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의 지워진 목소리 [코즈모폴리턴]

김미나 기자 2024. 9. 13.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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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 전달에 밀려 흘려보낸 기사가 있었다.

지워져 가는 목소리에 대한 것이다.

노래를 부르거나 책을 소리 내 읽는 것도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여성들은 합창하는 영상을 공개하면서 "목소리는 더 강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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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소녀들이 지난 3월25일 바다흐샨주 파이자바드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다. 파이자바드/AFP 연합뉴스

김미나 | 국제뉴스팀장

가자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 전달에 밀려 흘려보낸 기사가 있었다. 지워져 가는 목소리에 대한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내각이 지난달 21일(현지시각) “미덕을 장려하고 악행을 방지한다”는 이유로 새로운 법률을 공포했다. 특히 여성들의 사회생활 전반을 통제하는 것이 그 목표였다.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공개한 114쪽 분량의 법안에 따라 탈레반의 도덕경찰은 공공장소에서의 아프가니스탄 시민들 삶을 규제할 수 있게 됐다. 여성의 얼굴과 목소리가 공공장소에서는 “악”과 “유혹”으로 규정됐다. 법안은 “성인 여성이 부득이하게 집에서 외출할 때는 목소리와 얼굴, 신체를 숨길 의무가 있다”고 명시했다. 가령 여성이 남성 가족과 동행하지 않을 경우 행선지를 말할 수 없기에 택시를 이용하지 못한다. 노래를 부르거나 책을 소리 내 읽는 것도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개인이 공개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행위”를 저지를 경우 최대 3일간 투옥될 수 있다.

“우리에겐 더 이상 여성의 목소리를 들을 권리가 없습니다.” 셰케바 하셰미 자유 아프가니스탄 대표가 말했다. 프랑스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아프가니스탄 여성교육 채널 베굼 티브이의 하미다 아만 대표는 “우리에게 허용된 유일한 권리는 숨을 쉬는 것뿐”이라고 했다. 샤바나(가명)는 영국 비비시(BBC) 방송에 “말할 수 없다면 왜 살아야 할까요? 우리는 움직이는 시체와 같아요”라고 말했다.

유엔과 유럽연합(EU), 전세계 인권단체들이 “여성과 소녀의 권리에 대한 공격”이라고 우려를 나타냈지만, 탈레반 정부는 “법에 명시된 가치는 아프가니스탄 사회에서 받아들여진다.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이슬람법, 이른바 샤리아법 아래 도덕적 기준에 따라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할 정당성이 탈레반 정부에 있다는 것이다.

간단치 않은 역사적 맥락이 배경에 있다. 민병대 형태로 꾸려졌던 탈레반은 1996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처음 정권을 잡았다. 2001년 9·11 테러 배후인 알카에다와의 결탁을 이유로 그해 10월 미국의 침공을 받았고 막대한 희생을 치르며 20년간 이어진 전쟁 뒤, 탈레반 재집권 3년째에 접어들었다. 최근까지 아프가니스탄은 겉보기엔 지역 평화가 유지되고, 눈에 띄는 테러단체 활동이 없었고, 국경이 잘 지켜지는 듯했다. 지난 6월30일에는 탈레반이 처음 참석하는 인권 보호, 교육 증진을 위한 유엔 주도의 대화체도 마련됐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내부에선 서방 기준에 대한 반발심이 한층 커졌다고 연구자들은 주장한다. 아프가니스탄 젠더 문제 연구자인 멜리사 코르네는 “서방 국가들은 먼 나라의 여성 권리보다 안보 문제가 더 중요하다”며 “만약 그들이 (여성을 위한) 학교를 다시 연다면, 극보수주의자들은 국제사회에 대한 일종의 패배나 양보로 간주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이런 처지를 알리기 위해 노래하는 모습을 촬영한 뒤 온라인상에서 #렛어스이그지스트(#LetUsExist·우리가 존재하게 하라)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항의하고 있다. 여성들은 합창하는 영상을 공개하면서 “목소리는 더 강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의 목소리가 허공을 떠도는 메아리가 되지 않기를.

mi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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