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관을 웃으며 헤쳐나가자" 26년 만에 재등장한 북한 신문의 이 문구…내부 사정 어떻길래 [스프]
안정식 북한전문기자 2024. 9. 13.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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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어떻게 정확히 볼 것인가? '기대'와 '관점'이 아니라 객관적 '현실'에 기반해 차분하게 짚어드립니다.
1998년 6월 23일 노동신문 1면에는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라는 제목의 사설이 실렸습니다.
1998년 6월의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라는 제목의 노동신문 사설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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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식의 N코리아 정식] 어려움 스스로 인정한 북한, 26년 전에도 그랬는데…
북한을 어떻게 정확히 볼 것인가? '기대'와 '관점'이 아니라 객관적 '현실'에 기반해 차분하게 짚어드립니다.
1998년 6월 23일 노동신문 1면에는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라는 제목의 사설이 실렸습니다. 수백만이 굶어 죽었다는 1990년대 중반의 <고난의 행군> 시기가 지나가고 있는 시점이었지만 여전히 경제 상황이 어려운 상황에서 북한 주민들을 다독이고 독려하기 위한 글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5일 노동신문 1면에 26년 전인 1998년 6월의 사설을 생각나게 하는 글이 실렸습니다. '필승의 신념을 안고 부닥치는 난관을 웃으며 헤쳐나가자'는 제목의 사설입니다. 노동신문 1면의 사설은 북한 당국의 의중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북한이 지금 이러한 사설을 실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1998년 6월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북한에게 1990년대 중반은 <고난의 행군>으로 불리는 그야말로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연이은 홍수로 북한의 주요 산업시설은 물에 잠겼고 국가 배급이 끊어지면서 배급만 바라보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습니다. 지금은 배급에 대한 기대가 없어 스스로 장사를 통해 먹고 사는 데 익숙해져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국가 배급을 절대적으로 생각했기에 많은 수의 북한 주민들이 별다른 생존책을 찾지 못한 채 아사의 비극을 맞았습니다.
199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상황이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경제가 호전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민생은 여전히 어려웠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찾기 힘들었습니다. 1998년 6월의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라는 제목의 노동신문 사설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북한은 당시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기에 사설에서 어려움을 솔직히 인정했습니다. 북한이 스스로 어렵다고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북한의 모든 글이 그러하듯이 결론은 최고지도자(1998년 당시에는 김정일)를 중심으로 단결해 사회주의 혁명을 계속하자는 것이지만, 그러한 혁명의 길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사설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현실은 고달프지만 미래를 위해 참고 견디자는 것이 노동신문이 북한 주민들을 독려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 5일의 노동신문 사설은 제목에서부터 26년 전 사설을 떠올리게 합니다. 1998년 사설이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라며 '험난'과 '웃음'을 대비시키고 있는데, 2024년 사설도 '난관을 웃으며 헤쳐나가자'며 '난관'과 '웃음'을 대비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지난 5일 사설에서 지금의 어려움을 인정했습니다.
2021년 제8차 노동당대회의 계획들을 순차적으로 달성해 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압록강 지역에 대규모 홍수가 났음에도 자력갱생으로 극복할 수 있다며 외부 지원을 거부하고 있는 북한이 실제로는 매우 힘든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은 이례적입니다.
북한이 이렇게 스스로 난관을 인정한 것을 보면, 주민들의 어려운 상태를 더 이상 감출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1998년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주민 생활이 피폐해진 상황에서, 차라리 난관을 인정하고 솔직하게 주민들을 독려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북한을 어떻게 정확히 볼 것인가? '기대'와 '관점'이 아니라 객관적 '현실'에 기반해 차분하게 짚어드립니다.
1998년 6월 23일 노동신문 1면에는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라는 제목의 사설이 실렸습니다. 수백만이 굶어 죽었다는 1990년대 중반의 <고난의 행군> 시기가 지나가고 있는 시점이었지만 여전히 경제 상황이 어려운 상황에서 북한 주민들을 다독이고 독려하기 위한 글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5일 노동신문 1면에 26년 전인 1998년 6월의 사설을 생각나게 하는 글이 실렸습니다. '필승의 신념을 안고 부닥치는 난관을 웃으며 헤쳐나가자'는 제목의 사설입니다. 노동신문 1면의 사설은 북한 당국의 의중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북한이 지금 이러한 사설을 실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1998년 노동신문 사설이 나오게 된 배경
199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상황이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경제가 호전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민생은 여전히 어려웠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찾기 힘들었습니다. 1998년 6월의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라는 제목의 노동신문 사설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북한은 당시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기에 사설에서 어려움을 솔직히 인정했습니다. 북한이 스스로 어렵다고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역사에 유례없는 강행군을 다그치고 있다."
"오늘의 강행군은 제국주의 고립압살 책동도 경제적 난관도 우리 자신의 힘으로 헤쳐나가야 하는 준엄한 행군이다."
"우리 인민은 여러 해째 계속된 <고난의 행군> 길에서 가슴 아픈 일을 수없이 겪었다."
"우리는 지난날 어려운 길을 걸어왔고 오늘도 강행군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그보다 더 어려운 길을 걸어나갈 수 있다."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 노동신문 사설 (1998년 6월)>
북한의 모든 글이 그러하듯이 결론은 최고지도자(1998년 당시에는 김정일)를 중심으로 단결해 사회주의 혁명을 계속하자는 것이지만, 그러한 혁명의 길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사설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현실은 고달프지만 미래를 위해 참고 견디자는 것이 노동신문이 북한 주민들을 독려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 같습니다.
"혁명은 간고하지만 그것은 기쁨과 긍지로 가득 찬 성스러운 투쟁이다."
"혁명의 길에서 겪게 되는 고생을 달게 여길 줄 모르는 사람은 혁명을 할 수 없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죽음을 각오한 사람을 당할 자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 우리 인민의 배짱이고 담력이다."
"오늘을 위한 오늘이 아니라 내일을 위한 오늘에 사는 것은 우리 인민의 어길 수 없는 좌우명으로 되었다."
"미래를 확신하면 낙관주의자가 되고 신심을 잃으면 패배주의자가 된다."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 노동신문 사설 (1998년 6월)>
26년 전 사설 떠올리게 하는 지난 5일 노동신문 사설
북한은 지난 5일 사설에서 지금의 어려움을 인정했습니다.
"지난 10여 년간은 간고성과 혹독함에 있어서 지나온 연대들과 대비할 수 없는 엄혹한 시련의 연속이었다. 남들 같으면 열백 번도 주저앉았을 준엄한 나날 우리의 전진을 가로막으려는 적대 세력들의 발악적인 책동이 가중되는 속에서도..."
"우리는 지금까지 누구도 걸어보지 못한 간고한 길을 걸어왔지만 사실 더 힘든 투쟁은 앞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지금 우리의 전진을 저해하는 주객관적 요인들은 만만치 않다."
<'필승의 신심을 안고 부닥치는 난관을 웃으며 헤쳐나가자', 노동신문 사설 (2024년 9월)>
2021년 제8차 노동당대회의 계획들을 순차적으로 달성해 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압록강 지역에 대규모 홍수가 났음에도 자력갱생으로 극복할 수 있다며 외부 지원을 거부하고 있는 북한이 실제로는 매우 힘든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은 이례적입니다.
북한이 이렇게 스스로 난관을 인정한 것을 보면, 주민들의 어려운 상태를 더 이상 감출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1998년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주민 생활이 피폐해진 상황에서, 차라리 난관을 인정하고 솔직하게 주민들을 독려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안정식 북한전문기자 cs7922@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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