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의료관광 잠재적 블루칩, 시험관아기시술

난임전문의 조정현 2024. 9. 13.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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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전문의 조정현의 생식이야기] 성형수술 다음은 난임 시술?
난임 치료는 부부가 함께 해야 효과가 좋다. [Gettyimage]
요즘 지방자치단체마다 의료관광 육성 의지가 대단하다. 병원들도 해외에서 열리는 의료 엑스포에 적극 참여하고 의료관광 상품을 개발하는 등 해외시장 개척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의 의료관광산업(이하 K-의료관광)이 빛 좋은 개살구일 수밖에 없는 것은 시장이 성형수술에 편중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시험관아기시술(IVF) 기술력은 선진국 수준이다. 그런데 K-의료관광 범주에 들어가기 어렵다. 시술비가 고가인 데다 환율까지 올라 외국인들에게 진입장벽이 더 높아졌다.

더구나 IVF는 한 달 안에 시술을 끝내고 관광과 맛집 투어를 즐기다 갈 수 있는 의료 상품도 아니다. 성형수술이나 피부과 시술이야 치료와 회복에 짧은 기간이 소요되지만, 난임 치료와 시술은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2년 넘게 걸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병원 진료와 시술을 받기 위해 관광비자를 발급받았다 치자. 관광비자의 경우 단수비자(1회 방문)이므로 90일간 체류할 수 있다. 90일이면 IVF 특성상 1회 정도밖에 할 수 없다. 치료를 위한 충분한 체류시간을 보장받기 힘들다.

그렇다고 의료관광비자(장기비자 1년 이내)를 발급받는 것도 생각처럼 쉽지 않다. 체류하는 동안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는 충분한 재정 능력을 증명하지 않으면 불가능에 가깝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국의 난임병원에 시술을 목적으로 방문하는 환자는 대부분 한국에 일가친척이 있는 재외 교포이거나 한국인 배우자를 둔 외국인이다.

아쉬운 IVF 체류 기간

해외 교포는 한국에서 IVF를 받는 것이 훨씬 유리할 수 있다. 본가나 처가에서 체류하면 체류 비용을 줄일 수 있고, 그동안 못 먹었던 집밥을 마음껏 먹을 수 있어 심적으로 안정감을 찾을 수 있다. 정부가 제공하는 여러 지원과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고향(고국)에 와서 가족과 친척, 친구를 만나 행복감을 느끼고 아기까지 만들어 돌아가는 행운의 주인공이 적지 않다.

한번은 필자와 의대 동창이던 여성에게서 전화가 왔다. 호주에 사는 아들 내외가 입국해 3주간 머무르는데 며느리가 1년 내내 무월경(다낭성난소증후군이었다)이어서 병원 진료가 시급하다고 했다. 동창을 시켜 이 며느리에게 '한국에 오기 한 달 전부터 피임약을 먹고 월경 시작 3일째에 병원을 방문하라'고 전했다. 다행히 월경 11일째에 난자 20여 알이 자라 이를 채취할 수 있었고, 체외에서 5일간 배양한 수정란(배아) 10개를 모두 냉동시켰다. 당장 호주로 돌아가야 해서 신선배아이식을 진행하지 않고 배아를 동결 보존하고 다음을 기약한 것이다.

다음 해에 냉동배아를 이식하기 위해 호주에서 다시 한국에 왔다. 체류 3일째에 냉동배아를 이식하고 4일 후 호주로 되돌아갔다. 얼마 후 호주에서 낭보가 날아왔다. 임신이 됐다는 소식이었다.
[Gettyimage]
‌필자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은 외국인이 있다. 러시아 하바롭스크에 사는 여성이다. 한국에서 IVF를 7차례나 했지만 실패한 그녀가 본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를 찾았다. 특별한 이상이 없었다. 이틀 뒤 비행기를 타야 하는 그녀에게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검사를 권했다. 자궁경 검사다.

세상에나. 자궁 속은 마치 큰 통나무가 세로로 길게 누워 있는 것 같은 모양이었다. 이렇게 기이한 자궁 내 폴립은 처음 봤다. 그동안 많은 의사가 이걸 알아내지 못한 이유는 폴립이 자궁내막과 같은 재질이어서 두꺼운 자궁내막으로 보인 데 있다. 필자는 자궁경으로 자궁 내 폴립을 깨끗하게 제거했다. 하바롭스크로 돌아간 그녀에게서 몇 달 후 자연임신이 됐다는 소식이 왔다.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IVF를 받기 위한 기간은 몇 달이면 충분할까. 이런저런 변수(실패 등)를 감안해서 최소한 6개월은 보장해야 한다.

사실 IVF는 월경 시작일을 출발점으로 16~17일이면 끝난다. 그리고 2주 정도 후에 피검사로 임신 여부를 판정하게 된다. 따라서 IVF를 위해 걸리는 시간은 30일이면 된다. 하지만 임신이 안 되면 월경을 한 후 동결배아를 이식받는 냉동배아 이식에 도전해야 한다. 냉동배아 이식을 하면 월경일로부터 30일 안에 임신 여부를 판정받을 수 있다. 만약 냉동된 배아가 없다면 1~2개월 쉬고 다시 IVF에 도전해야 한다. 요즘은 노령 산모가 많아 과배란 주사를 1주일간 맞고 난자를 채취하고 수정시켜 자궁 내 이식하는 IVF를 할 때도 있다.

‌여성은 여러 차례 병원 방문 진료와 시술을 거쳐야 한다. 난소에서 난자를 키워야 하고, 난자를 채취해야 한다. 수정란(배아)을 자궁 내로 이식받을 때까지 적어도 7~10회 방문 진료를 받아야 한다. IVF로 임신에 성공하더라도 초음파검사에서 아기집과 심장박동 소리까지 들어야 비로소 난임병원을 졸업할 수 있다. 그러니 단순히 관광 차원에서 보름에서 한 달간 국내에 체류하며 IVF를 받기란 힘들다.

또한 뜻밖의 사실, 즉 상상할 수 없는 변수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 정상적인 부부 생활을 했음에도 수년간 임신이 안 된 난임부부 상당수는 남성 쪽 문제(무정자증, 희소정자증 등) 혹은 생식기 질환(자궁내막증, 자궁선근증, 자궁근종 등)을 갖고 있을 확률이 높다. 이런 경우에는 임신 성공을 위해 치료부터 받아야 한다. 여성마다 몸속 사정이 다르다 보니 난임 치료 기간이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혼자 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임신을 위한 시술이다 보니 반드시 부부가 함께 병원에 와야 남녀 모두 검사를 통해 남성 쪽 문제(정자 검사 및 생식력)까지 확인할 수 있다. 정자 채취를 통해 IVF까지 마칠 수 있다.

선진국 수준의 IVF 기술력

IVF를 위해 한국행을 고집하는 환자가 더러 있다. 차별화된 기술력에 대한 기대가 의료관광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다. 고가의 시술비가 들어도 한국에서 IVF를 받으려고 하는 이유는 자신의 나라에서는 하지 못하는 첨단 시술이 한국의 난임병원에서는 가능해서다.

출산율 하락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 현상이다. 난임 전문의로서 아기를 낳으려는 부부에게 임신의 기쁨을 안길 수만 있다면 국적을 막론하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싶다. IVF를 하기 위해 한국행 비행기를 타려는 외국인이 여러 부분에서 부담을 덜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글로벌 영향력을 고려해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 주기를 바란다. 항상 강조하지만 정부가 국민의 의식과 현실의 속도에 조금만 더 발맞추고 나아간다면 한국의 미래는 눈부시게 밝을 것이다.
조정현
●연세대 의대 졸업
●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

난임전문의 조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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