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전쟁에… 7년전 발표한 소설속 주인공이 생각났어요”

장상민 기자 2024. 9. 13.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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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만들어낸 인물들은 계절이 바뀌거나 어떤 거리를 지날 때면 제 곁에 찾아와요."

서울 중구 문화일보사에서 최근 만난 그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은 인터뷰집 '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ㅁ)를 읽고 집필을 결심했을 때 2017년 발표했던 단편 '빛의 호위'(창비) 속 주인공들이 떠올랐다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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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과 멜로디’ 펴낸 조해진 작가
전쟁 사진작가 7년후 삶 그려
“고통을 말하는것 후회 안해요”
조해진 작가는 “모두의 삶이 파괴되는 전쟁 속에서 승전과 패전은 의미가 없다”며 “전쟁이 아무 쓸모 없다는 사실을 잊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윤성호 기자

“제가 만들어낸 인물들은 계절이 바뀌거나 어떤 거리를 지날 때면 제 곁에 찾아와요.”

탈북자, 난민, 성 소수자, 노숙자 등 사회가 말하는 성공의 자리에서 비켜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담아 온 소설가 조해진이 5년 만에 장편소설 ‘빛과 멜로디’(문학동네)로 돌아왔다. 조 작가의 새 작품은 전쟁의 무용함을 이야기한다. 서울 중구 문화일보사에서 최근 만난 그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은 인터뷰집 ‘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ㅁ)를 읽고 집필을 결심했을 때 2017년 발표했던 단편 ‘빛의 호위’(창비) 속 주인공들이 떠올랐다고 이야기했다.

단편은 전쟁 현장을 카메라에 담는 사진작가 ‘권은’과 그를 인터뷰하게 된 문화부 기자 ‘승준’의 이야기다. 권은은 인터뷰에서 불우했던 자신을 계속 살 수 있도록 해 준 것이 동창으로부터 건네받은 필름 카메라였다고 말한다. 승준은 뒤늦게야 자신이 권은에게 카메라를 건네준 학급반장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장편은 그로부터 7년 뒤의 이야기이다. 권은은 인터뷰 후 전쟁 현장 촬영을 이어가던 중 사고로 인해 한쪽 다리를 잃는다. 승준은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

승준의 마음은 복잡하다. 자신이 건넨 카메라가 권은에게 삶을 버티게 했고 끝내 다리를 잃게 만들었음에 죄책감을 느낀다. 승준은 권은에게 직접적으로 묻는 대신 이제 막 태어난 자신의 아이가 미래에 읽어볼 수 있는 편지를 써달라는 부탁을 남긴다. 고민 끝에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은 권은은 런던에서 함께 지내게 된 살마, 나스차 등 전쟁 난민들의 이야기와 그들을 만났던 자신의 삶을 천천히 풀어낸다.

소설 속에서 권은에게 묻고 싶은 것은 결국 한 가지로 압축된다. 계속 산 것을, 카메라를 들게 된 것을 후회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같은 질문을 작가에게 던졌다. 그는 “소설을 쓰게 된 것을, 삶의 고통을 담아내게 된 것을 후회했던 적은 단 한 순간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승준과 권은을 다시 연결하고 셀마에게 거주지를 내어주는 영국인 애나와 권은을 연결해주며 마침내 권은과 승준의 아이를 세대를 넘어 이어주는 것은 글이에요. 윤영호, 윤지영 작가가 쓴 인터뷰집을 읽고 저도 이 글을 쓸 수 있게 됐죠. 직접적 관계를 맺지 않은 사람들이 서로를 살아가도록 만들어요. 그러니 글을 쓰게 된 것을 후회할 수 없죠.”

2004년 등단한 조 작가는 올해 등단 20주년을 맞았다.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며 놀라는 그에게 소회를 물었다. 조 작가는 “저마다 삶에서 느끼는 박탈감과 고통이 보다 커져서 함께 무엇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 어려워진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먼저 표했다. “하지만 제가 지난 소설에서 만들어낸 인물들을 불러내 그들이 타인을 살리는 삶을 살고 있음을 썼듯이 독자들이 소설 속 인물들을 문득 떠올릴 수 있다면 조금 다른 세상도 가능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믿어보고 싶어요.”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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