는 것이다.

자체 교전규칙이 없이 유엔사·연합사 교전규칙을 따르던 한국은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전 때 곤란을 겪었다. 당시 군 지휘부 안에서 공군 전투기를 동원한 대북 보복 공격 권한이 한국에 있는지, 한미연합사에 있는지를 두고 혼선이 발생했다. 이후 국군의 독자적 교전규칙 필요성이 제기돼 2013년 합참이 교전규칙을 만들었다. 합참 교전규칙에는 ‘북한의 도발을 충분히 응징한다’는 취지의 ‘충분성 원칙’을 추가했다고 한다.

2010년 11월23일 북한군이 쏜 포탄이 떨어져 발생한 화염 속에서 대응 사격하는 해병 연평부대 포7 중대 K-9 자주포. 해병대 제공

평시 한국군에는 합참 교전규칙과 유엔사·연합사 정전교전규칙이 중첩 적용하기 때문에 지휘의 통일성 측면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유엔사·연합사 정전교전규칙은 국제법상 원칙인 비례성을 강조하고, 합참 교전규칙은 자위권 차원의 충분성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2020년 5월3일 비무장지대 북한군 감시초소(GP)에서 한국 감시초소를 향해 총탄 4발이 발사됐고, 한국군은 기관총탄 30발을 대응사격했다. 유엔사는 이 사건을 조사한 뒤 “남북이 모두 정전협정을 위반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유엔사는 4발에 30발로 맞선 한국군이 유엔사·연합사 정전교전 규칙상 ‘비례성 원칙'을 어겨 과잉대응했다고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장관은 “즉강끝의 ‘끝’은 북한 정권과 지도부이고 그들이 도발한다면 정권의 종말을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한국에겐 ‘끝까지’갈 권한이 없다. 1994년 한국이 평시 작전통제권을 찾아왔지만 전시작권통제권(전작권)은 한미연합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같은 ‘데프콘 4’ 경계상황에서는 한국이 작전통제권을 행사하지만, 한반도 위기가 높아져 ‘데프콘 3’이 되면 한국군 작전통제권이 자동으로 한미연합사로 넘어간다. 데프콘은 한반도에서 `적의 도발에 대한 방어준비 태세'를 뜻하는데, 한반도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면 4→3→2→1 순으로 단계적으로 높아진다. 한반도는 1953년 7월 한국전쟁 정전 이후 줄곧 데프콘 4 상태다.

데프콘 3이 발령되면 국군은 전시교전규칙(WROE)을 따라야 한다. 전시교전규칙은 한미연합사 작전계획 5015에 포함돼 있다. 이 전시교전규칙 작성권자는 한미연합사령관이다. 한국이 북한 정권의 종말을 목표로 ‘끝까지’ 응징하려고 할 때는 최소한 ‘데프콘 3’ 이상 위기 상황이다. 이때 한국에겐 전작권뿐만 아니라 자체 전시교전규칙도 없다. 한국이 ‘끝까지’갈 의지가 하늘을 찔러도 이를 독자적으로 결행할 군사적 권한이 없다.

즉강끝 구현의 핵심 전제 조건은 전작권 환수이지만, 윤석열 정부는 전작권 환수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윤석열 정부 국방장관들이 즉강끝을 외치는 모습은, ‘서울대 합격!’ 이란 구호를 책상 앞에 크게 붙여놓고 매일 책상에 엎드려 잠만 자는 수험생을 연상시킨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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