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입맛’의 진격...한국에 없는 ‘고추장 스팸’, 미국서 나왔다
앞서 7월에는 ‘‘한국 바비큐맛 스팸’도 나와
한국밥상 점령했던 스팸...이제는 한국 입맛의 본토 역습
검은 사발에 담긴 윤기 흐르는 쌀밥에 노릇하게 익은 스팸 한 조각이 얹혔다. 반세기 이상 한국인에게 친숙한 스팸의 밥도둑 만행 현장이다. 이 사진과 함께 스팸 특유의 노란 영문 로고 (SPAM®)아래로 ‘GOCHUJANG Flavored(고추장 맛)’과 ‘한국식(KOREAN)’이라는 글자가 뚜렷하게 보인다. 스팸의 본사인 미국 호멜푸드가 출시한 ‘고추장맛 스팸(SPAM® Gochujang Flavored)’이다.
한국의 입맛과 찰떡 궁합을 이루며 국민 밥반찬으로 사랑받은 스팸. 그 스팸의 고추장맛 버전이 한국도 아닌 스팸의 고향 미국에서 만들어졌다. 호멜사는 11일 보도자료로 스팸의 신제품으로 고추장맛 스팸 발매 소식을 알렸다. 현재 미국에서 스팸은 클래식·저염도·데리야키·메이플 등 맛과 향이 조금씩 다른 12개 제품이 출시돼있는데 여기에 고추장맛이 추가된 것이다. 특히 앞서 지난 7월에는 한국 바비큐맛(Korean BBQ flavored)이 출시된 바 있어 미국 본토에서 팔리는 두 번째 한국맛 스팸이 됐다.
호멜 푸드는 “한국의 인기 발효 양념인 고추장에서 영감을 얻어 매운 맛, 단 맛, 감칠맛이 나기 때문에 모든 음식과 어울린다”며 곁들이기 좋은 음식으로 김밥과 소떡소떡(소시지와 떡을 번갈아 꽂은 꼬치), 부대찌개 등 한국음식과 무스비(일본식 사각김밥) 등을 예시로 들었다. 제네사 킨셔 스팸 브랜드 선임 매니저는 “스팸이 한국인들과 미국인들에게 모두 사랑받고 있음을 축하하면서 우리만의 고추장맛 스팸을 만들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고추장맛 스팸은 일정 기간만 판매되는 한정판 상품으로 코스트코에서 여덟개짜리 캔묶음으로 판매한다. 앞서 발매된 한국바비큐맛 스팸은 연중 판매되는 정규 상품이며 월마트 온·오프라인 매장에서 판매한다. 6·25 전쟁에 참전한 미군을 통해 흘러들어온 미제 돼지고기 가공 통조림에 홀렸던 한국인의 입맛이 70년이 지난 뒤 한류와 K푸드 열풍에 힘입어 스팸의 본토를 공략하는 구도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전 연령대에서 즐기는 밥반찬·안주로 소비되고 있지만, 본토 미국에서는 서민 가정에서 먹는 음식으로 인식된다.
비록 한정판이기는 하지만 미국 대형 마트에서 팔리게 될 ‘고추장맛 스팸’의 등장은 한식의 세계화가 다층적·입체적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장면으로도 인식된다. 1990년대 이전까지는 김치·불고기·갈비 등 인지도가 높은 일부 음식 외에 한식은 존재 자체가 알려지지 않다시피했다. 고추장이나 된장 등을 각각 ‘코리안 칠리 소스’ ' 코리안 소이 소스’ 등으로 의역해서 알려야 할 상황이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고급 한식과 실험적인 퓨전 요리, 건강식 등의 형식으로 소개되면서 한식에 대한 주목도가 부쩍 높아졌다.
그러다가 한국 노래와 드라마, 영화가 전세계적으로 사랑받는 한류 전성기가 열린 다음에는 떡볶이·김밥·컵밥 등 서민적인 길거리 음식까지 ‘K푸드’로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이런 흐름에서 이제는 개별 음식이나 식자재가 아닌 한국인들의 전통적·일상적 ‘K입맛’ 자체가 세계 음식 유행을 선도하는 양상으로 바뀌고 있다는 걸 ‘고추장맛 스팸’이 보여준다. 스팸은 2차 대전 발발 전인 1937년에 호멜에서 내놓았다. 돼지고기 어깻살을 주재료로 소금과 물, 감자, 설탕 등을 섞어서 만든 통조림이다. 인류의 비극인 전쟁은 역설적으로 스팸이 전세계에 퍼지는 계기가 됐다.
전 세계 전선에 파병된 미군의 군용식량으로 지급됐기 때문이다. 이런 경로를 거쳐서 미군이 파병되거나 주둔했던 한국·일본과 태평양 도서 지역에서는 주민들에게까지 널리 퍼졌다. 이중 현지 입맛과 기묘하고도 놀라운 조화를 이루며 ‘소울 푸드’로 자리매김한 대표적인 지역이 한국이다. 김치·젓갈·찌개·김밥 등 한국 전통요리와 곁들여서 먹는게 일상이 됐다. 추석과 설날 등 명절 때마다 스팸을 가득 담은 선물세트가 날개돋친 듯 팔리는 풍경을 앞세워 한국과 스팸의 특별한 인연을 소개하는 기사는 호멜사와 미 군사매체 성조지 등이 이맘때면 단골로 전하는 뉴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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