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년 만에 돌아온 ‘폭침 귀국선’ 명부…한일 공동조사 가능성은?

신지혜 2024. 9. 13.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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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일제 패망 직후 일본에서 강제로 일하던 조선인들이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대형 선박에 올랐습니다.

또한 일본인 승무원 300명 중 숨진 25명을 제외한 대부분이 미리 배에서 탈출한 사실을 근거로, 유족 다수는 우키시마호를 몰았던 일본 해군이 조선인을 강제징용한 사실을 은폐하려 일부러 배를 폭침시켰다고 주장하며 진상규명을 요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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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귀국선’ 우키시마호의 침몰 전 모습


1945년 8월, 일제 패망 직후 일본에서 강제로 일하던 조선인들이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대형 선박에 올랐습니다. 선박명 '우키시마(浮島)', '떠 다니는 섬'이라는 이름의 이 배는 8월 22일 밤 일본 북부 아오모리현 오미나토항을 출발했습니다. 부산으로 향해야 할 이 배는 그러나, 이틀 후 교토 앞바다에서 원인 모를 폭발로 침몰했습니다.

배에 타고 있던 조선인이 집단으로 수장됐던 참사였지만 사고 원인도 사망자 규모도 여전히 미궁 속입니다. 당시 일본 정부는 피해를 축소 보고하고 선체 조사를 거부하는 등 사건을 사실상 덮었습니다. 자료들도 배 침몰과 함께 모두 사라졌다며, 승선자 명단을 달라는 유족과 한국 정부 요구를 거부했습니다. 명단이 없으니 피해자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명단에 없는 탑승객도 적지 않았다고 생존자들은 증언했습니다.

지난 이달 5일, 일본 정부가 탑승자 명부를 한국에 제공했다는 소식을 외교부가 발표했습니다. 79년전, 고향에 돌아갈 꿈에 부풀어 비극의 배에 탔던 조선인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고 합니다. 없다던 명단이 수십 년만에 어디서 나온 것인지, 이 명부로 한국 정부는 앞으로 어떤 조치를 할 예정인지, 질의응답 형식으로 정리했습니다.


▲일본은 지난 79년간 명부가 없다고 부인했는데, 왜 갑자기 자료를 제공했나?
일본 독립언론인 후세 유진 씨의 정보공개청구 덕분이었습니다. 2021년부터 우키시마호 사건을 취재해온 후세 기자가 일본 정부에 승선자 명부를 공개하라고 정보공개를 청구했고, 올해 5월 처음으로 명부 3종의 존재가 알려졌습니다. 이후에도 연이어 명부가 추가 확인됐습니다. 한국 정부도 다시한 번 일본에 명부 제공을 요구했습니다.
고쿠타 케이지 일본공산당 의원도 지난달 7일 국회에서 회견을 열고 승선자 명부가 포함된 우키시마호 자료 75건의 목록을 공개했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같은 일본 내 움직임에 대해 "감사하다"며, "강제동원 진상조사 및 피해와 관련해 일본의 많은 분들이 노력해오신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사실상 자료 은폐인데 이에 대한 일본의 해명은 없었나?
없었던 거로 보입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따로 그런 얘기는 없었다"고 했습니다. 한영용 우키시마유족회 회장은 KBS에 "명단만 받아올 것이 아니라, 일본에 사과도 받아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정부는 일본에 사과를 요구할 일은 아니라고 보는 기류입니다.

지난달 7일 고쿠타 케이지 일본공산당 의원이 기자회견을 열고 우키시마호 승선자 명부 입수 소식을 밝히고 있다.


▲ 명부에는 어떤 내용이 있나?
당시 우키시마호에 탑승한 귀국 조선인들의 이름 등 신상이 적혀 있을 거로 예상됩니다. 정부는 명부에 개인정보가 다수 포함돼있어 본문을 공개하기는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열람은 당사자와 가족만이 할 수 있습니다.

▲ 명부에 몇 명의 이름이 적혀있나?
아직 분석 단계입니다. 이번에 한국 손에 들어온 자료는 총 19권 분량인데, 출항 전 작성된 '승선 명부'와 사고 후 작성된 조난·사망자 명단이 섞여 있습니다. 한 사람이 여러 명단에 중복 기록됐을 가능성이 높은 이유입니다. 명단 내용은 담당 부처인 행정안전부가 살피고 있습니다.

▲ 앞으로 몇 권을 더 받게 되나?

일본의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갖고 있는 우키시마호 관련 명부는 70여부입니다. 이 가운데 조선인 탑승자 정보가 담긴 명부만 한국 정부에 제공할 예정인데, 아직 자료를 분류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외교부는 우선 몇 부라도 먼저 받아서 우리도 분석을 시작하는 것이 피해자 유족을 위해 도움이 될 거로 판단했다는 설명입니다. 일본이 나머지 자료를 언제까지 제공할지는 아직 모르는 상황입니다.


▲한일관계 좋다는데…공동조사 실시하나
아직은 가능성이 낮아 보입니다. 외교부는 지난 5일 해당 명부를 "사건의 진상 파악 등에 활용할 예정"이라고도 밝혔습니다. '진상 파악'은 '진상 조사'와는 다른 표현입니다. 정부는 입수된 자료를 토대로 사망자 규모를 다시 산정할 예정이지만, 사고 원인이나 일본의 당시 조치에 대해 '조사'를 시작할 계획은 거론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현지 조사는 일본 정부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일본에 공동조사를 요청할 생각이 있느냐'는 기자 질문에 외교부 당국자는 "명부 확보와 피해자 구제, 여기에 집중하고 싶다"며 즉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우키시마호 폭발 원인은?
아직도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미군이 바다에 설치한 기뢰에 배가 부딪혀 사고가 났다고 발표했지만 생존자 다수는 일본 해군의 '자폭'이라고 주장합니다. 일본 정부가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사이,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한국 정부가 대대적 진상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사망자 규모, 폭발 원인을 조사했습니다. 일본 해군이 배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고의 폭침설'도 들여다봤습니다. 그러나 결국 객관적 증거가 부족하다고 보고 별다른 결론을 내지 못한 채 5년 만에 조사를 종결했습니다.

▲'고의 폭침설'은 근거가 있나?
고의 폭침을 의심할 만한 증거들은 꾸준히 제시돼왔습니다. 우선 생존자들의 목격담입니다. 이들은 폭발음이 3~4차례 들렸다고 증언하며, 기뢰 폭발시의 특징인 거대한 물기둥을 보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2016년 8월에는 우키시마호가 출항 당시 폭발물을 싣고 있었다는 추정을 뒷받침하는 일본 방위청(우리의 국방부 역할) 문건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우키시마호 폭침 한국인희생자 추모협의회'와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장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방위청은 1945년 8월 22일 오후 7시 20분 "출항 전인 배는 실려있는 폭발물을 육지 안전한 곳에 격납하고, 이미 출항 중인 배는 안전한 해상에 폭발물을 투기하라"는 전문을 우키시마호 등 선박 3척에 보냈습니다. 우키시마호는 전문을 받고도 폭발물을 실은 채로 2시간 반 만인 오후 10시 출항했습니다.


또한 일본인 승무원 300명 중 숨진 25명을 제외한 대부분이 미리 배에서 탈출한 사실을 근거로, 유족 다수는 우키시마호를 몰았던 일본 해군이 조선인을 강제징용한 사실을 은폐하려 일부러 배를 폭침시켰다고 주장하며 진상규명을 요구 중입니다. 그러나 이같은 '고의 폭침설'은 한국 정부 조사에서도 직접적인 근거 부족으로 인해 사실로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사도광산에 강제동원된 조선인 명부는 언제 받을 수 있나?
이 또한 협상 진행 단계입니다. 사도광산에는 조선인 약 1,500명이 강제로 동원됐습니다. 2023년 KBS 단독보도로 당시 광산 측이 작성한 '반도 노무자 명부', 즉 조선인 노동자 명단 사본을 니가타 현립 문서관이 40년 전부터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 명단이 있으면 그간 밝혀지지 않았던 피해자도 유족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광산은 '원본을 찾을 수 없다'며 명단 공개를 거부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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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 기자 (new@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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