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지옥을 겪은 ‘홈리스’가 만든 기적
예비 선수 테스트 경기, 4박5일 합숙 등 선발 과정 집중 취재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몇 년인지, 몇 월인지도 기억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요일만 기억에 남았다. 아침에 일하러 나간 아버지는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2010년대 후반, 나라는 내전 중이었다. 어머니는 병으로 돌아가셨다. 형제는 없었기에, 카메룬에는 더 이상 집도 가족도 없었다. 한국에 온 27살 포시 완지가 떠올린 고향의 기억이다.
①전쟁과 지옥: 피란과 고립
전쟁의 전리품이 또 다른 전쟁을 낳았다. 독일이 점령하던 카메룬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과 프랑스에 넘어갔다. 유럽의 두 나라가 영토를 나눈 것이 내전의 씨앗이 됐다. 2016년, 영어권 지역의 교사들이 도로와 같은 도시 기반 시설을 요구하고 나섰다. 카메룬 정부는 군을 이용해 무력으로 진압했다. 이에 분노한 영어권 지역 주민들은 2017년 ‘암바조니아’라는 무장단체를 결성해 대응하기 시작했다.
완지는 카메룬 서북부 영어권 지역의 중심인 ‘바멘다’ 옆에 있는 ‘밤빌리’라는 도시에 살았다. 그가 어렸을 때만 해도 그곳엔 집이 있었고 가족이 있었다. “마을의 모두가 가족이었어요. 모두가 서로 알고 지내고 항상 어울렸거든요. 농사도 같이 지었고요. 정말 행복했지만, 다 옛일이 됐죠. 전쟁 때문에.” 완지가 말했다. 2016년 이후 카메룬에서 내전으로 6천 명 이상이 숨졌다. 완지와 같은 피란민은 100만 명 이상 발생했다.
전쟁 이후 가족은 찢어졌다. 아버지까지 소식이 끊기면서 완지가 살던 곳도 안전하지 않았다. 카메룬과 국경을 맞댄 가봉으로 넘어갔지만, 그곳은 외국인에 대한 혐오가 심했다. 지인의 도움을 얻어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완지가 한국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다른 선택지가 없었을 뿐이다.
내전이 없는 나라에도 전쟁 같은 지옥은 있다. 김성준(25)이 태어나 가장 처음 기억하는 장면은 지옥으로 들어가는 문이었다. 20여 년 전 그는 미키마우스가 그려진 가방을 멨다. 그날은 영아원에서 나와 보육원에 가는 날이었다. 보육원에 들어간 첫날, 다섯 살 성준은 형들에게 이유 없이 맞았다.
“앞으로 가.” 성준이 앞으로 갔다. “왼손으로 때려.” 성준이 왼손을 들어 친구를 때렸다. 여섯 살 때였다. 함께 사는 형들은 성준에게 체스 말처럼 명령했다. 따르지 않으면 맞았다. 옷걸이로 맞고 옷장에 있는 봉으로 맞았다. 도구가 없으면 주먹으로 맞았다. 축구에 져서 맞고 내기에 져도 맞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눈을 감을 때까지 맞았다. ‘어떻게 하면 안 맞을 수 있을까.’ 성준의 머릿속엔 이 생각만 가득했다. 자살을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졌다.
부모는 성준이 태어난 직후 이혼했다. 그리고 떠났다. 성준은 영아원에 홀로 남겨졌다. 성준이 부모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건 고등학생 때였다. 휴대전화를 바꾸기 위해 발급받은 가족증명서의 ‘부’와 ‘모’ 칸에 처음 보는 이름이 있었다. 그 이름을 보면서 한참을 울었다. 보육원 교사는 그 서류에 나온 사람이 엄마와 아빠라고 했다. 부모 사진도 찾았지만 연락은 하지 못했다.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차피 또 버림받을 게 뻔하다, 이런 생각을 한 거죠. 그 후에도 찾진 않았어요. 포기했어요.” 성준이 말했다.
②공항에 갇힌 1년
“한국은 무슨 목적으로 방문했습니까?”
“여행하러 왔습니다.”
“어디서 지내십니까?”
인천공항 출입국심사대에 선 완지는 이어지는 직원의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전쟁을 피해 완지가 한국으로 온 건 2022년 10월 말이었다. 그러나 온전히 한국 땅을 밟기는 쉽지 않았다. 공항에서 난민 심사 불회부 결정을 받고 입국하지 못했다. 한국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으려면 난민 심사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이 심사대에 오르는 것도 심사한다. 예비심사다. 완지는 이 예비심사도 통과하지 못했다.
어떤 상황인지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입국하지 못한다는 건 명확했다. 이때 완지의 눈에 ‘UNHCR’(유엔난민기구)라는 글자와 전화번호가 들어왔다. UNHCR에선 완지처럼 입국이 거절된 난민이 연락하면 공익법센터 ‘어필’ 같은 곳에 연락을 준다. 어필의 이종찬 변호사가 완지를 만난 건 2022년 11월이었다.
완지는 어필의 도움을 받아 난민 심사 불회부 결정 취소 소송을 냈지만 1심에서 졌다. 비자를 받으려고 거짓으로 작성한 서류가 발목을 잡았다. 법원은 완지가 처한 상황과 서류가 맞지 않는다고 했다. 이 과정까지만 해도 수개월이 걸렸다.
완지가 들어온 2022년, 391건의 난민신청이 있었다. 이 가운데 223건이 회부됐고, 154건이 불회부됐다. 절반 가까이가 예비심사에서 떨어지는 것이다. 예비심사이기 때문에 변호사의 도움을 받으면 대부분 소송에서 승소하지만, 변호사와 연결되는 것 자체도 어렵다. UNHCR 핫라인으로 도움을 먼저 청해야 하고, 청한다고 해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변호사단체가 한정적이다. 그래서 대부분은 불회부 결정이 나면 돌아간다. 특히 수개월에 걸친 재판을 거쳐 1심에서 지면 남아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완지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항소심까지 제기했고, 공항에 머문 시간은 1년이 다 돼갔다. “그냥 계속 울었어요. 다른 방법이 없었거든요. 제가 있던 나라에서 모든 것을 잃었기 때문에 돌아갈 곳이 없었어요. 한국이 원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저는 선택지가 없었어요. 그곳에 머무는 것밖에.” 완지가 말했다.
현실의 공항은 영화 ‘터미널’ 같지 않았다. 완지는 작은 사무실만 한 공간에서 러시아 난민들과 함께 지냈다. 완지가 입국한 2022년 10월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 난민이 입국한 시기였다. 바닥에 담요를 깔고 상자로 칸막이를 만들어 지냈다. 공항에서 받을 수 있는 음식은 주스와 빵이 유일했다. 가끔 기내식도 나왔다. 공항에서 러시아 난민들이 열악한 상황에서 머무는 이야기가 보도되자 국가인권위원회는 난민들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을 법무부에 권고했다. “애초에 수개월도 견디기 힘든 곳이에요. 심지어 2터미널이거든요. 1터미널은 환승 구역이라도 움직일 수 있지만 2터미널은 좁은 출국대기실에 계속 머물러야 해요. 벗어나는 순간 입국으로 되기 때문이에요. 그 좁은 곳에서 1년을 버틴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거죠.”(이종찬 변호사)
그렇게 반년이 지났을 때 아메산 폴(22)을 만났다. 코트디부아르 출신의 폴은 내전 때문에 아버지를 잃고 다른 나라를 전전하다 한국까지 오게 됐다.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싱가포르에 갔지만 입국이 거절됐다. 싱가포르에서 코트디부아르로 가는 길 환승지가 한국의 인천공항이었다.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코트디부아르로 돌아갈 수 없는 폴의 입장에선 인천이 벼랑 끝이었다. 폴도 완지처럼 난민 심사 불회부 결정을 받고 6개월 정도 공항에 머무르며 어필의 도움으로 소송을 진행했다. 완지는 2심에서, 폴은 1심에서 이겨 공항에서 나올 수 있었다. 6개월짜리 임시 체류 자격이다. 지금은 난민 인정 신청을 한 상태다. 다만 본 심사에서 난민으로 인정받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2023년 난민 인정률은 1.53%에 그쳤다.
완지와 폴은 국제난민지원단체인 ‘피난처’의 도움을 받아 매주 주말 축구를 했다. 폴은 코트디부아르에 있을 때도 아마추어 축구선수였다. 완지는 축구를 본격적으로 배우지 않았지만, 어렸을 때부터 늘 축구 하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가장 좋아하는 축구선수가 손흥민이다. 그러던 중 ‘피난처’에서 홈리스월드컵 개최 소식 듣고 폴과 완지에게 제안했다. 폴은 “선수가 되기 위해”, 완지는 “많은 관중 앞에서 즐기기 위해” 대표팀에 지원했다.
③피난처인 할머니와의 이별
보육원이라는 지옥에서 성준의 유일한 피난처이자 가족은 보육원 원장인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성준에게 엄마였고 가족이었으며 집이었다. 폭력을 피하기 위해 할머니가 사는 집이나 할머니가 데려간 교회를 자주 찾았다. 식물을 좋아하는 할머니의 영향을 받아 고등학교도 원예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사춘기 시절 공부를 아예 하지 않고 불만만 많던 성준에게 할머니는 늘 이렇게 말했다. “성준아, 세상에 늘 감사하면서 살아라. 겸손하게 살 줄 알아야 된다.”
할머니의 인도에 성준은 고등학교 때 점차 마음을 다잡았다. 학교도 열심히 나가고 반장도 맡았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마치고 2018년 조경학과가 있는 남해대에 진학했다. 대학에 가서도 할머니와는 매일 연락했다. 하지만 연락이 뜸해진 뒤인 2019년 7월24일, 문자가 하나 왔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할머니의 죽음은 성준에겐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 그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다른 역경이 찾아왔다. 그해 겨울,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한 골프장에서 벙커에 약을 뿌린 줄 모르고 들어갔다가 피부가 뒤집어졌다.
“알레르기 반응입니다.”
병원에선 특정 나무 근처에 가지 말라고 했다. 모래 벙커에 뿌린 약 때문에 나무에 가까이 가면 피부 반응이 생기는 모양이었다. 집 근처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나무였다. 피부에서 계속 두드러기가 나고 피가 났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해왔던 조경을 다시는 못한다는 생각에 삶이 무너진 것 같았다. 한동안 방에서만 생활했다. 근처에 사는 친구가 가끔 와서 라면을 끓여줬다. 가끔 밖으로 나가긴 했지만 금세 다시 돌아왔다. 그렇게 1년 넘게 고립 생활을 했다. 그렇게 살던 성준을 밖으로 이끈 건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동생 김영환이었다. 성준이 고립 생활을 이어가던 2021년, 영환이 말했다.
“사회복지과로 온나.”
영환은 2019년 영국 카디프에서 열린 홈리스월드컵에 한국 대표팀으로 참여한 선수다. 성준은 영환과 동네 친구들이 어느 날 갑자기 태극마크를 달고 대회에 나갔던 것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매일 보던 친구들인데 달라 보였다. 진짜 축구선수를 보는 것 같기도 했고, 몸에서 빛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특히 친구 중에 대장 격이던 영환이가 월드컵을 경험하고 180도 달라진 것도 봤다. 성준은 영환이 두 살 아래 동생인데도 존경의 마음을 담아 형이라 불렀다. 그리고 언젠가는 영환처럼 홈리스월드컵에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영환은 2019년 자립준비청년이었다. ‘호통 판사’로 알려진 천종호 부산지법 부장판사가 위기청소년을 위해 만든 축구팀 ‘만사소년FC’라는 팀에서만 홈리스월드컵 대표선수 8명 중 5명이 선발됐는데, 5명 중 1명이 영환이었다. 홈리스월드컵에 다녀온 영환은 어려서부터 알고 지낸 성준을 만사소년FC에 데려왔다.
성준은 영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사회복지학과에 다시 입학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고립된 생활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3년 뒤, 성준에게도 기회가 왔다. “성준아 홈리스월드컵 한국에서 한다는데 해볼래?” 2024년 어느 날 만사소년FC 실장이 물었다. 성준이 답했다. “네! 저 신청할래요!”
④도전: ‘마르세유 턴’을 성공하다
아시아 최초로 9월21일부터 28일까지 서울 한양대에서 열리는 제19회 홈리스월드컵에 출전할 한국 대표팀 선발이 2024년 5월 시작됐다. 거리 노숙을 경험한 사람, 경제적 빈곤으로 월세를 내지 못하는 사람, 성인이 됐지만 독립하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사람, 자립준비청년, 보육원 등 시설 거주 청소년이나 청년, 보호처분 시설에 거주하거나 한부모 가정의 위기 청소년, 난민, 중독 치료시설에서 거주하는 사람 등이 지원했다. 감독의 1차 화상 면접을 거쳐 2024년 7월13일, 서울 도봉구의 한 실내 풋살장에 예비 선수들이 모였다.
“우와….” “다르긴 다르네.” 뒤늦게 등장한 2명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다. 건장한 체격의 완지와 폴이 움직이고 슛을 할 때마다 다른 선수들의 탄성이 절로 나왔다. 확실히 완지와 폴은 실력이 한 수 위였다. 그러나 홈리스월드컵은 무조건 축구 실력으로만 뽑는 건 아니다. 감독의 기준은 확실했다. 대회를 통해 희망을 얻고 새로운 기회로 만들 사람을 찾았다. 또 개인이 아닌 팀으로도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선수여야 했다. 무조건 이기기 위한 대회가 아니어서다.
수도권 2차 테스트가 열린 다음날, 경남 김해에서도 테스트가 열렸다. 누구보다 간절했던 성준은 다 쏟아내겠다는 생각으로 경기장으로 향했다. 실수하면 떨어질 거라는 생각에 긴장감도 팽배했다. 긴장과 설렘이 뒤섞인 테스트가 끝났다. 감독이 말했다. “마지막으로 더 해보고 싶은 것 있는 사람?” 감독의 말에 성준이 유일하게 손을 들었다. 축구를 하면서 가장 자신 있는 개인기를 보여주겠다고 생각했다. 프랑스 축구 영웅 지네딘 지단의 트레이드마크로 불리는 ‘마르세유 턴’이었다. 간절한 마음이 통했는지, 모두가 보는 앞에서 멋지게 성공했다.
테스트가 진행된 지 2주가 지난 7월29일, 서울 성수동의 한 회의실에 ㄷ자로 배치된 책상에 13명이 둘러앉았다. 11명의 홈리스월드컵 대표팀 예비 선수와 감독, 코치가 처음 만나는 자리다. 완지와 폴, 성준도 있었다. “여기 앞에 카드가 100장 있어요. 이 카드를 보면서 각자 3장씩 골라보세요.” 선수단 매니저 역할을 맡은 홈리스월드컵 조직위원회 사무국 이가영 팀장이 말했다. 100장의 카드에는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하나씩 적혀 있었다. 사무국은 예비 선수들에게 카드를 뽑은 뒤 그 카드를 뽑은 이유를 설명하면서 자기소개를 하게 했다. 먼저 성준이 나섰다. 그가 고른 카드는 ‘모르겠다’ ‘나른하다’ ‘멍하다’였다.
“저는요. 이 카드 고른 이유는 진짜 몰라서. 저를 잘 모른다. 지금 제 상태는 나른하다. 제가 지금까지 일하고 나서 쉬는 시간 학교 실습 때문에 쉬고 있는데 나른해서. 그리고 한편으로는 멍하다, 이건 저인 거 같아요. 항상 멍한 상태에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완지는 가장 마지막에 나섰다. “나는 농담하고 노는 걸 좋아해요. 나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나는 딱 이 세 가지로 표현할 수 있어. 쌈박하다, 미안하다, 개운하다. 농담하고 놀기 좋아해서 쌈박하고, 그리고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편이라 미리 미안하고. 그리고 그렇게 얘기를 하니까 개운하고.” 성준과 다른 선수들이 어색한 박수를 보냈다.”
이날 모인 11명은 완지를 포함한 난민 2명과 성준을 포함한 자립준비청년 4명, 위기청소년 4명, 장애인 1명이다. 젊은 선수들 위주로 팀을 구성하겠다는 감독의 기조에 맞춰 대부분 10~20대가 뽑혔지만, 지적장애를 지닌 정성덕(50)도 예비 엔트리에 포함됐다. 그는 수도권 테스트 연습경기 때 유일하게 득점했다. 늘 웃음을 잃지 않지만, 축구만 하면 무섭게 집중한다. 일주일에 3번은 운동할 정도로 축구를 좋아한다.
자립준비청년 중 성준을 제외한 3명은 모두 23살 동갑이다. 홍승우, 정혜세는 어렸을 때부터 같은 보육원에서 자란 친구다. 광주광역시에서 올라온 김재민은 성준처럼 2023년 홈리스월드컵에 참여한 친구들의 추천을 받아 홈리스월드컵에 참여했다. 위기청소년 이재성(17), 박진우(17), 남제냐(16)는 성준처럼 만사소년FC의 추천을 받아 지원했다. 유찬혁(19)은 2023년 출전한 차광환과 같은 쉼터에서 추천받았다. 모두가 살아온 배경은 다르지만, 축구를 좋아하는 마음만은 같았다.
2015년 처음 감독을 맡은 뒤 이번 월드컵이 4번째 출전인 이한별 감독이 입을 열었다. “제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선수들과의 관계입니다. 다 각자 사연이 있을 텐데, 이런 자리의 만남으로 생기는 관계로 여러분들에게 위로를 주고 싶은 마음이 커요. 또 홈리스월드컵의 취지가 희망인 만큼, 여러분 모두가 저와 함께 희망찬 대회를 준비했으면 좋겠어요. 물론 대회 이후에도 여러분 삶이 희망찼으면 좋겠고요.” 4박5일, 8명의 대표팀 선수 최종명단을 선발하기 위한 1차 합숙훈련이 서울과 경기 인근을 오가며 시작됐다.
⑤합숙: 너와 나의 이야기가 ‘우리’ 기억으로
‘삐익.’ 합숙 2일차, 공격과 수비로 나눠 연습하던 중간에 감독이 휘슬을 불었다. “잠깐만. 삼각형을 만들라고 했잖아. 움직임이 너무 많아. 볼을 주고 가만히 있어, 수비가 움직이게끔. 이해했어? 성준이 너도, 볼을 가지고 소유해. 수비가 실수하는 타이밍에 들어가는 거야.” 감독의 말이 끝나자 성준과 완지, 제냐가 공격 대형을 만들어 공을 돌리기 시작했다.
홈리스월드컵은 골키퍼까지 4명이 출전한다. 전후반 7분씩 14분을 뛰는데 득점이 많이 나온다. 일부러 득점이 많이 나오도록 규칙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공이 중앙선을 넘어가면 수비하는 팀 선수 한 명은 넘어올 수 없다. 무조건 공격 3명 대 수비 2명의 구도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진지한 얼굴로 훈련하던 선수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쉬는 시간 완지가 승우의 다리 사이로 공을 넣고 도망쳤다. 쫓아가는 승우를 보며 다 같이 웃었다.
토트넘 선수들과의 만남, 경복궁 투어…,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다 같이 보내는 마지막 밤, 숙소 로비에 선수들이 모였다. 이 감독의 제안에 각자 쌓아뒀던 이야기를 풀었다. 성준이는 조경의 길을 걷던 2019년 알레르기가 생기며 사회와 고립됐던 이야기를 했다. 승우는 보육원에서 사회에 나와 트레이너로 일하며 홀로 서왔던 이야기를 했다. 각자의 내밀한 이야기는 서로에게 귀감이 됐다. 승우는 성준을 이해했고, 진우는 승우를 보며 트레이너를 꿈꿨다.
합숙 5일차 오후, 서울 용산구의 한 풋살장에 감독과 코치, 선수들이 모였다. 한국을 찾은 바이에른 뮌헨 코치진과 만나 일일 강습을 받았다. 김민재는 보지 못했지만 사인이 담긴 유니폼을 받고 선수들이 돌아가며 사진을 찍었다. 뜨거운 땡볕에서 연습을 마친 선수들이 땀범벅으로 둥글게 원을 그리고 섰다. 이 감독이 선수들을 쭉 둘러본 뒤 말문을 열었다.
“이것으로 1차 합숙은 모든 행사가 끝났습니다. 재밌었어?”
“네!”
누구는 크게, 누구는 조용히 외쳤다. 완지와 폴은 조용히 듣고 있었다. 감독이 말을 이었다.
“이제 8명의 한국 대표팀을 선발합니다. 여기서 8명 안에 드는 사람도 있을 거고 들지 못하는 선수도 있을 거야. 그런 부분에 대해 아쉬울 순 있지만 기회는 또 있을 수 있어. 어디서든 우리는 계속해서 서포트하고 도와줄 테니까. 언제든 연락하고 그런 사이가 됐으면 좋겠다.” 감독의 말을 듣던 성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소감을 말했다. 성준은 마지막 순서였다. “자기 내면에 숨겨놓은 기억을 자신감 있게 말해줘서 고맙고, 코치님과 감독님, 팀장님 감사합니다.” 이가영 팀장까지 소감을 털어낸 뒤에, 합숙 기간 임시 주장을 맡은 성준이 구령을 붙였다.
“차렷, 경례.”
“수고하셨습니다.”
⑥새로운 시작: 조립식 가족의 탄생
선수들은 해산했지만 코치진과 감독, 이가영 팀장이 남아 마지막 회의에 돌입했다. 한국 대표팀 선수 8명을 최종 선발하기 위한 회의다. 이 감독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어제 진우랑 혜세는 개인적으로 면담했어요. 진우는 합숙 내내 노출에 부담을 느끼는 부분이 있었고, 혜세는 취업했다고 하더라고요. 자기가 가고 싶은 공공기관인데 대회 기간 빠질 수 있는지 알아본다고 했어요.” 회의는 한 시간 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다.
따르릉. 성준의 휴대전화에 이가영 팀장의 이름이 떴다. 합숙 관련 교통비 지급을 위해 버스 영수증을 달라는 전화인 줄 알았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건 성준이 그토록 바라던 소식이었다. “성준아, 너 됐다.”
‘됐다’는 단어를 듣자마자 성준이 미친 듯 소리를 질렀다. “와아아아!” 그렇게 바라던 국가대표다. 두근거리는 가슴이 진정되고 나서야 뭉클한 감정이 올라왔다. 같은 날 합격 통보를 받은 완지도 기쁜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홈리스월드컵 한국 대표팀에 난민이 포함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떨어진 3명은 폴과 진우, 혜세였다. 프랑스어만 가능한 폴은 합숙 내내 선수단과 어울리지 못했다. 축구 실력은 가장 뛰어났지만 감독이 원하는 건 그게 아니었다. 합숙 내내 폴을 챙긴 건 유일하게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완지였다. 한 팀으로 갈 순 없었다. 원하던 직장에 합격한 혜세와 노출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던 진우도 최종적으로는 함께하지 못했다.
김성준, 김재민, 남제냐, 유찬혁, 이재성, 정성덕, 홍승우, 포시 완지. 2024년 홈리스월드컵 한국 대표팀 명단이다. 임시 주장이던 성준은 정식 주장이 됐다. 대표팀은 9월1일부터 일주일 동안 2차 합숙을 진행한 뒤 9월21일부터 월드컵에 참여한다. 약 두 달 동안의 대회 준비, 일주일 동안의 대회를 겪으며 선수들은 무엇을 얻을까. 완지는 이미 중요한 걸 얻었다. “합숙 기간 동안 모두가 나를 친구로, 가족으로 대해줬어요.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이 아니라 똑같은 사람으로 대했어요. 한국에 머무는 동안 최고의 한 주였어요. 그때만큼은 이곳이 카메룬 같았어요. 더 이상 잘 설명을 못하겠네요. 그냥 가족이에요.”
난민과 장애인, 자립준비청년 그리고 위기청소년. 희한한 조합이 모인 이 가족의 월드컵 도전은 이제 시작이다.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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