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여름엔 달라야 한다 [세상읽기]
김인아 | 한양대 교수(직업환경의학)
한가위가 목전인데, 또 폭염 경보가 발령됐다. 지긋지긋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지속되는 더위 속, 올여름에도 안타까운 소식들이 기사로 전해졌다. 에어컨을 설치하던 20대의 젊은 노동자가 입사 이틀 만에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고, 산재 신청조차 어려운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감자 선별 작업 중 사망하기도 했다. 기사에도 나지 않은 많은 노동자들이 온열질환으로 사망했을 것이다.
올해 여름 서울의 한가운데에 있는 대학병원의 응급실에 오는 환자들을 한달여간 매일 살펴보았다. 거의 매일 노동자들이 온열질환으로 응급실을 찾았다. 다행히 사망에 이르거나 장기간 치료가 필요할 정도가 아니고 응급실에서 조치를 받은 뒤 당일 퇴원이 가능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자동차나 엘리베이터를 수리하다, 통신 중계 장비나 에어컨을 설치하다, 이삿짐이나 수산물을 나르다가, 식판을 씻거나 청소하다가 어지럼증을 느끼거나 근육 경련이 생겨서 병원을 찾았다. 매일 응급실을 찾는 100명의 환자 중 1명씩은 일하다 생긴 온열질환이었다. 전국의 응급실에서 이런 환자 중 누군가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실제로 이 중 일부가 산재로 승인받았다. 2022년 23건(사망 5건), 지난해 31건(사망 4건)이 산재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질병관리청에서 500개 병원의 참여 속에 운영하는 온열질환 감시체계를 통해서는 2022년 1564명의 온열질환자를 확인하였으며, 이 중 9명은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폭염 일수가 31일로 가장 길었던 2018년에는 4526명의 온열질환자를 확인할 수 있었고 이 중 48명이 사망했다. 80% 이상은 실외에서 발생했으나 20% 정도는 실내에서 발생했고, 45% 이상이 작업장에서 발생했다. 논이나 밭에서 발생한 예도 15% 정도였다. 즉, 온열질환은 실외에서만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작업장의 다양한 환경에서 발생하고 있었다. 건설노동자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도 아니다.
우리나라 자료는 없지만, 미국의 경우 온열질환 사망자 4명 중 3명이 일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 안 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중요하게 강조한다. 미국 직업안전보건청에서 발간한 사업주 책임에 대한 가이드라인에서 제일 먼저 강조되는 것은 고온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주라는 것이다. 새로 입사한 경우, 고온 환경에서 일하는 것이 처음인 경우, 휴가를 갔다가 복귀하는 경우처럼 지속해서 고온 환경에서 일한 것이 아니라면 근무 첫날은 동일 노동강도로 전체 근무시간의 20%를 넘지 않게 하고 그렇게 일했을 때 괜찮으면 매일 20%를 넘지 않게 근무시간을 증가시켜 5일째가 되는 금요일에 비로소 원래 근무시간의 100%를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 규칙으로 불리는 이 적응 과정을 물·그늘(실내인 경우 바람)·휴식보다 먼저 강조하고 있다.
그렇게 강조하는 물·그늘·휴식인데 이 역시 충분하지는 않다. 출장길에 마주한 도로변에 있던 건설근로자 쉼터는 위태로운 각목으로 기둥을 세우고 비닐로 천장과 벽을 만들어둔, 두세명이 서 있으면 꽉 찰 것 같은 곳이었다. 도심에서 떨어진 건설 현장에 휴식을 위한 공간은 있었지만, 그 안에 서 있으면 비닐하우스 안에 있는 것처럼 더 뜨겁기만 할 것 같았다.
지금과 같다면, 우리는 내년 여름에 또 비슷한 뉴스를 마주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흩어져 있는, 응급의료체계가 충분히 작동하기 어려운 지역은 어찌해야 하나 싶은 걱정도 된다. 20% 규칙이 한국에 있었다면, 그 청년의 죽음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미안했다. 작년에 카트 정리를 하다가 사망한 청년의 죽음을 봤으면서 또 이런 일을 마주하게 된 것이 미안했다. 특히 하청에 하청을 거쳐, 개별화된 노동을 하는 각종 수리·설치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의 상황을 우리는 10여년 전에 사망한 애프터서비스(AS) 노동자들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얼마나 여름에 일이 많고 힘든지 말이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 국회도, 정부도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선제적으로 집중 예방이나 안내를 하기도 하고, 작업중지권을 비롯한 다양한 법적·정책적 방안과 관련 논의도 하고 있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 뒤에도 모두가 노력을 계속해서, 정말 내년엔 이런 반복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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